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한국 민간신앙의 존재 양상을 분석하다 각종 민간신앙들은 근대에 들어가면서 ‘미신’, ‘비과학적’ 등의 이유로 비판 받았다. 그런데 그런 가치관은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다. 현재 시각에서 보면 과학적이지 않다고 해서 가치가 없다고는 생각을 안 할 것이다. 걱정거리가 있을 때 점집에 가기도 하고 결혼하기 전에는 어머니가 궁합을 보기도 한다. 이것은 당시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한편으로 거의 사라져 버린 민간신앙들도 존재한다. 1920~40년대 민속학자들이 어디서나 볼 수 있다고 기술한 성황당, 1935년 당시 최남선이 마을마다 있다고 한 ‘신목(神木)’, 송석하가 경상도 일대에서 흔히 볼 수 있다고 한 솟대, 이런 것들은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다. 당시 ‘미신’이라고 비판 받았다는 점은 동일하나 설령 어느 정도 변용은 있다고 하더라도 점이나 굿, 무속인들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반대로 성황당이나 신목, 솟대 등은 어떤 과정으로 사라지게 되었을까? 민간신앙의 변용과정을 밝히려면 역시 식민지 시대의 존재 양상을 분석하는 것은 필수적 작업이지만 아직 충분하지 않다. 그 공백기를 메우는 작업이 필요하다.
제국일본은 어떻게 식민지 조선의 “미신”을 인식했으며 다루려고 했는가 제국일본은 식민지 조선을 ‘미신이 많은 나라’로 묘사하면서 ‘근대화’라는 명목으로 식민통치를 정당화시켰다. 그런데 진지하게 ‘미신’을 없애려고 노력하지는 않았다. 위생문제나 토지문제, 치안문제 등 통치에 방해되는 부분은 법으로 단속하기는 했으나 근본적인 사상 자체를 없애려고는 하지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는 1930년대에 들어 ‘고유신앙’을 이용해서 일본신도에 포섭하려고까지 논의가 나왔었다. 결국 제국일본에 있어서는 통치를 원활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민간신앙을 인식했던 것이지 진지하게 ‘근대화’시키려고 하지 않았다. 이 책을 통하여 ‘식민지근대화’론의 허위성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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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서론 1. 문제 관심 2. 선행연구의 검토 3. 이 책의 특징 및 구성
제1장 한국병합 전후의 ‘미신(迷信)’ 개념의 형성과 통치권력 1. 머리말 2. 개화기에 형성된 ‘미신’의 개념 3. 1910년대 ‘미신’에 대한 문제의식과 식민지권력 4. ‘미신’에 의한 사회문제와 단속 실태 5. 맺음말
제2장 3·1운동 이후 조선민간신앙에 대한 인식·정책의 변용 -숭신인조합(崇神人組合) 설립과 활동을 중심으로 1. 머리말 2. 3·1운동 전후 민간신앙에 대한 통치 측의 인식 변화와 ‘문화정치’ 3. 민간신앙에 대한 방책-숭신인조합을 사례로 4. 맺음말
제3장 1920년대 ‘미신타파’ 운동과조선사회 1. 머리말 2. 신문·잡지에서 본 숭신인조합(崇神人組合) 비판 3. ‘미신타파’운동의 실태와 그 논리 4. 맺음말
제4장 농산어촌진흥운동 및 심전개발운동과 무속신앙 1. 머리말 2. 농촌진흥운동의 시작과 ‘미신타파’ 3. 심전개발운동과 무속신앙 4. 맺음말
제5장 1930년대 ‘미신’론과 조선민속학 -민간신앙을 중심으로 1. 머리말 2. 1920년대 ‘미신타파’운동의 여파 3. ‘미신’에서 ‘민간신앙’으로-조선민속학의 성립 4. 민간신앙의 구체적 현상들 5. 맺음말
결론
日文要約 참고문헌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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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우치 사키 宮內 彩希, MIYAUCHI SAKI
일본 홋카이도 출생. 홋카이도대학 전문연구원. 홋카이도대학 대학원 박사(문학). 전공은 근대한일관계사. 2006년부터 1년 동안 전북대학교 사학과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냈으며 2011년에는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에서 임시연구원으로 활동하였다. 주요 논문으로 「統監府·朝鮮総督府による風俗習慣調査の史的変遷-調査資料の機関別·時期別整理を中心に-(통감부·조선총독부에 의한 풍속습관조사의 사적 변천-조사자료의 기관별·시기별 정리를 중심으로-」(『차세대인문사회연구』 제10호, 2014), 「‘미신(迷信)’ 담론과 조선민속학-민간신앙을 중심으로-」(세계한국학대회, 201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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