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440년간의 수도 서울에 관한 역사서이자 종합 지리지 유본예가『 한경지략』을 완성한 1830년은『 여지승람』이 증보되어 간행(1530년)된 지 300년이 되는 해이다.『 한경지략』은 조선 중기까지는『 여지승람』의 내용을 대부분 반영하였지만, 이후 변화된 서울에 대해서는 방대한 양의 문헌을 참고하여 새로 집필하였으며, 특히 저자가 생존했던 18세기와 19세기 초 서울에 주목하였다. 서울의 자연경관, 궁궐·종묘와 사직·관아 등 국가 주요기관, 성 곽·개천·시전 등 주요 도시시설, 사적과 명승, 마을과 풍속, 인물과 고사 등을 19개 분야 약 500개 항목으로 나누어 서술하고 있는『 한경지략』은 한마디로 1394년 조선 왕조의 한양 정도로부터 1830년대까지 약 440년간의 수도 서울에 관한 역사서이자 종합 지리지이다.
조선시대 서울의 역사지리지 본 번역서는 규장각본을 제1 텍스트로 하되, 4종 필사본을 대조하고 인용한 서적의 내용을 확인하여 불가피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원문을 수정하였으며, 각주를 달아 수정한 내용과 이유를 밝혔다. 정본을 만들고자 한 의도는 아니며, 유본예가 저술한 원본이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번역의 선행 작업으로 꼭 필요했기 때문이다. 송신용 등 필사자들이 추가한 주석을 각주에 밝혀둔 것은, 이것이 각 필사본의 성격과 필사시기를 가늠할 수 있는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번역을 위해 원문을 바로잡고자 하는 작업이, 의도와는 달리, 또 다른 오류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오역과 오류는 오로지 역자의 역량과 정성의 부족이다. 혹 의심되는 부분이 있을 경우 독자들이 확인할 수 있도록 수정한 원문과 함께 제1 텍스트로 활용한 규장각본을 영인하여 함께 덧붙였다. 역자가 공부삼아 달았던 번역문의 주석은, 일반인에게는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다소 번잡하지만 그대로 살려두었다.
■ 지음 유본예 柳本藝(1777~1842) 1777년(정조 1) 조선 후기 실학자 유득공의 둘째 아들로 남산 아래 운동(芸衕)에서 태어났다. 1796년(정조 20) 정조의 명을 받고 규장각에서 검서관의 직무를 시작하였으며, 1804년 정식으로 검서관에 임명되었다. 이후 1842년(헌종 8)까지, 사근찰방, 단성현감 등 외직에 나간 시기를 제외하고, 평생을 검서관으로 일하였다.『 일성록범례』를 작성하였으며,『 한경지략』을 편찬하였다. 문집으로『 수헌집』이 있다.
■ 옮김 박현욱 서울역사박물관 학예연구부장 경북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문헌정보학과에서 서지학을 공부했다. 오랫동안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일했으며‘, 서울의 옛 모습’‘, 조선여인의 삶과 문화‘’, 광화문연가, 시계를 되돌리다‘’, 강남 40년‘’, 종로 엘레지’등 전시를 기획했다. 「청계천의 자연환경과 역사문화」「, ‘한경지략’의 저자와 현존 제본에 대하여」, 「성시전도 속 18세기 서울-이덕무의 작품을 중심으로」,「 이집두의 성시전도시」「, 성시전도시의 유형별 특징과 18세기 서울」 등 논문과『 서울의 옛 물길 옛 다리』,『 서울 2000년사-조선시대 서울의 도시경관』(공저),『 성시전도로 읽는 18세기 서울』『, 쉽게 읽는 서울사』(공저) 등 저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