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영희는 말한다 “매사 물정이 음양陰陽으로 되었다. 장고와 음악도 음양배합으로 되어 있다.‘ 소삼’, ‘대삼’이라고도 한다. 말을 하여도 음양이 있다. 창唱이나 음악이나 장고도 음양이 없으면 안된다.”“ 진양보다 조금 몰아간다하여 중모리이고, 더 몰아간다하여 중중모리, ‘모리’라 하는 말이 맞는 말이다.” 지영희는 모든 음악에서 근대 아시아 학자인 최한기崔漢綺의 기학론氣學論을 풀어내고 있었다. 음양과 몰아간다 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처럼 지영희는 최한기를 음악에서 구체화시키고 있다. 한성준음악무용연구회에서 음악장인들과 첫 생활을 하며 최한기와 한성준으로 이어지는 음악기학론을 지영희가 이어가 고 있었다. 기氣의 음양이 장단으로 표현되고, 이 표현이 장고와 음악과 춤으로 실현되면서 기의 질서가 주도하는 세계가 열린다.
모진 비바람의 세파 속에서 겨레의 가락과 선율을 체계화 시키려 몸부림치며 독백한 지영희의 저서 『민속장고』와 『무속장고』는 한국근대음악사에서 명저 중의 명저이다. 결코 하루아침에 쏟아낼 수 없는 진주같은 말들이 담겨진 이 저서들은 지영희가 몸을 수굿하게 기울이고 이 땅의 음악을 보듬으며 한평생 살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가 살다간 1909년부터 1980년까지 암울 하고 분노의 시대를 살아간 지영희가 어떻게 우리 것을 보듬어 한평생 고스란히 살을 수 있는지『지영희평전』에서 말하려고 한다.
|
|
|
머리말
제1장 지영희 예술의 귀소지-평택 1. 포승면 고향의 환경과 문화 2. 지영희의 출생 3. 서당에서 당골판으로! 4. 한식의 결혼 5. 아버지의 죽음 6. 지영희의 음악·춤·연행 학습 7. 어머니와의 갈등
제2장 1930년대 경성문화와 지영희 등장 1. 1930년대 경성문화 2. 조선음악연구회-조선음악무용연구소의 민족음악육성 3. 경성방송국의 관악 담당 악사 4. 조선음악무용연구회 활동과 첫 번째 작품 창작 5. 일본과 만주, 그리고 경성방송국의 공연 활동
제3장 정상급 반열에 서는 1940년대 1. 조선음악협회의 조선음악부 활동 2. 지영희, 정상의 반열에 서다
제4장 최승희와 음악무용공연 1. 최승희의 무용활동 2. 최승희 무용 반주와 아쟁 학습 3. 사선을 넘어서
제5장 해방공간의 민족음악운동 1. 민족음악운동에 나서며 2. 국악 융성기로 꽃피운 박헌봉 체제의 국악원 3. 성금연과 만남
제6장 1948년 8월 대한민국 수립 1. 여성국극시대의 지영희 2. 전쟁 참화 속에서 꽃피우는 여성국극 3. 문화인등록령과 대한국악원 4. 대한민속예술원 설립 5. 임화수의 한국반공예술인단, 그 권력의 힘
제7장 민족음악수립의 구체화 1. 국악 인재 양성의 성지:국악예술학교 2. 국악계의 근대화를 주도한 지영희의 국악관현악 3. 전통음악의 보존과 창조 4. 국제적 평가를 받는 지영희와 한국음악 5. 인간문화재 지영희와 국악협회의 갈등
에필로그 민족의 가락을 보듬은 지영희의 한 평생 1. 하와이의 팔랑잽이 2. 해지는 강가로 떨어진 학 3. 지문池門 일가들 4. 국악예술학교 이후
참고문헌 도판목록 연보年譜 찾아보기
|
노동은魯棟銀 현재 한국음악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면서 중앙대학교 명예교수이다. 연세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였고, 중앙대학교 국악대학장과 한국음악학학회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 『한국영아음악연구』·『한국근대 음악사』·『한국음악론』·『경기음악』 등 22권과 논문 「음악기학音樂氣學」·「만주음악연구」·「가정성과 직관성 그리고 근대」·「음악과 백두대간」 등 400여 편을 발표하였다. 제10회 단재丹齋 학술상 한국의 미래를 여는 100인, KBS국악대상 특별공로상을 수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