제목 원고보다 독자를 읽는 “문화제조업자” 출판인-경향신문 1983.7.30
글쓴이 관리자 작성일 2011/03/23
조회수 4672 첨부파일
내용 원고原稿보다 독자讀者를 읽는 “문화文化제조업자” 출판인出版人



막연한 “한탕주의主義”가 빚더미로

2,191개중 338개사社는 아예 책冊안내

1년年 매상고 천억千億의 기업형企業型도“지식知識산업” 인식認識에 대접받아

딸의 좋은 혼처婚處구하려 출판사出版社차린 사람도


술을 빚고 빵을 구워내는 일처럼 책을 만드는 출판사도 제조업製造業으로 분류된다. 산업의 형태를 그 특성에 따라 9개로 나눈 우리나라 표준산업분류에 따라서다. 그러나 출판사를 경영하는 출판인들치고 자신을 단순한 제조업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자신들이 장사꾼이라고 얘기하는 사람은 더욱 없다. 심지어는 출판업자라는 세칭에는 약간의 불쾌함을 보일정도다.

밀가루로 빵을 구워내는 일과 종이에 활자를 찍어 책이라는 제품을 만드는 일은 근본적으로 다른 직업이라는게 그들의 생각이다. 그들은 지식과 정보를 파는 문화사업에 종사하며 이 일은 지식인이 아니고서는 해낼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출판사들의 가장 큰 모임인 대한출판문화협회大韓出版文化協會가 그 공식명칭에 문화라는 단어를 굳이 첨가한 것에서도 이들의 자부심을 엿볼 수 있다. 그렇다고 이 같은 의식이 출판인들 스스로의 강변强辯일 수만은 없다.

“출판인 내지 편집인은 일종의 문화부文化部장관”이라는 존 마레이의 견해가 크게 과장된 것만은 아니다. D 맥밀란같은 학자도 “출판인은 신神의 뜻을 받들어 인산의 정신적인 행복을 주는 일을 돕는 것으로서 보다 큰 사명을 지녀야한다”고 출판인의 위치를 강조할 정도다.


“정신적 행복幸福추구”긍지
우리사회에서 출판인을 보는 눈도 이와 비슷하다.

정년 퇴직한 교직자가 장성한 딸에게 좋은 혼허婚虛를 구해주려고 출판사를 차리고 출판사 사장임을 내세워 호의적인 반응을 얻었다는 일화도 있다. 또 국내 굴지의 어느 영화사사장이 외화外畵수입 관계로 자주 외국을 드나들다가 어느 때 출판업에도 손을 댔는데 퍼블리셔Publisher(발행인, 출판인)라는 명함을 내밀자 외국인들의 대우가 크게 달라지더라는 것이다. 책을 만들어 파는 제조업, 즉 출판업자가 출판인으로서 사회적 대우를 받는 까닭이 바로 지식산업이며 문화산업인 출판의 특수성 때문이다. 이 때문에 출판인들의 학력은 어느 직종보다 높다. 대학大學중퇴부터 대학원 졸업자, 더러는 박사학위 소지자도 있으며 전前·현직 교수, 교육자, 시인, 소설가, 언론인 출신 등 지식층이 태반을 이룬다. 이런 경향은 70년대 중반부터 더욱 두드러졌는데 그때까지 전집全集출판에 의해 主導됐던 출판계에 단행본 출판사들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때문이다. 60년대 한국출판계의 대종大宗을 이뤘던 월부판매형식의 전집全集출판이 차차 퇴조함에 따라 비로소 단행본 출판이 활기를 띠게 됐다.
단행본 출판의 활기는 돈은 없지만 뛰어난 기획을 가진 지식인들을 출판계로 불러들이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들은 갑자기 사장社長이라는 거창한 직함에 수줍음을 느끼기도 했지만 지식인으로서의 자부심을 유지하기위해 부인이나 형제를 출판사 대표로 등록, 주간이라는 직함만을 사용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지식인으로서 작은 자본을 들여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출판인의 자부심은 엉뚱한 일에서 산산조각이 난다. 대학을 졸업한 뒤 대형 출판사에 입사, 20여 년 동안 편집일에 종사하며 30~40명의 직원을 거느렸던 K씨는 그동안 쌓은 경험과 자신의 지식을 바탕으로 직접 출판사를 차렸다. 퇴직금과 자신의 집을 담보로 해서 받은 은행대출금 4천만원으로 출판사를 시작한 그는 기획에서부터 편집, 교정, 발송, 수금 등의 일을 여직원을 포함한 편집사원 3명, 영업부원 1명 등 모두 5명이 함께 해냈다. 5백만 원을 들여 만든 책이 처음 출간됐을 때 그는 첫아들을 낳을 때만큼이나 기뻐했다. 저명한 인사의 원고를 얻어와 밤을 새우다시피 글을 손질해서 인쇄소에 넘기고 조판을 거쳐 깨알 같은 글씨들을 한자 한자 고쳐내는 일까지는 20여 년 동안 해 온 일이라 낯설 것이 없었다. 표지 장정을 의뢰해 색도를 조정하고 인쇄가 끝나자마자 제본소로 넘겨 한 권 한 권 꼴을 갖춘 책이 쏟아져 나오자 그는 눈물이 글썽거려질 정도로 감격했다. K사장은 초판 3천부를 찍어 총판에 맡기거나 영업사원이 줄을 잡은 지방거래처로 발송했다. K사장을 포함한 온직원 5명이 손이 부르트도록 책을 포장했다. 그리고 서울 도심의 20개 주요서점에 직거래를 텄다. 역시 영업사원의 능력에 의해서다. 계속해서 신간발행이 2중 3중으로 늘어나는 동안 책을 만들고 배포하여 수금하는 일로 모두들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동안 그의 손에는 아직 결제기일이 안 된 어음만 늘어났으나 어차피 5~6개월의 자금회전 기간을 감안했던 그로서는 내세우기를 꺼렸던 경영인으로서의 면모마저 산산조각이 나는 현장의 고뇌를 겪어야했다. “나이로 따져도 40대代 후반이면 저희들 아버지뻘은 되죠. 그런데 책 3권만 가져오라는 서점 여직원의 전화를 받고 가는 길에 2권을 더 들고 갔더니 쌓아둘 자리도 없는데 5권씩이나 가져왔다며 신경질을 내면서 2권을 도로 가져가라는 겁니다.”


서점書店직원에 환심사야

마침 사무실 직원들이 업무에 바빠 모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서울중심가 서점으로부터 전화주문을 받고 급히 달려갔던 K사장은 20대代 안팎의 서점여직원으로부터 호된 면박을 당했던 것이다. 한해 2만 9천 1백 20종࿲년 출협出協통계)에 이르는 각종 도서들을 전시판매할 서점 매장每場의 절대적인 부족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이 때문에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출판사 사장이나 영업사원들이 주요 서점의 처녀직원들에게 점심을 사거나 스타킹 선물로 밍르 사려는 일은 상례화하다시피 했다. 자신의 출판사가 만든 책이 고객들의 눈에 잘 뜨이는 전시대에 진열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K사장처럼 영세한 출판사일수록 서점에 대한 불만은 크다. 정가의 70% 값으로 서점에 책을 넘기고 나서 두 달은 지나야 책값을 받는다. 이때도 현찰이 아니라 2~3개월짜리 약속어음을 손에 쥐게 된다. 결국 책을 만들어 판 뒤 5개월 걸려 비로소 생산물의 대가를 받게 되는 것이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든지 「망하는 줄 모르게 망했다」는 출판인들의 한탄이 우리나라 출판계의 현실을 잘 말해준다. 「한 권만 더」를 되풀이하며 어렵게 책을 계속 발간하다가 3~4년 만에 3천만~4천만 원을 고스란히 털었다다는 출판인도 많다. 자본이 많이 안 들고 정보집약의 사업이라서 쉽게 시작한 지식인들은 출판이 지닌 또 다른 얼굴, 즉 상업성을 뒤늦게 알게 되면서 배신감마저 느끼는 것이다.
82년 12월 현재 우리나라에는 모두 2천 1백 91개의 출판사가 있다.񢈿한국출판연감韓國出版年鑑). 2천 1백 91명의 출판인이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 통계숫자에는 발행실적이 전혀 없는 출판사 3백 38개사가 포함되어 있어 출판사라 할 수 있는 것은 1천 8백 41개사이며 이중 33개사가 지방에 있을 뿐 나머지는 모두 서울에 몰려있다. 물론 이들 출판사는 그 숫자만큼이나 규모도 천태만상千態萬象이다. 올해 외형外形 매상목표가 1천억 원(자체인쇄공장 수입포함)에 이르는 대기업규모의 출판사가 있는가 하면 일반직장의 샐러리 맨 봉급만큼도 못 버는 출판인도 허다하다. 이들 중 한 해 1종에서 5종정도의 책을 낸 출판사는 9백 45개사로 실제로 출판을 하고 있는 전체 출판사의 51.3%나 된다. 지난해 51종 이르 발행, 그런대로 기업으로서의 면모를 보인 출판사는 1백 13개사. 이들이 출간한 책은 전체 발행종수의 50%를 차지, 출판사들의 엄청난 격차를 보여주고 있다. 평균 자산규모는 3천 1백 60만원࿮년현재)으로 이중 자기자본이 2천 4백만원이고 편집·영업 사원을 포함한 평균 종업원은 9.1명으로 나타났다. 그러니까 앞에 소개한 K사장社長은 발행종수, 자산규모, 종업원숫자에서 우리나라 출판인의 가장 보편적인 경우가 되는 셈이다. 지식산업을 이끄는 남다른 자부심에도 불구하고 기업규모의 영세성으로 제대접을 바을 수 없는 출판인의 현주소를 알 수 있다. 결국 계속되는 경영난으로 적잖은 출판인들이 베스트셀러를 노리는 한탕심리에 빠져들게 되는 까닭이기도 하다.


최소最小생계비 벌면 만족

이 같은 경향에 대해 이만갑李萬甲교수는 “내일에의 공헌보다 오늘의 이익만을 노려서 돈벼락을 맞는 출판 아이디어를 찾아 헤매는 경향이 많은 것은 국가 장래를 위하여 좋지 않은 일”이라고 지적하고 있따. 경영의 어려움에서 벗어나려는 안간힘이 지식인의 자부심마저 헌신짝처럼 내던져버리게 된 결과이다. 그러나 K사장社長을 비롯한 대부분의 출판인들은 최소한의 생계만 보장되면 만족한다며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출판에 열중하고 있다.
“문화란 돈으로 계산되는 것이 아니죠. 1천 우너의 이익이 손에 들어오면 5천 원은 벌었다고 생각합니다. 독자들에게 준 지식과 교양이 4천원 어치는 된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80년에 출판사를 시작한 작가 윤청광尹靑光씨는 “내가 만든 책을 읽은 어린학생이나 청년들이 그의 인생관에 큰 영향을 받게 된다면 그것만큼 보람찬 사업이 어디에 또 있겠는가”라고 출판인으로서의 자부심을 새삼 강조한다.


안건혁安健爀 기자
경향신문 1983.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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