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조선의 3대 명필, 당대 중국과는 다른 조선의 독자적인 민족-민중적 서도의 길을 처음으로 개척해낸, 창암(蒼巖) 이삼만(李三晩, 영조 46/1770~헌종 13/1847)선생의 일생과 그의 서도(書道)ㆍ서예(書藝) 세계를 총체적으로 탐구한 최초의 저서
창암(蒼巖) 이삼만(李三晩) 선생은 양반 사대부 중심의 양반문화가 서민 백성 중심의 서민문화로 전환되는 조선 영조시대 중반에 현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부전동 부무실 마을 가난한 ‘중인’ 가정에서 태어나, 정읍ㆍ전주ㆍ완주에서 삶을 영위하면서, 가난하고도 고단한 밑바닥 생활 속에서도 평생에 걸친 서도(書道)와 서예(書藝)에의 피나는 노력과 수도ㆍ수련을 통해서, 오랜 동안 중국 서도ㆍ서예의 그늘 밑에 속해 있던 우리나라 서도ㆍ서예를, 중국의 그것과는 다른 자주적인 한국의 서도ㆍ서예의 길, 그것도 우리의 민족-민중적 서도와 서예에의 새 길을 처음으로 개척해 놓으신 분이다. 그러기에, 창암(蒼巖)을 높이면 호남(湖南)의 서도ㆍ서예는 물론이고 우리나라 서도ㆍ서예 전체, 특히 우리나라 근현대의 민족-민중적 서도ㆍ서예가 진정으로 높아질 것이고, 창암을 낮추고 업신여기면 호남의 서도ㆍ서예는 물론이고, 우리나라 서도ㆍ서예 전체가 지극히 낮아질 것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우리는 앞으로도 창암(蒼巖)을 말로만 떠들고 실제로는 그저 늘 어두운 그늘 속에 방치해만 둘 것인가. 아무쪼록, 이 책자를 통해서, 우리 민족이 낳은 조선 최고의 근현대 민족-민중적 명필 창암 이삼만 선생의 서도와 서예의 참뜻과 가치가, 뒤늦게나마 세상에 널리 제대로 알려지는 중요한 하나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고 빈다.
제3장 궁벽진 정읍 산촌 마을 부무실(富武室)에서 ‘득필천연(得筆天然)’의 미래를 꿈꾸다 -창암의 유소년시절 1. 가혹한 제도와 세태에 항거한 아버지의 산촌 은거와 그로 인한 ‘가난’ 2. 스승은 하늘, 붓은 작대기, 종이는 대지 3. 산속에서 찾아낸 서도/서예 재료들과 내어버린 천 조각들
제4장 가난 속에서 채약(採藥)으로 연명하며 서도(書道)에 몰두하다 -창암의 청년시절 1. 독사에 물려 돌아간 아버지와 ‘뱀’ 트라우마 2. 자신의 가난한 거처에 손수 편액을 써서 걸다 3. 채약(採藥)으로 연명하며 서도에 몰두하다 4. 낡은 베 쪼가리를 빨아가며 글씨를 연습하다 5. 처음으로 집안 선조의 비문을 쓰다
제5장 가난 속에서 나무꾼[樵夫]을 자처하며 서도(書道)에 몰두하다 -창암의 장년시절 1. 서도의 꿈을 이루기 위해 서법 책을 발간하다 2. 이 시기에 쓴 그의 편액 글씨들 3. 집 앞 시냇가 자연석에 자신의 글씨를 새기다 4. 이 시기에 처음 발견되는 그의 초기 서첩 글씨들 5. 40대 후반에 우연히 찾아온 득명의 기회
제6장 전주 ‘옥류동(玉流洞)’으로 이거하여, 서도(書道)에의 뜻을 더욱 기루다 -창암의 노년기 전반 1. 선조들의 세거지 전주로의 귀향, 그리고 월당(月塘) 최담(崔霮) 집안의 사숙(私塾) 생활 2. 옥류동 사숙(私塾) 터에 남긴 그의 석각 흔적들 3. 눈에 띄는 그의 50대 작품 몇 점들 4. 부인의 서거, 후사(後嗣)의 단절 5. ‘명창(名唱) 심녀(沈女)’ 정씨(鄭氏)와의 인연으로 서도의 뜻을 더욱더 기루어 나아가다 6. 부단히 서도(書道)에 정진하다:‘득필(得筆)’을 위한 부단한 임서(臨書) 공부와 그 결실들 7. ‘사법고(師法古)’의 강조와 ‘민족서도(民族書道)’의 발견 8. 드디어, 창암 서도이론의 기초를 세우다:‘신명(神明)/신바람’의 서도이론(書道理論)
제7장 전주 옥류동(玉流洞)에서 ‘득필천연(得筆天然)’의 경지를 보다 -창암의 노년기 중반 1. 옥류동에 스스로 마련한 자신의 집 2. 사랑하는 필생의 연인 ‘명창(名唱) 심녀(沈女)’ 정씨(鄭氏)의 죽음과 서도에의 매진 3. 창암 서도(書道)의 4대 실천 강령 수립 및 실행과 ‘차이’의 발견 4. 조선서도의 ‘차이’로 자신의 글씨를 쓰기 시작하다
제8장 완주 상관 공기골에서 창암 서도이론을 완성하고 창암 서체 ‘유수체(流水體)’를 확립하다 -창암의 노년기 후반 1. 창암의 말년:완주 ‘공기골[孔洞]’에서 고요히 은거하다 2. 마침내, 창암 서도이론의 완성에 이르다 3. 드디어, ‘득필천연(得筆天然)’의 서도 경지에 이르다:그가 이루어낸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유수체(流水體)’의 행방 4. 그가 말년에 도달한 ‘득필천연(得筆天然)’의 수작들 5. 아예 붓을 내던지고, 손가락으로 자신 서도의 ‘절정’을 표현하다
제9장 창암의 서거와 사후, 그리고 후인들의 평가 1. 사랑하는 마지막 제자에게 유언서첩을 남기다 2. 그의 마지막 은거지 ‘공기골’에서 한 많은 삶을 마감하다 3. 평촌리 아랫잣골 선영에 ‘명창 심녀(名唱沈女) 정씨(鄭氏)’와 같이 영면에 들다 4. 추사가 유배지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의 묘비문을 써서 전하다 5. 후세인들의 평가
제10장 창암 서도의 계보와 그 역사적 전개 1. 창암 서도의 근원 2. 창암 서도의 기본 전범 3. 진나라 서도에서 취한 ‘고아함’ 4. 수당(隨唐) 서도가들의 다양성 섭렵 5. 민족서도에의 관심과 공부:‘동국진체’에로의 길 6. 창암 이후, 그의 후예들
제11장 창암 서도와 서예의 역사적 의의와 가치 1. 창암이 추구한 민족서도의 방향과 특징:‘동국진체’ 전통의 계승과 그 테두리의 심화ㆍ확장 2. 창암이 개척해낸 민족‒민중서도 의식의 폭과 깊이 3. 민족민중서도의 다양한 실험과 그 성과들 4. 창암이 이룩한 서도의 미학:‘민족민중적 우졸미(愚拙美)’ 5. 창암이 마련한 한국 서도의 근현대적 출구:‘민족-민중서도’의 길
제12장 창암의 유묵(遺墨) 세계:주요 작품 감상 * 서첩(書帖) * 병풍서 * 편액(扁額) 및 주련(柱聯) * 비문ㆍ석각, 기타
부록 1. 창암 이삼만 인보(印譜) 부록 2. 창암 이삼만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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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두 정읍에서 자라, 보천교 교주 월곡 차경석 선생의 자제 차용남 선생께 『주역』을 배웠다. 검정고시ㆍ전주고를 거쳐, 전북대 국문과 교수, 한국학술진흥재단 해외파견교수, 옥스퍼드대학교 울프슨 칼리지 및 동양학부 초빙 교수, 전라북도 문화재전문위원,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한국공연문화학회 회장, 한국민요학회 회장, 한국풍물굿학회 회장, 판소리학회 부회장, 전북대 농악/풍물굿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사단법인 민족문화연구소 소장 및 정읍학연구회 회장으로 있다. 제2회 예음문화상, 제3회 판소리학술상, 제3회 노정학술상 등을 수상했으며, 시집으로, 『햇볕 쬐러 나오다가』ㆍ『서릿길』ㆍ『숲에서 사람을 보다』ㆍ『녹양방초』ㆍ『지상에 남은 술잔』ㆍ『사랑혀유, 걍』ㆍ『작은모래내 일기』ㆍ『민하 마을의 사계:봄』ㆍ『민하 마을의 사계:여름』 등이 있다. 연구서 및 저서로, 『판소리, 그 지고의 신체 전략』ㆍ『한국희곡/연극 이론 연구』ㆍ『상아탑에서 본 국민가수 조용필의 음악세계:정한의 노래, 민족의 노래』ㆍ『한국신화 이야기』ㆍ『한국민요의 민족음악학적 연구』ㆍ『한국 민족공연학』ㆍ『남학가사 연구』ㆍ『한국 공연문화의 민족공연학적 지평』ㆍ『조선 명필 창암 이삼만:민족서도의 길을 열다』ㆍ『한국신화 이야기』ㆍ『한국신화를 찾아 떠나는 여행』 등 40여 권의 저서들과, 100여 편의 연구논문들이 있다. 역서로, 『제의에서 연극으로』ㆍ『연극 용어 사전』ㆍ『퍼포먼스 이론』ㆍ『연극의 이론』ㆍ『민족연극학』ㆍ『국역 불우헌집』ㆍ『건재 김천일 전집』ㆍ『호당유고』 등이 있다.
허정주 전북대학교 국문과 문학박사. 원광대 강사. 전북대 강사. 몽골 울란바토르대학교 연구교수 등을 거쳐, 현재 전북대 농악/풍물굿연구소 책임연구원ㆍ아주자동차대학교 초빙교수,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재위원회 전문위원, 올댓해리티지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저서로 『호모 서커스』ㆍ『풍류와 풍물굿』ㆍ『성당포 농악』ㆍ『전주 기접놀이』ㆍ『샘고을 원촌마을』ㆍ『샘고을 원정마을』ㆍ『민요와 소리꾼의 세계』ㆍ『샘고을 대흥리 마을』ㆍ『증편 한국구비문학대계』(무주군ㆍ진안군ㆍ익산시 편)ㆍ『전주농악』 등이 있으며, 이외에 많은 논문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