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7년, 쇄환사(刷還使) 피로인을 구하라
3월 24일……. 궁宮을 순회하다가 동쪽 회랑에서 한 명의 피로(被擄)된 여인을 보았는데 나이는 30살이 되었으며 얼굴은 자못 곱고 예뻤다. 그녀에게 살던 곳과 성명(姓名)을 물으니, 눈물이 흘리며 요염한 눈빛으로 서서히 앞으로 나와 잠깐 붉은 입술을 움직이며 말하길, “소녀는 창원(昌原)의 기녀인데 이름은 옥경(玉鏡)입니다. 지난(往在) 정유년(丁酉, 1597)에 피로되어 일본(日本)에 들어와 본도(本都)를 전전하며 이리저리 팔려와 소창(小倉)에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사신(使臣)의 행차를 듣고 남의 상선을 빌려 타고(借乘) 고국 사람을 찾아서 부모와 친척의 존망(存亡)에 관한 기별을 묻고자 왔습니다.”라고 했다. 말을 마치자 목이 메여 얼굴 가리고 우는데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이 마치 비가 내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에게 돌아가는 여정에 쇄환(刷還)해 갈 뜻으로 위로했다.
아산 장씨! 성재(誠齋) 장희춘(蔣希春, 1556~1618) 실기. 성재실기는 4권 2책이다. 그 중 2권과 3권에 임란 후 처음 파견한 ‘회답 겸 쇄환사’에 문관 수행원으로 참여한 장희춘의 「해동기(海東記)」가 실려 있다. 장희춘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 활동을 하면서 일본과 교섭하는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해동기는 전쟁 후 일본에 피로된(被擄) 조선인을 쇄환(刷還)하는 관계로부터 당시 시대 상황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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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해제
誠齋實紀 上
서(序) 목록(目錄)
성재실기 1권 가전(家傳) 일고(逸稿) 시(詩) 서(書) 축문(祝文)
성재실기 2권 잡저(雜著) 『해동기(海東記)』 상
誠齋實紀 下
성재실기 3권 『해동기(海東記)』 하 해동기 서(序)
성재실기 4권 부록(附錄) 서술(敍述) 행장(行狀) 묘갈명(墓碣銘) 경의재기(景義齋記) 발문(跋)
참고문헌 찾아보기 영 인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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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하 禹承河, Woo Seungha
학예연구사로 제주도립미술관·제주현대미술관·서울역사박물관 등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국립민속박물관에 재직 중이다.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이길리(2013), 울산광역시 북구 무룡동 달곡(2016),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선두리(2017) 등에서 마을지와 살림살이를 조사했으며, 한강(2018)과 금강(2019)에서 각각 어로와 식문화를 조사하였다. 국립공주대학교에서 동양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주요 관심 분야는 마을과 고문헌(古文獻)이다.
주요 논저 「장희춘의 「해동기」(1607) 사료 비판과 자료 해제」(비교민속학 70집, 2019), 「인천지역 근현대 산업유산의 자원화와 활용」(박물관학보 37집, 2019), 「울산 무룡동 달곡마을의 역사민속학 연구」(민속학연구 41호, 2017), 「심마니 습속의 변화양상」(민속학연구 35호, 2014) 등 7편. 『금강 수로와 식문화』(국립민속박물관, 2019), 『한강 수로와 어로문화』(국립민속박물관, 공저, 2018), 『70년 만에 다시 기록한 강화 선두포 마을지』(국립민속박물관, 공저, 2018) 등 8권.
※ 원작자 장희춘의 약력은 해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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