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영광과 전북 고창 일대에서 활동하며 살아간 근현대 한문문학가 호당(壺堂) 류명석(柳命錫, 1887/고종 24~1966)의 우국적 선비정신과 유유자적의 풍류문학 이 한문 문학가가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다음 몇 가지 중요한 점에서이다. 첫째, 호당(壺堂)의 문학은 갑오경장 이후 우리의 근현대문학 곧 한글중심의 한글문학이 전면을 지배해 나아가는 시대의 후면에서, 이 시대 우리 지역 한문문학의 행방을 알려주는 하나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둘째, 그의 문학은, 그가 살아내어야만 했던 구한말~1960년대 초까지의 지난한 시대적 상황에서, 초야에 묻힌 한 시골 선비가 어떻게 이런 시대 상황에 대응하며 자신의 우국정신을 문학 작품으로 표현해내었는가를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사례이다. 셋째, 그의 한문문학은 이 시대의 한문문학 중에서도 호남지역 특히 영광 · 고창지역의 이 시대 한문문학의 행방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되고 있다. 그의 문학작품들 전체를 들여다보면 그의 문학작품들이 이 지역의 ‘지역성’을 매우 강하게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문학은 이런 점에서 이 지역의 ‘지역문학’ 혹은 ‘지역문학사’의 일부로 다룰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넷째, 마지막으로 그의 문학을 통해서 우리는 그의 문학이 담지하고 있는 사상성과 문학적 장점들을 도출해낼 수가 있다. 즉, 그의 문학작품들을 통해서 우리는 그와 같은 전통세대들이 가지고 있었던 동양적-한국적인 사상적 비전과 인생관 등을 살펴볼 수가 있으며, 특히 그가 가장 중시하였던 유유자적의 자연친화적 풍류도(風流道)의 인생관, 그리고 그에 근거한 자연-합일에의 삶의 비전과 문학적 표현의 성취들은, 오늘날 전지구적 생태 위기에 처한 우리 시대의 삶과 환경에 새로운 구원적 비전으로 다가오는 바가 크다.
제1권 서문 영광 홍농 진천재에 살며지은 만음漫吟 10수 임자년 봄 청사靑舍 족장께서 찾아오시다 모양 한산사 봄을 마지막 보내며 만음漫吟 2수 진천재 초파일 모임을 하며 우연히 읊조리다 초여름 용전재 모임 2수 인파寅坡 박재익을 보내며 고창 화수재花樹齋에서 내를 건너며 진천재에서 지은 3수 고창 신상재에서 지은 2수 진천재에서 만촌 김여장ㆍ사송 방원근과 더불어 술을 마시며 지은 5수 화승으로 4수의 시를 짓다 황곡의 벗 송군ㆍ이군과 더불어 지은 3수 시우時雨가 크게 내리다 우연히 읊조린 5수 무오년 시월 진천재에 서당을 열며 우연히 읊조린 2수 의관議官 정제강과 더불어 회포를 펴다 유학자 박정빈과 더불어 회포를 편 2수 동짓날 화운和韻하여 짓다 사송四松 박성재와 더불어 회포를 편 2수 김학사學士의 『동계집』을 보고 느끼어 짓다 박성재와 더불어 회포를 펴다 화엽운和葉韻으로 지은 2수 기미년 봄 진천재에서 지은 3수 봄밤 제군들과 더불어 화엽운으로 짓다 박성재와 더불어 회포를 펴다 단곡에서 송주松洲 나창환을 만나 을진포로 내려가다 만촌晚村 김형과 더불어 계마포에 가서 사송四松 방형과 더불어 봄 지나 회포를 펴다 만촌晚村 김형, 영초嶺初 송형과 더불어 상주相酬하다 복날 하자何字 운韻으로 지은 2수 단산 진사進士 이강제와 오강梧崗 이형이 찾아와 회포를 펴다 칠석 영초嶺樵 송형, 만촌晩村 김형, 석우石愚 이형과 더불어 회포를 편 5수 삼가 단곡丹谷 사문계師門稧 모임에 차운次韻하여 지석리支石里 서재에서 설후雪後 허형을 만나 회포를 펴다 진천재에서 파접례罷接禮 운韻으로 짓다 황곡黃谷의 약헌藥軒 주경중ㆍ성재誠齋 박정빈과 더불어 회포를 펴다 여러 벗들과 술 마시고 해시海市를 보고 시를 짓다 수재 김응천에게 술을 권하며 장성의 맥동서재麥洞書齋를 지나며 아곡서재에서 남사서재에서 광주 대자리서재에서 보성의 호곡서재에서 고흥에 이르러 시중侍中 선조 묘소를 살펴 본 회포 금성재에서 간천재에서 다시 또 짓다 죽계재에서 여러 학생들에게 주다 읍내 등암재에 들어와 순천 광청재 접장께 동복의 애곡재에서 단풍을 보며 : 병오 구월 봉산재에 있을 때 집안 어르신 계은 선생을 모시고 쓴 절구시 달을 기다리며 가을걷이 기유년 봄에 지은 2수 여럿이 청했는데 가지 못하고 산별散別 후 나 홀로 가서 진사進士 이강제, 통정通政 최화중이 찾아오다 진천재에서 지은 17수 을묘년 사월 초파일 원송재에서
제2권 호암壺岩으로 이거 후 호산재壺山齋 늦봄 시모임에서 창주唱酬하다 종친 청계清溪 류형이 찾아오다 사월 초파일 회당晦堂 박형 방남方南 조형과 더불어 선운사에 가다 사월 십육일 인천강에 모여 놀다 주아酒峨에게 연연자鷰鷰字 운으로 놀이삼아 지어 주다 다시 교관 박회당과 더불어 회포를 펴다 소요사 구로회 모임을 차운次韻하여 무진년 첫 봄밤 모임에 차운하여 정참봉의 태호정 시 운자를 차운하여 짓다 삼가 이희천 교의의 덕호정 운을 차운하여 변산 명월암 백학래 시를 차운하여 짓다 반남서재에서 족형 동곡東谷 류원석을 만나 회포를 펴다 반남서당 주인 이광언을 위로하며 장연정시 운을 차운하여 짓다 삼가 김길중님 호은정 시 운을 차운次韻하여 삼가 문시업님의 임정 원운原韻을 차운하여 짓다 목화 삼가 묵암默庵 김휴의金烋儀님의 시를 차운하여 짓다 백옥리 소연小蓮 주약헌周藥軒 형의 시 원운原韻을 운차하여 짓다 수당遂堂 백낙규 선생을 애도하는 2수 열친계 계원들을 대신하여 수당遂堂 선생의 만장에 용산폭포 세심정 시를 차운하여 짓다 장연강 뱃놀이 중양절 뒤에 김반계ㆍ이운강ㆍ서래운과 회포를 펴다 흥덕 맹감교 시의 원운原韻을 차운次韻하여 짓다 신우新愚 황공의 원운原韻을 차운하여 짓다 삼가 죽포竹圃 김공 회갑 잔치 시를 차운하여 짓다 섣달 그믐날 밤에 이심정시 운을 차운하여 짓다 삼가 덕림정사 원운을 차운하여 지은 2수 덕림정사 강회講會 운으로 짓다 가을밤 래운來雲 서병태를 만나 읊다 래운來雲 서병태와 더불어 운강雲崗 이종택을 찾다 삼가 정와靜窩 김인중님 회갑에 차운하여 짓다 장성 연동재蓮洞齋에 가서 우송 이경집 형과 서로 화답하다 용계의 벗 김원근을 찾아 서로 주고받다 송남시사松南詩社에서 가을 달 시작詩作을 차운하여 짓다 창랑滄浪 김사백金詞伯을 만나 주고 받은 6수 래운來雲 서병태와 운강雲崗 이종택을 만나 시를 주고받다 선운사 지나는 길에 금호선사 시의 운을 차운하여 짓다 선운사에 머물 때 송계 이형ㆍ반계 김형ㆍ백중이 암자로 찾아와 보기를 청하다 다음날 벗 이송계ㆍ김반계 백중들을 이별하며 삼가 회산晦山 류면규 족장님의 운곡정사시 원운을 차운하여 짓다 운곡사의 주자ㆍ백암ㆍ농암ㆍ강호ㆍ점필재 다섯 선생 조두소시를 차운하여 짓다 삼가 학초당 고성유님의 원운을 차운次韻하여 짓다 후의계 이화용의 부친 생신잔치 때 차운하여 짓다 벗 래운來雲 서병태 형이 함읍에 있을 때 지은 두 수의 시에 답하여 지은 2수 삼가 소탄小灘 이거사 수신晬辰 시를 차운하여 지은 2수 삼가 호송재湖松齋 김권용님의 시를 차운하여 족숙 쌍계공 류계선님을 애도하여 족숙 석천공 류정선님을 애도하여 니산거사尼山居士 변종혁 공을 애도하여 광사光沙 박필환이 찾아와 시를 주고 받다 삼가 옥구 한림동에 있는 최고운ㆍ고문충ㆍ고문영 세 선생 조두소, 염의서원廉義書院 중창重創 추모시를 차운하여 짓다 삼가 춘파春坡 진달홍 님의 회갑잔치 시를 차운하여 정해년 6월 16일 곧 회갑일에 느낌이 있어 읊다 집안 어르신 회산공 류면규님을 애도하여 호은거사壺隱居士 김길중을 애도하여 호은거사를 추억하며 느낌이 있어 지은 2수 인봉거사 오노수님을 애도하여 삼가 우봉 고재원님 회갑에 차운하여 경인년 가을 래운 서병태 형을 만나 시를 주고 받다 송봉松峯 신현길과 벗 김장원을 만나 상화하다 강릉유씨 화표동 삼대종비를 차운하여 짓다 삼가 위은渭隱 강창영님 회갑시를 차운하여 짓다 가을밤 래운來雲 서병태 형을 만나 회포를 펴다 동짓달 완산시사完山詩社 압운을 차운하여 용계龍溪의 효자 김수현님을 애도하여 성와醒窩 거사 이승달님을 애도하여 삼가 호송湖松 김권용님 회갑시 운을 차운하여 삼가 야은당野隱堂 배성수님 시를 차운하여 짓다 갑오년 겨울 동천재 보소譜所에서 느낀 바 있어 짓다 삼가 석탄정石灘亭 원운을 차운하여 삼가 동천재 원운을 차운하여 삼가 탄운정 원운을 차운하여 을미년 사월 초파일 래운來雲 서형이 동참한 부안 웅연포 시회에서 삼가 부안 연봉정사蓮峯精舍 김길상의 원운을 차운하여 짓다 족형 탄운공灘雲公 류춘석을 애도하여 병신년 겨울 주산재珠山齋 절운絶韻 19수 기해년 가을 호은재에서 지은 절구絶句 11수 전주 박양사를 만나 서로 시를 주다 능주 서은瑞隱 양회택을 만나 서로 시를 주고 받다 봄을 보내는 2수 봄을 보낸 다음날 회포로 짓다 박양사와 더불어 창주한 2수 서암恕菴 김귀수의 집 벽에 희제戱題하다 구월 초 호산재에서 삼가 만취당晚翠堂 성경수 님의 시를 차운하여 집안 대부님 영산공 류기춘을 애도하여 삼가 용산의 율산栗山 이응률님 회갑에 차운하여 삼가 반암 마을 호은壺隱 김길중의 원진당 운을 차운하여 갱음 2수 임신년 춘삼월 족형 류석운님을 모시고 회포를 펴다 효자 신재慎齋 강은영 공과 열부 박씨의 행록行錄에 쓰다 반남정사盤南精舍에서 백청사와 임은 부자를 만나 창주唱酬하다 호산재에서 성산 이아李雅를 만나 회포를 펴다 부안 김백술 둘째 손자 6세 아이 김정기가 아침저녁으로 조모 새 묘소에 성묘함에 이 시를 지어 주다 부안의 사문 김연사와 석암 종형제가 성묘 왔을 때 느껴 이 시를 짓다 호산재에서 지은 3수 삼가 오구근의 조부 별장 사가정四嘉亭 원운을 차운하여 짓다 사가정을 중수함에 차운하여짓다 주산재에서 절구로 지은 8수 섣달 그믐날 밤에 입춘에 지은 2수 삼가 청담清潭 박민호의 풍영정 원운을 차운하여 삼가 성송면 선동 학천 강진수님 회갑에 부쳐 경담鏡潭 서상준을 만나 회포를 펴다 남일南一 김용진님이 이리로 이사를 감에 이별하며 드리다 장사의 벗 검재儉齋 김윤용을 찾아가 차운하여 짓다 석남의 청담清潭 박민호를 찾아가 회포를 펴다 호송湖松 김권용 해은海隱 김수현 청담清潭 박민호와 함께 회포를 편 2수 삼가 화산 송하松下 선생 자제 유학자 김민용님의 후송당 원운을 차운하여 삼산三山 기로회 운을 차운하여 삼가 운림정雲林亭 김녕준님의 시 원운原韻을 차운하여 인암거사 김훈석을 애도하여 삼가 송우암 선생 박두남 처사 조두소俎豆所인 노양서원시 원운을 차운하여 짓다 영친왕 환국시 환영회에 차운하여 삼가 월촌月村 이공의 「삼세 육효 증 동몽교관 정려문」 시의 운에 차운하여 짓다 운강거사雲岡居士 김재진에게 주다 집안 동생 백천거사 류진석 회갑잔치에 차운하여 짓다 학천鶴川 강진수 거사를 만나 회포를 펴다 고창 서장 오창옥 교풍회矯風會 풍자風字 운을 차운하여 짓다 삼가 가산可山 김재남님 생일잔치에 차운하여 짓다 삼가 문안공 김량감 조두소 화정원우華亭院宇 운을 차운하여 짓다 백천白泉 이용초를 만나 상화하다 삼가 진사 우천牛泉 이약수 선생 인산사 모의당 운을 차운하여 짓다 신축년 삼월 그믐날 호은서재에서 봄을 보내며 짓다 집안 숙부 현곡처사 류영선님을 애도하며 삼가 신림면 가평 종중인 류종성님의 수송정秀松亭 운을 차운하여 짓다 정와거사 김인중을 애도하여 원평의 연은거사蓮隱居士 김공을 애도하여 주은珠隱 오구근의 생일잔치에 차운하여 짓다 가호稼湖 이강식 거사를 애도하여 삼가 류일평 허재 두 선생 조두소 용강사우의 원운을 차운하여 삼가 죽포거사竹圃居士 박병현님 원운을 차운하여 아내 김씨를 추도하다 유학자 변영호를 애도함 삼월 그믐날 서암 귀수를 만나 봄을 보내며 동갑계날 주은珠隱 오구근과 차운하여 삼가 석탄정 연자年字 운을 차운하여 계묘년 봄에 77세의 늙은이가 스스로를 위로하며 유학자 김권용에게 답함 상제喪制 이강식李康植을 위로하며 이요정사 원운 이요정사기 집안 어르신 계은溪隱 선생이 주신 류명석의 자字 성택性澤에 관한 설說
부록 이요정사기 이요정사를 추모하며 이요정사를 추모하며 호산재에서 저문 봄날 여러 선비들이 시를 창수唱酬하다 만장 제문 1 제문 2 『호당유고』 발문 『호당유고壺堂遺稿』를 간행하며 역자 발문 조선시대 이후 우리나라 시골 선비들의 행방-호당壺堂 류명석柳命錫의 생애와 문학
지은이 류명석(柳命錫, 1887/고종 24~1966) 호는 호당(壺堂) 또는 이요정(二樂亭). 전남 영광군 홍농읍 진덕리 진천 마을에서 고흥류씨 충정공(忠正公) 탁(濯)의 19세손으로 출생하였다. 어려서 부친 류희선(柳喜善)에게 한문을 배웠고, 나중에 영광군 홍농읍의 묵암(黙庵) 김휴의(金休儀)에게 한학을 공부하였다. 그러나 나라의 국운이 기우는 것을 보자, 과거시험을 포기하고 전통 선비로서의 자신의 길을 가기로 결심하였다. 30세를 전후하여 홍농읍 진덕리 진천 마을 진천재(眞泉齋)에 서당을 열고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였으며, 1925년 39세 때에 전북 고창군 아산면 반암리 호암 마을로 이거하여, 이곳 인근 마을인 반암리 반암 마을의 수당(遂堂) 백락규(白樂奎)의 학문적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후에, 전남 영광, 전북 고창 일대에서 한학을 가르치는 서당 선생ㆍ학자 생활을 하였으며, 만년에는 아산면 반암리 호암 마을에 은거하며 유유자적하는 삶을 살았다.
옮긴이 김익두(金益斗 Kim, Ik-doo)
한국학술진흥재단 해외파견교수(미국 콜로라도대학, 2001), 옥스퍼드대학교 울프슨 칼리지 및 동양학부 초빙교수(2009),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전북대 국문과 교수. 제2회 예음문화상(1991), 제3회 판소리학술상(2003), 제3회 노정학술상(2003)을 수상하였다. 시집으로 『햇볕 쬐러 나오다가』, 『서릿길』, 『숲에서 사람을 보다』, 『녹양방초』, 『지상에 남은 술잔』, 『사랑혀유, 걍』, 『작은모래내 일기』, 『민하마을의 사계 : 봄』 등이 있고, 연구서로 『판소리, 그 지고의 신체 전략』, 『한국 희곡 / 연극 이론 연구』, 『상아탑에서 본 국민가수 조용필의 음악세계 : 정한의 노래, 민족의 노래』, 『한국민요의 민족음악학적 연구』, 『한국 민족공연학』, 『한국 공연문화의 민족공연학적 지평』, 『조선 명필 창암 이삼만 : 민족서도의 길을 열다』 등이 있다. 역서로는 『제의에서 연극으로』, 『연극 용어 사전』, 『퍼포먼스 이론』, 『연극의 이론』, 『민족연극학』, 『국역 불우헌집』, 『건재 김천일 전집』Ⅰ~Ⅱ, 등이 있고, 그 외에 100여 편의 논문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