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출간] 『조상제사 어떻게 지낼 것인가』
글쓴이 관리자 작성일 2013/01/25
조회수 5109 첨부파일
내용
조상제사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이에 대한 고민과 문제점을 명쾌하게 풀어준다





조상제사를 왜 지내고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줄 한 권의 책


⚀ 우리사회의 ‘뜨거운 감자’ 조상제사의 현주소를 진단한다
조상제사는 대부분의 한국인이 거행하는 살아있는 의식이란 점에서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우리의 전통문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조상제사는 의식으로만 남아있고 그 속에 담긴 의미는 점차 잊혀져가고 있다. 또 근래에 들어와 허례허식이란 논리 속에서 조상제사는 축소 · 변형되었고, 서구 종교에 의해 제사를 둘러싼 가족 간의 갈등이 표출되고, 그 결과 조상제사를 지내지 않는 집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종교 갈등이 아니더라도 현대의 바쁜 일상 속에서 조상제사가 설자리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조상들의 제사를 일일이 챙기며 살아가기엔 우리 삶이 너무나 바쁜 일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조상제사는 점차 천덕꾸러기로 변하고 있다. 이에 한국국학진흥원은 역사적 고증과 현장의 사례를 통해 오늘날의 조상제사에 대한 문제점을 진단하고, 이에 대한 적절한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이 책을 기획하게 되었다.

⚁ 조상제사를 지내는 이유가 궁금하다면?
조상제사를 왜 지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누구나 한 번쯤 가져봤을 것이다. 조상제사는 기억을 되살리는 장치이다! 일상적 삶 속에서 잊혀 지기 쉬운 시원始原을 반복적으로 기억해내기 위해 만들어진 문화적 장치가 조상제사인 것이다. 시원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자신을 있게 해준 조상에게 되돌아가서 나의 뿌리를 되새겨보고 그 은혜에 보답하는 행위를 말한다. 인간의 출생은 지극히 생물학적인 차원에서 비롯하지만,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의미있는 사건으로 다가오고 기억된다. 그런데 이런 기억화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조상제사이다. 또 하나, 조상제사는 만남과 소통을 위한 장치이다! 특히 근래 들어 ‘공경’을 위주로만 하던 엄숙한 조상제사는 ‘친목’이란 차원에서 일상에 즐거움을 주는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 그 중심에 만남이 있다. 산 자와 죽은 자 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자들이 서로 모여 소통을 하면서 기쁨을 재연하는 것이 바로 조상제사이다.

⚂ 조상제사, 반드시 장남이 지내야 할까?
조상제사는 반드시 장남이 지내야 하는 것일까? 우리 역사상 딸(여성)이 조상제사를 지내던 시절이 있었다. 유교가 들어오기 전에는 재산과 제사를 모든 자녀들이 공평하게 물려받았던 것이다. 혈통의식이 미약했던 당시에는 조상의 위패를 사찰에 모셔두고 자녀들이 돌아가면서 주관하는 이른바 윤회봉사輪廻奉祀가 일반적이었다. 또 아들이 없는 집에서는 딸(외손)에게 제사를 물려주었는데, 이를 외손봉사外孫奉祀라고 한다. 그러던 것이 유교의 영향을 크게 받은 조선중기로 접어들면서 혈통의 중요성이 점차 강조되었고, 이에 따라 가문 계승에 대한 의지 또한 강해졌다. 여기에 장자 혈통을 중시하는 유교의 가족이념이 더해져 가문을 상징하는 조상제사를 장남이 독점적으로 물려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1989년񢉇년 시행) 우리의 상속법은 아들과 딸, 기혼과 미혼 상관없이 모든 자녀들이 재산을 공평하게 물려받도록 개정되었다. 조상제사 역시 호주를 승계하는 장남에게 자동적으로 귀속되었던 것이, 자녀들의 합의 하에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바뀌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재산에 대한 자신들의 권리는 내세우면서도 조상제사에서는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는 탓에 가족 간의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이런 경우 윤회봉사의 전통을 되살려본다면 갈등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아들이 없어 고민하는 가정에서는 외손봉사의 전통을 적극 검토하는 것은 어떨까?

⚃ 조상제사를 지내는 방식이 어렵다면?
제사상을 어느 방향으로 차리고, 축문은 어떻게 쓰고, 또 제물은 어떻게 차리는지에 대한 의문은 누구나 한 번쯤 가져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제사상을 북쪽에 차린다는 원칙을 고집하다가 아파트 현관문을 등지고 상을 차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제사상이나 제물은 절대적 방위가 아니라 상대적 방위에 근거하여 차린다. 즉 제사상을 차려둔 곳을 북쪽으로 간주하면 큰 문제가 없다는 말이다. 게다가 어려운 한문투로 되어 있는 축문은 쓰고 읽기도 힘들고, 듣는 이들도 뜻을 전혀 알 수가 없다. 조상제사는 산 자와 죽은 자, 살아있는 자들 간의 소통을 위해 마련된 것인데, 이런 축문 과연 문제는 없을까? 혹 “옛날 조상들이 한자를 사용했기 때문에 반드시 한자로 축문을 써야한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기우杞憂에 불과하다. 조선시대에도 말은 한글이었고, 또 조상이 축문을 직접 읽는 것이 아니라 듣기 때문에 한글로 읽더라도 의사소통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이 책에서는 조상제사를 둘러싼 소소한 문제점을 하나씩 짚어가면서 이에 대한 궁금증을 역사적 고증에 바탕하여 명쾌하게 풀어주고 있다.

⚄ 제사상이 비좁을 정도로 차리는 제물, 예법에 맞는 것일까?
우리나라 제사예법을 규정해둔 『국조오례의』에는 일반서민의 경우 과일 한 그릇, 나물 한 그릇, 포, 고기, 국, 밥 등 6가지의 제물을 차리도록 되어 있다. 검소하고 질박한 삶을 추구했던 조선시대 유학자들 역시 제물의 화려함을 엄중히 경계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 가정의 제사상은 그야말로 잔칫상을 방불케 한다. 심지어 제사상이 비좁아서 미처 올리지 못한 제물이 바닥으로 내려오는 웃지 못 할 광경이 벌어지곤 한다. “조상신은 진수성찬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후손들의 정성을 기대하고, 그 지극한 정성에 감복한다.” 유가의 전통을 지키는 이들의 한결같은 대답이다. 제사상에 차려서는 안 될 제물은 무엇인가? 사실 이에 대한 명확한 답을 제시하고 있는 지침서는 없다. 항간에 떠도는 것들 대부분 근거없이 만들어진 담론 수준의 이야기다. 평소 집안의 어른이 즐겨 드시는 음식을 밥상에 자주 차리고 꺼리는 음식은 올리지 않듯이, 조상제사에서도 조상이 즐기던 음식을 잊지 않고 챙기고, 또 평소 꺼리던 것이 있다면 차리지 않는 것이 불문의 원칙이다. 안동 서애 류성룡의 제사상에는 ‘중개’라는 기름에 튀긴 과자를 층층이 쌓아 올린다. 서애 선생이 평소 즐겨 드셨기 때문이다. 당연히 예법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제물이다. 따라서 제물장만을 두고 고민을 하고 있다면, 『국조오례의』에 나와 있는 과일, 나물, 포, 고기, 국, 밥 등과 같이 최소한의 기본제물을 중심으로 차리되, 나머지는 융통성을 발휘하더라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관련기사>>

"17세기末까지는 딸도 제사 지냈다" 문화일보 기사의 바로가기

"제사, 형식보다 형편 맞추는 것이 예법… 3대 봉사로 줄이고 시간도 초저녁으로" 서울경제신문 기사의 바로가기
이전글 <박물관학 문고> 시리즈 집필 참여 연구자 모집
다음글 【민속원 아르케북스】두 번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