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용만고聽舂漫稿
저자
이용호 지음/ 현행복 옮김
판형|쪽
크라운판 양장 | 638쪽
발행일
2018년 8월 20일
ISBN
979-11-89222-04-8 (93810)
가격
70,000원
시문으로 읽는 구한말舊韓末의 제주풍경
제주에서 쓴 이 시문집의 표제表題를 저자는‘ 청용만고聽舂漫稿’라고 달았다. 마치‘ 제주 사람들의 방애질 소리를 듣듯이 부질없이 쓴 시문’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면서 <자서自敍>에서 독자들에게 당부하길, “혹 번거롭게‘ 훌륭한 시문이니 아니니 하는 투의 헐뜯음曺檜之譏’일랑 의당 하지마시길 바라오.”라고 주문 하기까지 한다. 이는 곧 자신의 시문 작품들이라고 해봐야 흡사 제주 사람들이 방아 찧는 일을 하면서 음 정도 박자도 없이 무심코 내뱉던 소리처럼 그저 기분 내키는 대로 읊조린 넋두리에 불과하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저자 자신의 겸사謙辭에 불과하다. 이들 작품이 지니는 역사성의 풍부함과 소재 선택의 다 양성이란 점에 주목해보면, 결코 범인의 능력으로선 닿을 수 없는 경지이다. 더욱이 하루하루의 느낌을 일기체의 시상詩想으로 전환해 작품화한 듯하다. 이는 곧 고도의 문학적 감수성과 빼어난 문장력이 그 바 탕을 이루고 있음과 다름 아니다.
더욱이 영사시詠史詩류 시문들의 경우, 전고典故의 풍성함과 그 비중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여기에는 중국 의 다양한 지명地名, 인명人名은 물론 고대의 경전經典과 당송唐宋의 역대 시문집 등 실로 광범위한 내용이 포함된다. 그래서 이들 시문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고典故의 내용을 상세히 밝힌 역주가 반드시 필요하다. 사실 이런 점이 이 작업을 벌임에 있어서는 가장 힘든 부분이기도 했다. 따라서 충실한 각주의 작업만이 본문의 시문을 이해함에 있어 원저자의 뜻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할 것이란 기 대는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구한말의 조선의 한 선비가 유배 살이란 열악한 환경을 뒤로한 채 좌절하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시작詩作으로 내공을 쌓음이란 존양存養의 법을 터득한 조선 선비의 지혜라 해야 할 것이다. 불후不朽의 역작力作인 저자의 시문들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면서 공감할 수 있는 폭을 넓혀 나가기 위해선 바로 이 책 역 주본을 통해서 가능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으로부터 꼭 4년 전의 일이다. 근 1년 남짓의 기간 동 안 온전히 이 책『 청용만고』의 역주 작업에만 매달려 그 역주본의 초고를 완성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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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 대한제국大韓帝國 시절, 제주 역사를 담은 시문집 『청용만고聽舂漫稿』!
聽舂漫稿(天) 『청용만고』 천(天)편(001~275)
自叙 자서
001 予以丁酉三月初吉發南遷之行自仁港乘汽輪第三日泊羣倉浦是日卽三月三日也與塘雲韓參書善會共賦於舟中以紀行
내가 정유(丁酉, 1897)년 3월 초하루에 남녘땅으로의 귀양살이를 떠나게 됨에 인천항에서 화륜선(火輪船)을 타고 출발하여 3일째 되는 날 군산(群山)항에 잠시 정박하였다. 이 날이 곧 삼짇날(3월 3일)이기에 당운(塘雲) 한선회(韓善會) 참서(參書)와 더불어 배 안에서 서로 시를 지어 기행(紀行)으로 삼았다. 82
002 舟過木浦
배를 타고 목포를 지나며 82
003 出木浦過楸子島前洋
목포에서 나와 추자도 앞 바다를 지나며 83
004 暮泊少安島舟中望漢挐山作長句
날 저물어 소안도에 정박함에 배 안에서 한라산을 바라보며 장구(長句)를 지음 83
005 初五日巳刻抵泊于山芝浦乃濟之初境下陸所也牧使李君秉輝遣校探慰舘于本郡舊作廳廢宇荒凉滿目蕭然與塘雲共賦以紀事
초5일 10시 경에 산지포에 이르니 제주에서 처음 마주한 경계로 하륙(下陸)하는 곳이라. 목사(牧使) 이병휘(李秉輝) 군이 장교(將校)를 보내어, 근심을 풀 공간을 물색하여 본 군(郡)에서 예전 아전들의 청사[作廳]로 사용했던 낡은 집으로 안내했는데, 황량하고 대번에 쓸쓸해 보였다. 더불어 당운(塘雲)과 함께 시를 짓고 일을 기록해둔다. 86
006 雨中與塘雲共吟
비 내리는 가운데 당운(塘雲)과 함께 읊음 86
007 初八日牧使遣吏移舘于西門外姜弁家
초8일에 목사가 아전을 보내어 숙소를 서문 밖 강변(姜弁)의 집으로 옮기도록 함 87
008 次塘雲
당운(塘雲)의 시를 차(次)하여 87
009 又贈塘雲
다시 또 당운(塘雲)에게 드림 88
010 次塘雲二首
당운(塘雲)의 시를 차(次)하여 2수 88
011 同來巡檢二人告㱕感而有作贈塘雲
함께 온 순검(巡檢) 두 사람이 돌아감을 알리므로 느낌이 있어 시를 짓고 당운(塘雲)에게 줌 90
012 睡起
낮잠 자다 깨어나서 90
013 余在島日久得見其所謂耽羅志所載前人詩文類以仙釋弔詭之說津津於吟哢至于謠俗之異同民事之辛艱不及道焉語雖工矣終非近於實際遂作瀛洲雜絶二十八首皆土人居處生理衣服飮食日用常事也使采風者卽此以観之則山川風土槪可知耳
내가 섬에 와 머문 지 여러 날 되어서 이른바 『탐라지(耽羅志)』란 책을 얻어 그것에 실린 앞 사람의 시․문장(詩文章) 류(類)를 일별해보았다. 선․불(仙佛)의 황당무계한 설들로서 읊조리기에는 흥미진진해도, 노래와 풍속의 다름과 같음, 백성들의 일에서 겪는 어려움에 관해서는 사리(事理)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말이 설령 정교하긴 하나 유치하며 끝내는 실제와도 동떨어져 있다. 그래서 <영주잡절(瀛洲雜絶)> 28수를 지었는데, 모두 토착민의 거처(居處)․생리(生理)․의복(衣服)․음식(飮食) 등 날마다 이용하는 일상적 일들이다. 제주의 풍속을 채집하려고 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곧 이것을 통해 보면 곧 산천(山川)과 풍토(風土)를 대개 알 수 있도록 함이니라. 91
014 次塘雲
당운(塘雲)의 시를 차(次)하여
015 與隣人夜坐偶成
이웃 사람과 더불어 밤에 앉았다가 우연히 시를 이룸
016 獨坐
혼자 앉아서
017 州人高生性訓來見賦以示之二首
주(州)에 사는 사람 고성훈(高性訓) 유생이 찾아와 얼굴을 내보이기에 그에게 시 2수를 지어 보여주다.
018 次塘雲
당운(塘雲)의 시를 차(次)하여
019 錦樵牧使李秉輝別号送示餞春之作故次以謝之
금초(錦樵, 곧 목사 이병휘 별호)가 전춘(餞春)의 시를 지어 보내와 보여주었기에 그것에 감사하며 차(次)함
020 島中彌月不雨幾至無麥闻牧使方設榮祀至四月初五日午刻東風始至雨随而作竟夜遂洽喜成一律簡牧使以賀
섬에서 달포 내내 비가 내리지 않아 수확할 보리가 거의 없을 지경에 이르자, 목사가 바야흐로 기우제(祈雨祭)를 올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마침내 4월 초5일 오시(午時)경에 이르자 동풍이 불기 시작하더니 뒤따라 비가 밤새껏 내려 흡족하게 되었다. 이에 기쁜 나머지 율시 한 편을 짓고 간찰(簡札)을 목사에게 보내어 축하하다.
021 寄塘雲疊前韵
앞의 운을 거듭 써서 시를 지어 당운(塘雲)에게 주다
022 佛日與數人出往海岸
불탄일(佛誕日)에 몇 사람과 더불어 해안으로 나가다
023 獨成
홀로 이룸
024 寄塘雲
당운(塘雲)에게 드림
025 睡起
낮잠 자다 일어나서
026 示高生時幹
고시간(高時幹) 유생(儒生)에게 시를 지어 보임
027 次塘雲
당운(塘雲)의 시에 차(次)함
028 柳橫城東根亦同謫人也闻其移舘于北水門內為避暑之計乘夜徃訪卽尹姓人家也泉石林竹幽闃瀟洒有叢林禪房之想焉仍提燈緣厓不數十武登拱辰亭少坐納凉四界天海蒼黑洞洞不辦俯瞰全城燈光歷歷可数中夜廖廓感而有作
횡성(橫城) 유동근(柳東根) 또한 같은 유배객이라. 머무는 관사를 북수문(北水門) 안쪽으로 옮겼다는데, 피서할 계획이란 이야기를 들었다. 야음을 틈타 그곳을 방문해 갔더니, 곧 윤씨(尹氏) 성을 지닌 집이었다. 천석(泉石)이 그윽하고 대숲이 깨끗하고 산뜻하니, 우거진 숲속의 선방(禪房)을 차려놓은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에 등불을 잡고서 이내 몇 발자국 옮기지 않아 공신정(拱辰亭)에 올랐다. 조금 앉아 있으려니 사방이 서늘해지며, 하늘과 바다가 아득히 멀고 텅 빈 듯해 보이기에 느낌이 있어 시를 지었다.
029 庭前移種蜀葵二本久而凋萎無生意
마당 앞에 접시꽃[蜀葵] 2본을 옮겨 심었는데, 오래 되자 시들어버려서 살아날 가망이 없어 보인다.
030 出门書感
문을 나서며 느낌을 적다
031 七月旣望本州諸儒倣東坡故事攜酒賞月有詩盈軸持以示予要其點評故略為甲乙之仍示作
칠월기망(七月旣望) 날에 본주의 여러 선비들이 소동파(蘇東坡)의 「적벽부(赤壁賦)」 고사를 모방하여 술병을 지니고 달을 감상하면서 시를 지었는데, 시축(詩軸) 가득한 것을 나에게 보이면서 점(點)을 찍어 평(評)해주기를 요청하기에 대략 갑을(甲乙)이 됨을 제시하며 이에 짓다.
032 聴人話白鹿潭戱作白鹿潭歌
사람들이 백록담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듣고서 장난삼아 ‘백록담가(白鹿潭歌)’를 지음
033 廚政冷淡忘味久矣朝命廚僮買肉㱕告曰肉為飢烏所攫空手而回戱成長句觧之
부엌 살림살이가 담박하여 밥맛을 잃은 지가 오래 되었다. 아침에 부엌일 시중드는 아이에게 고기를 사오도록 명하였더니, 돌아와 보고하기를 고기는 굶주린 까마귀가 낚아채어 가버려 빈손으로 돌아왔다고 하기에 장난삼아 장구(長句)를 지어 그 일을 해명하다.
034 錦樵誦示其所作落葉詩次其韵酬之
금초(錦樵)가 암송하여 보여준 시에 낙엽시(落葉詩)를 지었던 바, 그 운에 차(次)하여 그것에 응수하여 짓다.
035 予偶以疸症彌月未瘳牧使數來問憫余呻吟憔悴若將不起遂約束詩社諸友課日為文會於敝館以慰病懷又送四友濟勝之具以完厥事盛意殷摯感不可喩夕後社中諸客次第來會會者有塘雲韓善會東谷李訓長基瑢錦石成旌義俊鎬道村金進士炳胤樂泉金主事熙斗蓮舫鄭顯龟禾史金炳鎬海隱高先達仁炯各賦近軆一首暢吟諧謔遂至更阑稍得忘病大過峨眉啚一幅矣厚意不可孤仍於病枕次其韵
내가 우연히 황달(黃疸)에 걸려 달포가 지나도록 쾌차(快差)하지 않자, 목사가 여러 번 문병을 와 내가 신음하며 초췌해하는 모습을 보고선, 만약 장차 일어나지 못할 것을 걱정하여 마침내 시사(詩社)의 여러 벗들과 약속하기를, 날을 잡아 병석의 회포를 위로하기 위해 폐관(敝館)에서 모여 글을 짓기로 하였다. 게다가 그 일을 완성하도록 명승지(名勝地)를 시제 삼아 구경할 도구로서 문방사우(文房四友)인 종이[紙]․붓[筆]․벼루[硯]․먹[墨]을 보내왔다. 그 왕성한 의지가 은(殷)나라 재상인 이윤(伊尹)과 같아 그 고마운 느낌을 말로 다 비유할 수 없을 지경이다. 저녁 식사 뒤에 시사(詩社)의 여러 벗들이 차례로 와서 모였다. 모인 사람으로는 당운(塘雲) 한선회(韓善會)․동곡(東谷) 이기용 훈장(李訓長基瑢)․금석(錦石) 성준호 정의(成旌義俊鎬)․도촌(道村) 김병윤 진사(金進士炳胤)․낙천(樂泉) 김희두 주사(金主事熙斗)․연방(蓮舫) 정현귀(鄭顯龜)․화사(禾史) 김병호(金炳鎬)․해은(海隱) 고인형 선달(高先達仁炯) 등이었다. 제각기 근체시(近體詩) 한 수씩을 짓고 유창하게 읊조렸다. 웃음을 자아냄이 마침내 한밤중에까지 이르자 큰 허물이었던 병을 차츰 잊어버리게 되었다. 한 폭의 <아미도(峨眉圖)>와 같은 두터운 후의(厚意)를 입었기에 외로울 수가 없는 일이었고, 그러기에 병석의 베갯머리에서 그 운(韻)을 차(次)하여 짓는다.
036 翌夜又會牧使送酒錢以侈其事迫昏未及設供卜以異日只用小酌為眞率會
다음날 밤에 또다시 모였는데 목사가 그 일을 풍성하게 할 양으로 술과 돈을 보내왔다. 날이 어두워져 미처 준비하지 못해 다른 날을 점쳐 자리를 마련키로 하고, 다만 작은 술자리로 진솔한 모임을 가졌다.
037 詩社僉員來會會必有作盖欲為予忘病也不敢以疾辭輒和之
시사(詩社) 회원 여러분이 와서 모였다. 모이면 반드시 시를 지어야 했는데, 대개 내가 병을 잊어버리도록 하려 함에서라. 병이 들었다고 감히 사양하지 못하고 문뜩 그것에 화답하다.
038 夜會
밤 모임
039 翌夕
이튿날 저녁
040 連日風雨甚大會者不能齊
연일 비바람이 심하게 몰아쳐서 큰 모임이란 게 여의치 않음
041 錦樵夜枉与諸員賦
금초(錦樵)가 밤에 왕림(枉臨)하여 여러 시회 회원들과 더불어 짓다.
042 翌夜會
이튿날 밤의 모임
043 入冬以來不見雪是日北風甚緊海雲四暗仍作大雪而到地便消與諸員共賦
겨울로 들어선 이래 눈을 보지 못했었는데, 이 날에는 북풍이 매우 심하게 불고 바다에 구름이 잔뜩 끼어 사방이 깜깜하더니 이내 큰 눈이 내렸지만 땅에 닿자마자 곧바로 녹았다. 여러 회원과 더불어서 함께 시를 지었다.
044 夜會是日卽小雪日
밤 모임이 있는 날, 이 날이 곧 소설(小雪) 절기의 일이라.
045 錦樵以夜為約適有公事未果來与諸員共吟
금초(錦樵)가 밤에 오기로 약속했었는데, 마침 공적인 일이 생겨 오지 못하게 되어 여러 회원과 더불어서 함께 읊다.
046 翌夜來者參差約以末至者罰之以詩為著令
이튿날 밤 오는 사람들이 들쑥날쑥 때 맞춰 오지 않기에, 약조하기를 맨 끝에 도착하는 이에게 벌로써 시를 짓게 해 영(令)을 드러내기로 했다.
047 牧使夜來與諸員密約預拈韻臨席卽誦其所作欲以困余故倉猝口呼應之
목사가 여러 회원들과 더불어 밤에 왔는데, 몰래 약조하기를 미리 운(韻)을 정해 자리에 임했다가 곧바로 지은 것을 낭송하기로 했는데, 나를 난처하게 만들려 함에서라. 그런고로 허둥지둥 하며 급작스레 부르는 데로 그것에 응하다.
048 雨夜小會
비오는 날 밤의 작은 모임
049 錦樵夜會共賦
금초(錦樵)와 밤에 모여 함께 시를 지음
050 又與錦樵共賦
또다시 금초(錦樵)와 더불어 읊음
051 翌夜錦樵又會
이튿날 밤에 금초(錦樵)와 또다시 만남
052 雪夜又會
설야(雪夜)에 또 모임
053 與錦樵同作諸客亦會
금초(錦樵)와 더불어 같이 짓는데 여러 손님 또한 모였다.
054 翌夜會酌
이튿날 밤에 모여 수작(酬酌)함
055 錦樵將行巡所部三郡明當發程徃還計消旬餘預拈十五韵自東冬江次第約徃返前各賦相和
금초(錦樵)가 장차 순력(巡歷)을 행하면서 세 군(郡) 소속의 관하로 내일 떠나는 바, 가서 돌아오는데 십일 남짓 걸리기에 미리 ‘東(동)’․‘冬(동)’․‘江(강)’으로부터 차례로 15 운(韻)을 뽑아 돌아오기 전까지 각자 짓고 서로 창화(唱和)하기로 약속하다.
056 夜雪作仍雨諸員皆來會
밤에 눈이 내리다가 이내 비로 바뀌었는데, 여러 회원들이 모두 찾아와 모임
057 錦樵於巡行中路寄書以問故賦以答之
금초(錦樵)가 순력(巡歷)을 행하는 중에 길에서 문안 서신을 부쳐왔기에, 고로 시를 지어 그것에 답하다.
058 夜會諸客共賦每夕例得一詩
저녁 모임에서 여러 객들과 함께 시를 지었는데, 매일 저녁 본보기로 시 한 수를 얻었네.
059 雪後
눈 내린 뒤
060 見新曆有感
새 달력 보고 느낌 있어
061 夜會
밤 모임
062 東谷李基鎔以詩居魁硏農洪鍾時生男又得抱孫故各令設一卓為夜會濟勝之具是夜硏農大設盤筵而錦樵亦於是日還官夕後來會
동곡(東谷) 이기용(李基鎔)이 시로써는 장원(壯元)이요, 연농(硏農) 홍종시(洪鍾時)는 아들을 낳은 데다 손자까지 봤으니, 제각기 독상(獨床)을 마련하여 제법 훌륭한 야회(夜會)의 구색을 갖추었다. 이날 밤 연농(硏農)이 잔칫상을 차렸고, 금초(錦樵) 또한 이날 관으로 돌아와 저녁 뒤에 찾아와 만났다.
063 後夜
후야(後夜)
064 夜會
밤 모임
065 冬至前一日
동지(冬至) 하루 전 날
066 南至日會
동짓날 모임
067 錦樵自三郡回示其在途所作諸稿又拈韵以寄社中故與諸員共賦
금초(錦樵)가 세 군(郡)으로부터 도중에 지었던 바의 여러 원고를 회시(回示)해 보였고, 운(韻)을 뽑아 사중(社中)에 부쳤기에 여러 회원들과 더불어서 함께 짓다.
068 賤降日諸客來會
생일(生日)에 여러 객들 찾아와서 모임
069 夜有小酌牧使亦來而病徑歸
밤에 작은 술자리가 있었는데 목사 또한 찾아왔다가 탈이나 곧 돌아가다.
070 是日有小雪
이 날, 소규모로 눈이 쌓임
071 錦樵寄示所作与諸客共次
금초(錦樵)가 지은 것을 부쳐와 내보였기에 여러 객들과 더불어서 함께 차(次)하다.
072 與諸客賦
여러 객과 더불어서 지음
073 夜與錦石言別
밤에 금석(錦石)과 더불어서 이별을 말하다.
074 翌夜小酌
이튿날 밤의 작은 술자리
075 錦石成俊鎬入島家焉已十八秋矣癖於詩自九月望後相從於詩社雖風雨倥傯未嘗一日廢也逼歲將歸夜會叙別
금석(錦石) 성준호(成俊鎬)가 입도(入島)해서 가정을 꾸린지 어언 18년이라. 시를 좋아하는 성벽(性癖)으로 지난 9월 보름부터 시사(詩社)에서 서로 만났는데, 비록 비바람 치고 일이 많아 바쁘더라도 하루도 빠지는 날이 없었다. 장차 섣달그믐 전에 돌아갈 것이라고 하니 밤 모임에서 이별을 서술하노라.
076 十二月十二日夜月色甚好自前月念後陰曀雨雪不見天已數旬矣人爲之病是夜晴明近所稀覯也諸人共會喜而有作
내려 어둡고 음산했는데, 하늘을 보지 못한 지가 이미 수십 일 째여서 사람이 병이 날 지경이었다. 이날 밤은 맑고 밝아서 근래 드물게 마주하는 광경이었기에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 기뻐하며 시를 지었다.
077 疊前韵
앞의 운자를 써서 지음
078 風雨甚大不能盡會与數三客夜吟
비바람이 몹시 심해 다 모이지 못해서 숫자로 고작 세 명의 손과 더불어 밤에 읊다.
079 共次錦樵所示
함께 금초(錦樵)가 보인 바를 차(次)하다.
080 月夜諸客並會
달밤에 여러 객들과 더불어서 모임
081 翌夜又雨
다음날 밤에 또 비가 내림
082 次錦樵
금초(錦樵)의 시를 차(次)하여
083 次塘雲
당운(塘雲)의 시를 차하여
084 夜坐
밤중에 앉아서
085 寒夜闻砧
추운 밤에 듣는 다듬이질 소리
086 寄錦樵
금초(錦樵)에게 드림
087 歲垂盡人事倥傯會不能齊与道村東谷共賦
세밑이라 모두 일이 많고 바빠서 모임이 가지런하지 못해 도촌(道村), 동곡(東谷)과 더불어서 함께 시를 지었다.
088 戊戌二月初土匪房甲聚衆煽亂豖突入城州城失守三郡波蕩官吏奔竄僅皆身免諸同人在謫者十數人亦四走山谷以避禍旣而踰旬賊魁始就戮州乃獲安三郡守宰次第還職而諸客亦復于舊舘余時以病為辭終始不離所處得免于禍其類塞翁之折股有時乎為福也亂定後追敘其槪為長勾其詳另有紀事冊子于後耳
무술(戊戌, 1898)년 2월 초에 토비(土匪)인 방갑(房甲, 곧 房星七)이 민중들을 취합하고 선동해 난을 일으켜 저돌적으로 성으로 진입해 들어왔는데, 주성(州城)은 지켜내지 못했고 삼군(三郡)은 물결 요동치듯 불안에 휩싸이면서, 관리들은 모두 다 달아나서 겨우 몸을 숨기기에 바빴다. 시회(詩會)의 여러 동인(同人) 가운데 귀양살이 하던 여남은 사람들 또한 사방으로 달아나 산골짜기로 들어가 먼저 화를 피하기도 했다. 그 후 달포가 지나서야 비로소 적의 괴수가 도륙(屠戮)당하면서 주(州)는 이내 안정을 되찾았고, 삼군(三郡)을 지키던 수령들이 차례로 돌아와 다시 직책을 수행하게 되었고, 여러 적객(謫客)들 또한 옛 관사로 복귀했다. 나는 그 때 병석에 있었던 처지라 시종일관 머물던 집에서 자리를 떠나지 못했었는데, 화를 면한 그 유형이 마치 ‘새옹(塞翁)의 다리꺾임’의 때와 같았으니 참으로 복이 아니었던가! 난이 진정된 후의 그 대개(大槪)를 서술하여 부치니 장구(長句)가 되었다. 그 상세한 내용은 별도로 사실을 기록하여 책자 뒤에 붙여 놓을 것이다.
089 金尙書允植雲養李尙書承五三隱徐楊根周輔養泉鄭洗馬丙朝葵園以流謫久縶 囹圄聲问不能相及拘於法禁也今年二月初始得出舘于頌舍於是得相過從會有逆匪之亂東西奔竄幾數十日亂定後復聚同城設詩筵以紓羈懷 時與會者又有韓塘雲及黃監役炳郁少雲光陽人鄭顯龜蓮舫海南人金判官膺斌韋堂本州人金主事鍾河南坡凡十有餘員輸設一筵各成一詩居人稱為古無此擧云而詩不能盡錄略載一二第一筵集雲養舘
운양(雲養) 김윤식(金允植) 상서(尙書)․삼은(三隱) 이승오(李承五) 상서(尙書)․양천(養泉) 서주보(徐周輔) 양근(楊根)․규원(葵園) 정병조(鄭丙朝) 세마(洗馬) 등은 유배되어 적거(謫居)한 지 오래도록 영어(囹圄)의 몸으로 묶이어서 안부를 물어보기만 할 뿐 상종(相從)할 수 없었던 데다 법령으로도 구애(拘礙)되어 금하고 있었다. 금년 2월 초가 되어서야 비로소 머무는 집에 대한 관용이 베풀어져 관사로 나오게 되었다. 그러기에 서로 지나가며 만나볼 수 있었는데, 역비(逆匪)의 난리가 벌어지자 동서로 달아나 숨어 지낸 지 수십 일이 되었다. 난이 평정된 후에 다시 같은 성에 모여 시연(詩筵)을 마련하고 객지의 회포를 풀게 되었다. 이 때 모인 이로 당운(塘雲) 한선회(韓善會) 및 광양인(光陽人) 소운(少雲) 황병욱(黃炳郁) 감역(監役)․해남인(海南人) 현귀(顯龜) 정연방(鄭蓮舫)․본주인(本州人) 위당(韋堂) 김응빈(金膺斌) 판관(判官)․남파(南坡) 김종하(金鍾河) 주사(主事) 등이 있었다. 무릇 여남은 회원들이 번갈아가면서 한 자리씩 시연을 베풀고 각기 시 한 수씩 지었는데, 머물던 사람들이 옛 것을 위한다고 칭하면서 이렇게 거행한 적은 없었다고들 말했다. 시는 모두 다 기록할 수가 없기에 한 두수만 약해서 기재했는데, 그 첫 번째 시연(詩筵)이 운양관(雲養館)에서 열려 모였다.
090 集三隱舘
삼은(三隱)의 집에서 집결함
091 又集雲陽舘
다시 또 운양(雲養)의 집에서 집결함
092 又會雲養舘
또다시 운양(雲養)의 집에 모임
093 復集雲養舘
다시 운양(雲養)의 집에서 집결함
094 又集三隱舘
다시 삼은(三隱)의 집에서 집결함
095 會于葵園舘
규원(葵園)의 집에서 모임
096 佛日又集葵園舘
석가탄신일에 규원(葵園)의 집에서 다시 집결함
097 會三隱舘
삼은(三隱)의 집에서 모임
098 會雲陽舘
운양(雲養)의 집에서 모임
099 集雲陽舘
운양(雲養)의 집에서 집결함
100 五月二十二日雲養三隱枉敝舘拉予同徃毛興穴為消熱遂振衣出由南門到三姓壇卽高良夫三姓所出之地所称毛興穴也穴旁有祠有坍松陰蒼菀竟日休憩行廚午飰及夕晡而歸共十有二人分韵以偶來松樹下高枕石頭眠余得眠字爲七言排律仍成二十六韻
5월 22일에 운양(雲養)과 삼은(三隱) 두 분이 나의 집에 왕림하셔서 나를 데리고 함께 모흥혈(毛興穴)에 가자고 하기에, 열을 식힐 양으로 마침내 옷을 털어 입고서 나와 남문을 경우하여 삼성단(三姓壇, 곧 고․량․부(高良夫) 삼성이 나왔다는 땅인 바, ‘모흥혈(毛興穴)’이라 부르는 곳이다. 구멍[穴] 옆으로 사당이 있고, 단이 있다.)에 이르렀다. 소나무 그늘이 울창하고 무성하여 하루 종일 휴식하며 쉬다가 도시락으로 점심과 저녁을 먹고 돌아왔다. 12인이 함께 ‘偶來松樹下高枕石頭眠(우래송수하고침석두면)’ 중에서 운자(韻字)를 나누어 짓기로 해서 나는 ‘眠(면)’자를 얻어 칠언배율(七言排律)을 지으니, 이로 인하여 26운을 이루게 되었다.
101 分韻旣完軸偶作五排五絶七絶六言呈諸員用分韵頭字三十四韻
분운(分韻)을 미리 완결해서 시축(詩軸)에 적고, 우연히 오언배율(五言排律)․오언절구(五言絶句)․칠언절구(七言絶句)․육언(六言)을 지어서 여러 회원들에게 나눠주었다. 분운(分韻)인 ‘頭(두)’자를 이용해서 (오언배율) 34운(韻)을 지어냈다.
102 會雲陽舘
운양(雲養)의 집에서 모임
103 柳主事英錫來留本牧冊室設詩筵于他所躬枉見邀共賦
유영석(柳英錫) 주사(主事)가 내려와 목사의 책실(冊室)에 머물렀는데, 다른 장소에서 시연(詩筵)을 마련하고서 몸소 찾아와 초대하므로 함께 시를 짓다.
104 集雲陽舘
운양(雲養)의 집에서 모임
105 九月初二日三隠見招徃赴焉前月卄九日卽三隠台六十二年之弧辰俗謂之進甲也其胤子注書忠稙與其季涉海來覲設小酌以壽之追於是日續開詩筵各賦近軆賀喜
9월 초2일에 삼은(三隱)이 초대장을 보내와서 갔는데, 전 달 29일이 곧 삼은 태(台)가 62세의 생신일, 곧 속칭으로 진갑(進甲)이었다. 그의 후계자인 주서(注書) 충식(忠植)이 막내와 더불어 근친(覲親)하기 위해 바다를 건너와 축수(祝壽)하는 자그만 술자리를 마련하였는데, 이 날에 시연(詩筵)을 속개(續開)하여 각자 근체시(近體詩)를 지어 축하하며 즐겼다.
106 重陽日雲陽三隠拉與共登紗羅峰拈杜韵
중양일(重陽日)에 운양(雲養)․삼은(三隱)과 더불어서 함께 사라봉(紗羅峰)에 올라 두운(杜韻)을 따서 짓다.
107 雲陽舘小集
운양(雲養) 집에서의 작은 모임
108 十一月初三日曉初擧一孩兒感而有作寄示同人
11월 초3일 새벽에 한 어린 아기를 처음으로 들어 올렸으니 감격하여 시를 짓고 여러 동인(同人)에게 보여드리다.
109 謫舘同人多和前韻為余賀喜故戱續二頁
적객(謫客) 머무는 숙소의 동인(同人) 여럿이서 앞의 운에 화답하며 나를 위해 축하하고 기뻐하기에 장난삼아 연속으로 2수를 짓다.
110 戱題秋山牧牛啚
장난삼아 ‘가을 산 목우도(牧牛圖)’란 시를 짓다.
111 冬初移館于所謂司馬齋齋卽本州文進所會之堂也故額之以桂蓮堂故牧使白樂淵捐俸以助於建齋之初云本倅金熙冑之允承培執書來问字十月之望夜來拈唐詩要共賦故賦以示之
겨울 초에 이사를 했는데, 이른바 ‘사마재(司馬齋)’라고 하는 곳이다. ‘사마재’는 곧 본 주(州) 문진(文進)들이 모이던 공회당(公會堂)이었는데, 그래서 편액(扁額)하기를 ‘桂蓮堂(계련당)’이라 했다. 예전 목사 백낙연(白樂淵)이 자신의 봉급에서 출연(出捐)하여 처음 재(齋)를 건조(建造)할 때에 도왔다고 전한다. 본 고을 원님 김희주(金熙冑)의 아들 승배(承培)가 서첩을 가지고 와서 글자를 묻더니, 10월 보름날 당시(唐詩)에서 운자를 뽑아 와서 함께 시를 짓자고 하니 고로 지어서 그것을 보인다.
112 又與金生承培拈韵
김승배(金承培) 생도와 더불어 운(韻)을 잡다.
113 金生將告帰拈韵敘別
김(金) 생도가 돌아가겠다고 하니 운을 잡아 헤어지는 정을 펼치다.
114 又疊前韵
다시 앞 운을 반복해 씀
115 又用前韻
다시 앞의 운을 써서 지음
116 金生臨帰拈唐詩韵約以各賦寄示故依韵賦寄
김(金) 생도가 돌아갈 적에 당시(唐詩)의 운자들을 잡아서 각기 시를 지어 보여줄 것을 약속했기에 고로 운자에 의해 짓고서 보내다.
117 又寄金生拈唐詩
다시 김(金) 생도에게 당시(唐詩)의 운(韻)을 잡아 줌
118 竹裏齋
대숲 속의 집
119 茂亭鄭承宣萬朝謫于珎島其季葵園洗馬丙朝同時謫濟州與余式日相從焉茂亭自珎島有擬古詩寄示故次以酬之
무정(茂亭) 정만조(鄭萬朝) 승선(承宣)이 진도(珍鳥)에 적거(謫居) 중인데, 바로 손아래 동생이 규원(葵園) 정병조(鄭丙朝) 세마(洗馬)로서 같은 시기에 나와 함께 제주로 와 적거하면서 매일 만나고 있다. 무정(茂亭)이 진도에서 쓴 의고시(擬古詩)가 있어 보내와 보여주었기에 고로 차(次)하여 그것에 응수한다.
120 雲養尙書之胤子洗馬裕會自京舟載盆梅一本以來供于其親所梅方始開雲養為梅花特設一會招同人共賦
운양(雲養) 상서(尙書)의 큰아들인 김유회(金裕會) 세마(洗馬)가 서울에서 배에다 매화 1본을 싣고 와서 부친에게 드렸는데, 매화가 이제 막 꽃망울을 터뜨리려고 할 참이었던 바, 운양이 매화를 위한 한 모임을 특별히 마련해서 동인(同人)들을 초대하기에 함께 부친다.
121 復集三隱舘為梅花會
매화 모임을 위해 다시 삼은(三隱)의 집에 집결하다.
122 雲陽以謎語人名賦水仙花盖以文為戱也敬次
운양(雲養)이 수수께끼로 사람 이름을 수선화(水仙花)로 시 지으니, 대개 글로써 희롱하기 위함이라. 공경하여 차(次)한다.
123 雲陽作回文詩八音十二星二十八宿諸軆詩同人皆和之余亦次其韵而錄其二
운양(雲養)이 회문시(回文詩)를 짓기를, 팔음(八音)․십이성(十二星)․이십팔수(二十八宿) 등 여러 체를 쓴 시이기에 동인(同人)들이 모두 그것에 화답했다. 나 역시 그 운(韻)을 차(次)했는데, 그 두 번째의 것을 기록해 둔다.
124 建除詩賦雪
건제시(建除詩)로 ‘설(雪)’을 짓다.
125 落照
지는 햇빛
126 次塘雲立春日作
당운(塘雲)의 입춘(立春)일에 지은 것을 차(次)하다.
127 塘雲用前韻作除夕元朝詩同人皆和焉仍次之
당운(塘雲)이 앞의 운을 사용해서 제석(除夕)과 원조(元朝)의 시를 지으므로 동인(同人) 모두 이에 화답하는 시를 지었는데, 그러기에 그것을 차(次)하다.
128 己亥元朝
기해(己亥, 1899)년 새해아침
129 送歲之夕雲養設屠蘇飮會者共十有三人用故事先酌少者以為懽席散仍賦其事三十四韻呈雲養老先生兼寄仝人要咊
한해를 보내는 날 저녁, 운양(雲養)이 마련한 도소주(屠蘇酒) 마시는 모임에 모인 자가 모두 열 서넛인데, 고사(故事)에 따라 나이 젊은 이가 먼저 술을 마시는 즐거운 자리를 만들고 헤어졌다. 이로 인해 그 일을 34운을 써서 운양 노선생에게 드리고, 아울러 동인들에게 주어 화답을 요청했다.
130 疊前韻戱作詩謎
앞의 운자를 써서 장난삼아 수수께끼 시를 짓다.
131 次塘雲人日之作
당운(塘雲)의 ‘인일(人日)’이란 시에 차(次)하다.
132 風雨夜坐
비바람 치는 날 밤에 앉아
133 入年後幾無日不雨人以為病適上元之日暫得晴天塘雲喜而有詩仍續和原韵
새해 들어 비오지 않은 날이 거의 없을 정도여서 사람이 병이 생길 지경인데, 때마침 음력 정월보름날 잠시 쾌청한 날씨를 보여 당운(塘雲)이 반가움에 시를 지었기에 계속 원운(原韻)을 써서 화답하다.
134 連日甚風雨次塘雲所示之作
연일 비바람이 몹시 불어댔는데, 당운(塘雲)이 지어서 보인 바에 차(次)하다.
135 柳主事永錫号菊史随牧使來留策室設詩筵于雲養舘以書招余是夜風雨甚大佳速不敢違故冒湿往赴
유영석(柳永錫, * 호가 菊史임) 주사(主事)가 목사를 따라서 와서 책실(冊室)에 머무는데, 운양(雲養)의 집에서 시연(詩筵)을 마련하고서 편지로 나를 초대했는데, 이날 밤 비바람이 몹시 심했어도 아름다운 부름을 어기지 못해서 눅눅함을 무릅쓰고 찾아가 만났다.
136 花朝日諸舘謫客皆來會有小酌以玉壺買春賞雨茅屋分韵得賞字六言二首
화조일(花朝日, 곧 음력 2월 15일)에 여러 집에 흩어져 살던 적객(謫客)들이 모두 찾아와 모여 조그마한 술자리를 마련했는데, ‘玉壺買春賞雨茅屋(옥호매춘상우모옥)’이란 문장의 각 글자로써 나누어 운자로 삼기로 했기에, ‘賞(상)’자를 얻어 육언시(六言詩)를 짓다.
137 菜花
나물꽃
138 羅記注斗永黃將作炳郁將帰湖南出舍於拱北浦土人謂之別島又稱禾北浦候風未發寒食日偕四五伴出東門行十里徃別
나두영(羅斗永) 기주(記注)와 황병욱(黃炳郁) 장작(將作)이 곧 호남으로 돌아가려고 숙소를 나와서 공북포(拱北浦, * 곧 토박이 사람들은 별도(別島)라 부르는데, 곧 화북포(禾北浦)이다.)에서 적당한 바람 일기를 기다린다는데, 아직 떠나지 않았기에 모두 너더댓 명과 함께 동반하여 동문을 나서서 십리를 가서 송별했다.
139 拱北鎭
공북진(拱北鎭)
140 城樓春眺
성루(城樓)에서 봄을 조망(眺望)함
141 次隣人種花韵
이웃사람의 ‘꽃을 심음[種花]’이란 시의 운을 차(次)함
142 養花雨次隣塾
‘꽃 키우는 비[養花雨]’, 이웃 학당의 시에 차운(次韻)함
143 疊前韵
앞 운에 중첩하여 지음
144 次人詠白鷗
남이 읊은 ‘백학(白鶴)’이란 시를 차(次)함
145 次人郊行作
남이 지은 ‘교행(郊行)’이란 시에 차(次)하여
146 次鄰塾韻
이웃 학당의 시운(詩韻)을 차(次)하여
147 又次塾韵
다시 또 이웃 학당의 운에 차(次)하여
148 又次
다시 차(次)함
149 又次
다시 차(次)함
150 病中偶拈柳柳州城楼韻
병치레 중 우연히 유유주(柳柳州)의 ‘성루(城樓)’ 운(韻)을 뽑다.
151 跨牛吹篴次隣塾韵
‘소를 타고서 피리를 불다’, 이웃 학당의 운을 차(次)함
152 春日病中獨臥集句七律七頁
봄날 병석에 홀로 누워 집구시(集句詩)를 짓다.(* 칠언율시 7수)
153 又集句七絶五頁
또다시 집구시(集句詩)를 지음(* 칠언절구 5수)
154 葵園盆種躑躅花作詩寄示故次以答之
규원(葵園)이 철쭉꽃을 화분에 심고서 시를 지은 뒤에 보였기에, 그 시를 차(次)하여 답(答)하다.
155 病枕偶拈唐人詩
병석의 베갯머리에서 당인(唐人)의 시를 우연히 뽑아 짓다.
156 病思
병석에서의 생각
157 出門
문을 나서며
158 三隠台有南水門疏風之約而以病未赴賦此以寄諸公
삼은(三隱) 태(台)가 남수문(南水門)에서 바람을 쐬자는 약조(約條) 있었지만, 병으로 참석 못함을 시로 지어 이것을 여러 공(公)들에게 드리다.
159 養泉葵園來誦其南水阁所作故依韵和之
양천(養泉)과 규원(葵園)이 와서 남수각(南水閣)에서 지었던 바의 시를 낭송하기에, 그 운자에 의거해 시를 지어 화답하다.
160 東谷李基瑢予入島後最先識往年予淹病久臥同人為詩會以消病情幾無日不相見今年闻其有疾屡往慰存遽焉訃至甚愴然為詩哭之
동곡(桐谷) 이기용(李基瑢)은 내가 이 섬에 들어왔을 때 가장 먼저 알고 지냈던 사람이다. 지난 해 내가 오래 병을 앓아누웠을 때, 병 생각을 해소시키기 위한 시회(詩會)를 열어 거의 날마다 만나지 않은 날이 없었다. 금년에 듣기로 그가 병을 앓았다고 하기에 자주 가서 위로하곤 했는데 별안간 부음 소식을 듣고는 매우 슬프기에 시로써 곡(哭)하노라.
161 登北水門
북수문(北水門)에 올라서
162 睡起
잠에서 깨어나서
163 春暮書事
봄 저무는 날의 일을 적음
164 遣意
생각을 떨쳐버리고서
165 望海
바다를 바라보며
166 雨後
비가 내린 뒤에
167 代人別妓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기생을 이별함
168 三月晦日葵園立論為餞春之會同人各辦一哭期赴于敬信齋各賦一律至莫乃罷
삼월 그믐날에, 규원(葵園)이 논의를 꺼내기를, 전춘(餞春)을 위한 모임에서 동인(同人) 각자가 한바탕 소리 내어 시를 읊조리기로 기약하였기에 경신재(敬信齋)로 가서 제각기 율시를 짓고 저물어서야 이내 파했다.
169 燕坐拈唐詩
편안히 앉아서 당시(唐詩)를 뽑다.
170 拈高常侍詩
고상시(高常侍)의 시를 뽑고서
171 拈孟襄陽詩
맹양양(孟襄陽)의 시를 뽑고서
172 又拈
다시 앞 시인의 시를 뽑아들고서
173 拈王右丞詩
왕우승(王右丞)의 시를 뽑고서
174 夕後次王右丞詩
저녁 뒤에 왕우승(王右丞)의 시를 차(次)함
175 又拈
다시 앞 시인의 시를 뽑아들고서
176 四月八日會于拱辰亭次三泉齋板上韵
사월 초파일에 공신정(拱辰亭)에 모여 삼천재(三泉齋)의 판상(板上) 운을 차(次)하다.
177 小雨拈孟襄陽詩
약하게 비 내리는 날 맹양양(孟襄陽)의 시를 뽑다.
178 四月旬二朝作漢山之行出門口占
사월 열이틀 날에 한라산에 가려고 문을 나서며 구점(口占)하다.
179 行到十里餘途邉少憩
가다가 십리 남짓한 거리에 이르러 길가에서 잠시 쉬다.
180 將到蟹眼道中少坐
곧 해안(蟹眼) 마을에 이르게 될 터인데, 길에서 잠시 앉아 쉼
181 憩蟹眼後麓遇邨女問路口占記所見
해안(蟹眼)마을 뒤쪽 기슭에서 쉬다가 우연히 시골 아낙을 만나 길을 묻고선 본 바를 구점(口占)하여 적다.
182 入蟹眼邨金弁寧國家
해안(蟹眼)마을에 이르러 김영국(金寧國) 서리[弁]의 집에 들르다.
183 宿蟹眼
해안(蟹眼)마을에서 하룻밤을 묵다.
184 發向瀛室途中口占
영실(瀛室)을 향해 출발했는데, 도중에 구점(口占)하다.
185 行僮於林中採迷陽及木頭菜以來撐鍋烹之為行饌眞絶味也口號一絶
동행한 시동(侍僮)이 숲속에서 고비고사리와 드릅채를 채취해 와서 노구솥에 걸어 그걸 삶아내니 간식으로서 참으로 맛이 빼어나서 입으로 소리 내어 한 절구를 읊다.
186 行午飯於林中
가다가 숲 속에서 점심을 먹다.
187 山行甚勞戱占長勾自慰
산행(山行)이 매우 수고롭기에 장남삼아 긴 구절로 구점(口占)하고, 스스로 위안삼다.
188 宿瀛室石广
영실의 바위에 의지한 돌집에서 묵다.
189 自瀛室至鹿潭二十里而近峰頂多奇巖怪石皆成形物不可具狀洵奇觀也
영실(瀛室)에서 백록담까지 이십 리인데, 산봉우리 꼭대기에 가까이 이르고 보니 기암괴석(奇巖怪石)이 많고, 모두 사물의 형상을 띠고 있어서 뭐라 형용키 어려운, 참으로 기이한 장관일지라.
190 再宿石室因憶故判官金公緻柏谷金公得臣之考也漢挐山所作山行詩次其韵
다시 석실에서 묵으며 옛 판관 김치(金緻, * 백곡 김득신 공의 부친임) 공(公)께서 산행을 하면서 지었던 <한라산(漢拏山)>이란 시가 떠올려지기에 그 시의 운을 차(次)하여 짓다.
191 翌日發行向白鹿潭山路甚高峻十步輒一休途中次金公緻韻
다음날 백록담을 향해 출발했는데, 산길이 매우 높고 험준해서 열 걸음 내딛고 돌연 한번 쉬었다. 도중에 김치(金緻) 공이 지은 시의 운을 차해서 짓다.
192 逰白鹿潭
백록담에서 노닐다.
193 白鹿潭東麓下作帰行到火田少憩
백록담 동쪽 기슭 아래로 내려 돌아갈 길을 만들다가 화전(火田)에 이르러 잠시 쉬다.
194 將至州城十餘里許途傍休憩
앞으로 주성(州城)에 이르려면 10여리 가량 남았는데 깊 옆에서 쉬며 휴식하다.
195 乘月到毛興壇
달빛 타서 모흥혈(毛興穴) 앞마당에 이르다.
196 歸後追作長勾紀山行五言三十四韻
돌아온 뒤에 추가로 장구(長句)를 지어 산행을 기념했는데, 오언(五言) 34운(韻)이라.
197 旌義梁訓長之胤晉亨挾笈遠至從余求益故余衰病無可以副其求然旣嘉其意而勉應焉隣閈高梁二少年蝩而請業逐日課程故賦此示之
정의(旌義)고을 양(梁) 훈장의 자제 진형(晉亨)이 책 봇짐을 끼고서 멀리 나에게로 와 가르침을 구하기에 내가 병으로 쇠약해진 몸이라서 그 요구에 부응하긴 힘들었으나 대개 그 뜻이 가상하다고 여겼기에 억지로 응했다. 그러자 이웃집의 고(高) 양(梁)의 두 소년도 뒤따라 와서 수업받기를 간청하기에 날마다 과정(課程)을 세움으로 이에 이 시를 지어 그들에게 보여주다.
198 為塾生作示之
글방 서생들을 위해 지어서 그것을 내보이다.
199 又示
다시 지어 보여줌
200 又示
다시 또 지어 보임
201 新鷰示塾生日課
‘新鷰(신연)’이란 제하(題下)의 시를 지어 글방 생도들에게 보이고 일과(日課)로 삼음
202 蜘蛛示塾生日課
‘거미[蜘蛛]’(* 시를 지어 글방 생도들에게 보이고 일과(日課)로 삼음)
203 古木示塾生日課
‘고목(古木)’(* 시를 지어 글방 생도들에게 보이고 일과(日課)로 삼음)
204 典衣沽酒示塾生日課
옷 저당 잡혀 술을 사옴(* 시를 지어 글방 생도들에게 보이고 일과(日課)로 삼음)
205 遠浦漁火示塾生日課
먼 포구에서 보이는 고깃배 불(* 시를 지어 글방 생도들에게 보이고 일과(日課)로 삼음)
206 又示塾生
다시 글방 서생들에게 지어 보임
207 團扇塾生日課
둥근 부채(* 글방 서생들의 일과(日課)임)
208 刈麥日課
보리 베기(* 일과(日課)임)
209 登高日課
산에 오름(* 일과(日課)임)
210 夕坐日課
저녁에 앉아서(* 일과(日課)임)
211 夏夜林亭日課
여름밤 숲 정자에서(* 일과(日課)임)
212 無事日課
아무 일 없이(* 일과(日課)임)
213 望雨日課
비 오기를 기다림(* 일과(日課)임)
214 聞鍾日課
종소리 들음(* 일과(日課)임)
215 簾日課
주렴(* 일과(日課)임)
216 蚊日課
모기(* 일과(日課)임)
217 雨餘見月日課
비 온 여가에 보이는 달(* 일과(日課)임)
218 恠石日課
괴이하게 생긴 돌(* 일과(日課)임)
219 快雨日課
상쾌한 비(* 일과(日課)임)
220 喜晴日課
갠 날을 반김(* 일과(日課)임)
221 鳴蛙日課
우는 개구리(* 일과(日課)임)
222 酧塾生韻
서당 서생의 운자에 응수(應酬)하여
223 夕坐課
저녁에 앉아서(* 일과(日課)임)
224 病暑課
더위에 지쳐(* 일과(日課)임)
225 示高梁二生課
고(高)․양(梁) 두 생도에게 보여줌(* 일과(日課)임)
226 雨夜口占課
‘비 내리는 밤’의 구점(口占* 일과(日課)임)
227 夜坐課
밤중에 앉아서(* 일과(日課)임)
228 雨晴課
비 내리다가 갬(* 일과(日課)임)
229 新浴課
새로 목욕함(* 일과(日課)임)
230 示諸生課
여러 생도들에게 지어서 보임(* 일과(日課)임)
231 驟雨課
소나기(* 일과(日課)임)
232 喜晴課
갠 날을 반김(* 일과(日課)임)
233 示諸生課
여러 생도들에게 지어서 보여줌(* 일과(日課)임)
234 聴雨
빗소리를 들음
235 夜坐課
밤에 앉아서(* 일과(日課)임)
236 與隣生賦
이웃 서당의 생도와 더불어 짓다.
237 示諸生課
여러 생도에게 지어서 보여줌(* 일과(日課)임)
238 七夕課
칠석날(* 일과(日課)임)
239 酧隣齋所示韵
이웃 재사(齋舍)에서 제시한 운(韻)자에 응수하다.
240 示諸生課
여러 생도들에게 지어서 보여줌(* 일과(日課)임)
241 獨臥無聊疊前韵
홀로 누웠으니 무료(無聊)하여, 앞의 운자를 따서 또 지음
242 客去
손님이 가다
243 晩晴課
늦게 갬(* 일과(日課)임)
244 示塾生課
지어서 서당 생도들에게 보임(* 일과(日課)임)
245 苦雨課
괴로운 비(* 일과(日課)임)
246 秋晴課
가을의 맑은 날(* 일과(日課)임)
247 七月望日夜見月課
칠월 보름날 밤에 달을 보다.(* 일과(日課)임)
248 示諸生課
여러 서당 생도들에게 지어서 보임(* 일과(日課)임)
249 酧隣生
이웃 서당의 생도들 시에 응수함
250 雲養台畜一姬今年六月擧一男亦奇事也葵園洗馬以詩賀焉雲台次其韻要余和之將成帖以志喜同人皆有作故敬次
운양(雲養) 나리께서 한 여자를 얻어 사내애를 낳았으니 역시 기이한 일이라. 규원(葵園) 세마(洗馬)가 시로써 축하를 하자 운양(雲養) 나리가 그 운(韻)에 차(次)하였고, 나에게 그것에 화답할 것을 요청하면서 장차 성첩(成帖)하여 기쁨을 기록하려 한다 하니 동인(同人)들 모두 시를 짓기로 했기에 이에 경차(敬次)하노라.
251 次隣生
이웃 서당 생도들의 시에 차(次)함
252 登南城
남문(南門) 성에 오름
253 睡餘
낮잠 자고 난 뒤
254 秋夜小雨
가을밤의 작은 비
255 雨意課
비 올 기미(* 일과(日課)임)
256 夜坐課
밤에 앉아서(* 일과(日課)임)
257 晩晴課
늦게 갬(* 일과(日課)임)
258 示諸生課
지은 시를 여러 생도들에게 보임(* 일과(日課)임)
259 酧隣生
이웃 생도의 시에 응수함
260 示諸生課
지은 시를 여러 생도들에게 보임(* 일과(日課)임)
261 雲養舘小集
운양(雲養)의 집에서 작게 집결함
262 葵園疊前韻示予故和之用鄭姓人故事戱作
규원(葵園)이 앞의 운으로 중첩해서 시를 지어 내게 보여주었기에 이에 화답하는데, 정씨(鄭氏) 성을 지닌 사람의 고사(故事)를 써서 장난삼아 짓다.
263 示諸生課
지은 시를 여러 생도들에게 보임(* 일과(日課)임)
264 偶題
우연히 제(題)함
265 秋夜對月
가을밤에 달을 마주하고서
266 秋晴
가을의 맑은 날
267 示諸生課
지은 시를 여러 생도들에게 보임(* 일과(日課)임)
268 中秋夕雨不見月
중추절(中秋節) 저녁에 비가 내려 달을 보지 못함
269 示諸生課
지은 시를 여러 생도들에게 보임(* 일과(日課)임)
270 高敎授性謙挽爲人代作
高性謙島中文人也曾游太學數年頗有時名受本銜榮㱕鄕里在家授諸生業從而學者甚衆不幸遭回祿之厄遂殞焉州人甚惜之云
고성겸(高性謙) 교수(敎授)에 대한 만사(挽詞 *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지음)
고성겸(高性謙)은 제주 섬 중의 문인이라. 일찍이 태학(太學)에서 수년간 유학(游學)했는데, 자못 시명(時名)이 있었고 본 교수(敎授)의 직함을 받아 향리로 돌아오는 영예를 누렸다. 집에서 여러 생도들을 가르치는 일에 종사하면서 배우려는 자들이 매우 많았는데, 불행하게도 화재의 액운을 만나서 마침내 운명하게 되었다. 주(州)의 사람들이 매우 애석하게 여겼다고 한다.
271 諸生日課用老杜秋興八首韵
여러 생도들에게 일과(日課) 용으로 두보(杜甫) 시 <추흥(秋興) 팔수(八首)>의 운을 주고 시를 지음
272 示諸生課
지은 시를 여러 생도들에게 보임(* 일과(日課)임)
273 秋齋獨吟
가을철 서재에서 홀로 읊음
274 和塾生作
서당 생도가 지은 시에 화답함
275 和塾生
서당 생도의 시에 화답하여
聽舂漫稿(地) 『청용만고』 지(地)편(276~531)
276 示塾生日課
서당 서생에게 보임(* 일과(日課)임)
277 示高梁二生
고(高)군․양(梁)군, 두 서생에게 보임
278 酧隣齋
이웃 서당에서 지은 시에 응수함
279 次塾生作
서당 생도가 지은 것에 차(次)함
280 獨坐
홀로 앉아서
281 賦菊花次塾生作
‘국화(菊花)’란 시를 지음에, 서당 생도가 지은 것에 차(次)하다.
282 賦紅葉次塾生作
‘홍엽(紅葉)’이란 시를 지음에, 서당 생도가 지은 것에 차(次)하다.
283 晩秋城樓
늦가을 성루(城樓)에서
284 和塾生
서당 서생의 글에 화답함
285 偶到溪上獨吟
우연히 시내 상류에 이르러 홀로 읊음
286 出門暮帰
외출(外出)했다가 저녁 되어 귀가(歸家)함
287 酧葵園
규원(葵園)의 시에 응수(應酬)하다.
288 酧塘雲
당운(塘雲)의 시에 응수(應酬)하다.
289 秋晴偶吟
가을 날씨 개어 우연히 읊음
290 示高梁二生
고(高)군․양(梁)군, 두 서생에게 보임
291 次塾生
서당 생도의 시에 차(次)하여
292 病枕有感而作
병석에서 느낌이 있어 지음
293 示塾生
서당 생도에게 지어서 보임
294 次葵園
규원(葵園)의 시를 차(次)해서
295 立冬日
입동(立冬) 날에
296 次塾生
서당 서생이 지은 시를 차(次)하여
297 夜坐
밤중에 앉아서
298 次鄰齋所示韵
이웃 서당에서 제시했던 시의 운을 차(次)해서
299 示高梁二生
고(高)군․양(梁)군, 두 서생에게 보임
300 病中卽事
병석에서의 즉흥시
301 金僉樞卽前所謂金進士炳胤号道村者之大人也年八十餘以壽終鄕里所稱善人也及其葬也炳胤請為之輓不能辭焉故為此以副之
김 검추(金僉樞, *본명 빠짐)는, 곧 이전에 이른바 진사였던 김병윤(金炳胤, 호 道村)의 부친인데, 팔십이 넘도록 오래 살다가 여생을 마쳤으며 향리에서 선인(善人)으로 칭송되던 분이다. 그 장례를 치름에 이르러 병윤이 만사(輓詞)를 부탁하기에 사양치 못하고 이에 이렇게 부친다.
302 次雲養苔所示
운양(雲養) 태(苔)가 제시한 바의 시를 차(次)해서
303 次塘雲
당운(塘雲)의 시를 차(次)하여
304 示高梁二生
고(高)군․양(梁)군, 두 서생에게 보임
305 戱次塾生日課作
장난삼아, 서당 서생들이 일과(日課)로 지은 시에 차(次)함
306 次葵園
규원(葵園)의 시를 차(次)하여
307 獨臥
홀로 누워
308 戱次高梁二生日課之作賦孤雁
고(高)군․양(梁)군, 두 서생(書生)에게 일과(日課)로 짓게 한 ‘고안(孤雁)’시에, 장난삼아 차(次)함
309 田家
농부의 집
310 唐柚子
당유자(唐柚子)
311 擁爐
화롯불을 쬐며
312 木枕
나무베개[木枕]
313 烟竹
담뱃대
314 退筆
몽당붓
315 雲中月
구름 속의 달
316 聞雲台舘中梅花始放予久以病不出戶者幾閱月絶無過徃而諸同人在謫者皆力絀無暇滲勝之辨且牧使新到之後頗皆畏約有西湖之戒忽憶去年冬梅下勝會已成陳迹雲散雨收不可復得人事變遷掁觸感慨仍效香蘇山舘集中憶梅詩作八絶呈雲養老先生以博一粲
듣자하니 운태관(雲台舘, 곧 운양 김윤식이 머무는 집)의 매화가 비로소 피어나기 시작했다는데, 내가 병치레로 집을 나서지 못한 지가 여러 달째 전혀 지나가보지 못했음이라. 귀양살이 하는 여러 동인들 모두 힘을 합쳐 명승지를 구분하며 찾아갈 여가가 없었다. 게다가 목사가 새로 도임한 이후 서호(西湖)의 경계가 있을까 하여 모두 자못 두려워하는 형편이기도 했다. 홀연 지난해 겨울, 매화 아래서 멋진 모임이 있어 이미 이뤄진 묵은 자취인데 구름 흩어지고 비 개어 다시 볼 수 없음에, 인사의 변천과 마음을 자극함이 있어 『향소산관집(香蘇山舘集)』 중에서 <억매시(憶梅詩)>를 모방하여 팔절(八絶)을 짓고 운양(雲養) 노선생께 바쳐 크게 한번 웃게 하고자 함이라.
317 塾生有賦圍棋聊和其韵
서당 서생이 ‘위기(圍棋)’라는 시를 지었기에 애오라지 그 운에 화답함
318 余前有憶梅之作蓋有所感而發而實出於無心也梅適為有力者所奪牧使李相珪取梅以去後復還之云若将為詩讖者然旣而梅復還珠而雲台不肎畜焉人皆為梅病之故余復用前韵戱為梅花觧之
내가 전에 매화 추억하는 시를 지음은 대개 느낌이 있어 발산한 것으로 실제로는 무심(無心)에서 나온 것이었다. 매화가 마침 힘깨나 부리는 사람이 뺐어간 형편이 되어(* 목사 이상규가 매화를 취했다가 한참 후에야 다시 돌려주었다고 말함) 만일 장차 시참(詩讖)의 사단이 날 법도 했는데, 이미 진주 구슬 돌려받듯이 매화가 다시 찾아들었으나 운양(雲養) 태(台)는 간직하고자 하질 않았다. 사람들 모두 매화 병에 걸렸기에 내가 다시 앞 운을 써서 장난삼아 매화를 위해 그것을 풀이한다.
319 冬至日用老杜至日作
동짓날에 두보(杜甫)의 ‘지일(至日)’이란 제목을 써서 지음
320 偶吟示高生
고(高)군 생도에게 보여주려고 우연히 읊음
321 見新厤有感
새로 나온 달력을 보고 느낌이 있어
322 春日次高梁二生
봄날, 고(高)군 양(梁)군 두 서생이 지은 시에 차(次)함
323 次葵園所示
규원(葵園)이 보여준 시를 차(次)해서
324 賦得折柳枝送人㱕湖南
버들가지 꺾어 호남으로 돌아가는 사람을 송별함
325 酬塘雲
당운(塘雲)의 시에 응수함
326 雨意
비 올 낌새
327 次養泉
양천(養泉)의 시를 차(次)하여
328 示塾生
서당 생도에게 지어서 보임
329 酬隣齋仍示塾生
이웃한 서숙(書塾)에서 지은 시에 응수한 시를 지어 이에 생도들에게 보임
330 春日書事
봄날에 있던 일을 적음
331 禁烟日用前韻
금연(禁煙)하는 날에, 앞의 운자를 사용해서 지음
332 州城之東東門洞有李姓人家頗有花木竹樹之致方春桃花盛開高紅灼若與余所居相對入望屢欲一徃而未果花亦已盡矣
주성(州城)의 동쪽 ‘동문통’에 이(李)씨 성을 가진 사람 집이 있는데, 꽃나무와 대숲의 경치(景致)가 자못 봄기운이 돋아서 복사꽃이 왕성하게 피어나 그 붉음이 불붙는 것 같다고 한다. 내가 사는 집과는 마주대하고 있어서 자주 쳐다볼 수 있었기에 한번 가볼 참이었으나 끝내 가보지 못해 결국 꽃들이 이미 시들어버렸다.
333 惜春
봄을 아쉬워 함
334 次塾生日課韻
서당 생도들에게 일과(日課)로 내준 운(韻)에 차(次)하여
335 示高梁二生
고(高)군 양(梁)군, 두 서생에게 지어서 보임
336 次隣人所示
이웃 사람이 제시한 시에 차(次)함
337 小寒食次塾生
소한식(小寒食)에, 서숙 생도들의 지은 시에 차(次)함
338 次塾生賦柳絮
서당 생도가 지은 ‘버들개지[柳絮]’를 차(次)함
339 次塾生賦春草
서당 생도들이 지은 ‘봄풀[春草]’을 차(次)함
340 賦遠山示塾生
‘먼 산[遠山]’이란 시를 지어 서당 생도들에게 보임
341 酬葵園
규원(葵園)의 시에 응수(應酬)하여
342 次養泉
양천(養泉)의 시를 차(次)함
343 偶成
우연히 시가 이뤄짐
344 次雲養老丈
운양(雲養) 노장(老丈)의 시를 차(次)함
345 次塾生日課
서당 서생들의 일과(日課)로 내준 시에 차(次)함
346 逰東城門
동성문(東城門)에서 노닐며
347 春日感事
봄날에 느낀 일
348 用塾生韵
서당 소생에게 내준 운자를 사용하여
349 次隣齋
이웃집 사람이 쓴 시를 차(次)함
350 登南城
남쪽 성에 올라
351 睡起偶成
낮잠에서 깨어 우연히 시가 이뤄짐
352 次葵園
규원(葵園)의 시를 차(次)하여
353 獨坐拈唐詩
홀로 앉아서 당시(唐詩)를 뽑음.
354 次塾生作
서당 서생의 지은 것을 차(次)함
355 雲養示有所作故敬次
운양(雲養)이 시 지은 것을 보여주었기에 삼가 차(次)함
356 三月晦日諸同人折簡相要約為餞春之會于南水阁而各辦一哭為滲勝之需會者十有四五人拈韵共賦
삼월 그믐에 여러 동인들이 간단한 편지로 서로 약속하기를, 전춘(餞春)의 모임을 남수각(南水閣)에서 갖고 각자 한 곡조씩 내뿜을 준비했다가 절경의 분위기에 스며들게 하자고 했다. 모인 사람이 열 너덧 명이 되었는데, 운자(韻字)를 뽑고 함께 시를 지었다.
357 翌日縱步登城樓
이튿날 느슨하게 걸어서 성루(城樓)에 오름
358 春日書感
봄날에 그 느낌을 적음
359 拈唐詩得山字
당시(唐詩)에서 ‘山(산)’자의 운을 뽑아 지음
360 示塾生
서당 서생에게 지어서 보임
361 拈唐詩
당시(唐詩)의 운자를 따서 지음
362 初夏書事
초여름의 일을 적음
363 佛日口占
‘불일(佛日)’에, 즉석에서 시를 지어 읊음
364 望漢挐山
한라산을 바라보며,
365 用塾生韵
서당 서생의 운자를 사용하여
366 出游東城仍迤到南門而歸
동성(東城)에서 유람을 떠났다가, 잇달아 남문(南門)으로 이르러 귀가함
367 偶拈唐詩
우연히 당시(唐詩)의 운을 뽑고서
368 夜坐
밤에 앉아서
369 示塾生
서당 서생에게 지어서 보임
370 用塾生韻
서당 서생의 운을 써서
371 距州治直南二十里有瀛邱即本州所稱十景之一也久欲一徃而未遂今年初夏雲養台与諸同人徃逰予適有病不能偕焉意甚耿耿以為未了之案是月望后諸塾生醵錢為具要予一行故遂决然振衣與宗人李渭原範疇崔弁亨順直造中路與梧頭邨鄭時勳為之引路日未午至瀛邱石门行廚午飯及晡而歸歸用雲台所作瀛邱韵以紀行耳
주(州) 관청에서 곧바로 남쪽으로 20리쯤 떨어진 거리에 ‘들렁귀[瀛邱]’란 곳이 있는데, 본 주(州)의 십경(十景) 중 하나이다. 오래도록 한번 가고팠는데 못 찾아갔다가 올해 초여름에 운양(雲養) 태(台)와 더불어 여러 동인(同人)들이 유람을 갈 때 마침 내가 병중이라서 함께 하질 못했다.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한 게 미완의 일이 되었기 때문이었는데, 이번 달 보름날 뒤에 여러 서당 서생들이 돈을 갹출해 채비를 마치게 되어 나에게 일행으로 함께 참여할 것을 요청하였다. 그런고로 마침내 옷을 떨쳐입고 일족(一族)인 위원(渭原) 이범주(李範疇), 무변(武弁)인 최형순(崔亨順)을 곧바로 중도에서 만났는데, ‘다시 마을[梧頭邨]’의 정시훈(鄭時勳)이란 사람이 길 안내를 해주었다. 해가 오시(午時) 못 미쳐서 ‘들렁귀[瀛邱]’에 이르렀고, 돌문에서 점심밥을 지어 먹고서는 신시(申時)에 이를 즈음에 돌아왔다. 돌아와서 운양(雲養) 태(台)가 지은 ‘영구(瀛邱)’란 시의 운자(韻字)를 따서 기행(紀行)시를 지었을 따름이다.
372 再用前韻
다시 앞 운을 사용해서
373 復用前韻倒押
다시 앞의 운자를 사용하되 거꾸로 압운을 써서 지음
374 讀柳子厚田家詩仍步其韵三首
유자후(柳子厚)의 <田家(전가)>란 시를 읽고, 그 운에 음보를 맞춰 세 수를 짓다.
375 入夏以來病思頹苶又困於暑刪詩久矣初秋晩熱甚苦無以消受塾生輩日夕來徃拈韵就課故仍賦其韵為扣發引進之資耳
여름철로 접어든 이래 병으로 근심함이 점차 심해지고, 게다가 더위 먹어 헐떡댐에 됨에 시 짓는 일을 그만둔 지 오래되었다. 초가을 느지막이 열이 심해 고통스러워 누릴 만한 게 없던 터에, 서당의 서생들이 날마다 저녁이면 찾아들면서 운(韻)을 뽑아 일과(日課)를 성취하기에, 이에 그 운으로 시를 지어 자신을 촉발하게 하고 후진들을 이끄는 자료로 삼고자 할 따름이다.
376 次塾韵
서당의 운을 차(次)해서
377 睡起書感
낮잠 자다가 일어나 감회를 적음
378 示高梁二生
고(高)군 양(梁)군, 두 생도에게 지어서 보임
379 次隣生所誦作
이웃 서당 서생이 낭송하기 위해 지은 시를 차(次)함
380 苦熱夜不睡次塾生作
고열(苦熱)로 밤에 잠 못 이루게 되자, 서생의 지은 시에 차(次)함
381 旣望之夕與隣生及塾儒數子登城楼仍拈唐詩
기망(旣望)날 저녁에 이웃 서생들과 더불어 서당 유자(儒者) 두세 사람과 성루(城樓)에 올라서 당시(唐詩)의 운자를 뽑아 짓다.
382 次塾韻
서당의 운(韻)을 차(次)하여
383 酧葵園
규원(葵園)의 시에 응수(應酬)하여 지음
384 農村卽事
농촌에서 있었던 일
385 次塾韵
서당의 운(韻)을 차(次)해서 지음
386 示隣生
이웃 서당의 서생에게 지어서 보임
387 中秋十四夜月色甚好用塾生韻
중추(中秋)의 열사흘날 밤, 달빛이 매우 좋아 서당 서생의 운(韻)을 써서 지음
388 月夜次塾生
달밤에 서당 생도의 시를 차(次)함
389 隣生誦其所作故仍次以答之
이웃한 서당 서생이 그 지은 바를 낭송하기에 이에 답함으로 차(次)해서 지음
390 余頗僻扵看書過海以來尤枯槁無憀日以書卷為消晷之資而神爽日耗病思昏瞀過目随忘然闻人家有書則必致而觀之可謂無味之癖難醫之病也人或嘲余故聊為詩以自觧耳
내가 책을 보는데 있어 너무 한쪽으로만 치우침이 있어 바다를 건너온 이래로 더욱 몸이 야위어 파리해갔는데, 울적한 날이면 책을 잡고서 소일거리로 삼았다. 정신이 상쾌함이 날로 소모 되어 병이 나자 생각이 침침해져서 눈으로 한번 지나친 게 금세 잊어버리곤 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집에 책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기필코 찾아가 그것을 보았으니, 가히 무미건조(無味乾燥)한 성벽(性癖)이라 말할 수 있는바 치료하기 어려운 병인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그런 나를 보고 비웃기라도 할 것이기에 애오라지 시를 지어 스스로 밝혀둘 따름이라.
391 又疊前韻示塾生
다시 앞의 운을 중첩하여 시를 지어서 서당 생도들에게 보임
392 次塾生韵
서당 생도의 운을 차(次)해서 지음
393 走筆次塾生作
서당 서생이 지은 것을 차(次)해 속성(速成)으로 지음
394 酬塘雲
당운(塘雲)의 시에 응수(應酬)함
395 次隣生
이웃 서당 생도의 시를 차(次)해서 지음
396 輓李判書承五
판서(判書) 이승오(李承五)의 죽음을 애도함
397 與養泉葵園共賦
양천(養泉), 규원(葵園) 두 사람과 더불어 짓다.
398 雲養舘同人夜集見招而以病未赴
운양관(雲養館)에서 동인(同人)들이 밤에 모이자고 해서 초대를 받았으나 병치레로 참여하지 못함
399 夜集雲養所
밤에 운양(雲養)의 처소(處所)에서 집결함
400 翌夜又會
이튿날 밤에 다시 모임
401 十月望之夜集雲養館
시월 보름날밤 운양(雲養)의 관소(館所)에 집결하다.
402 雲養舘小集
운양(雲養) 관소(館所)에서의 작은 모임
403 寄葵園
규원(葵園)에게 드림
404 葵園疊前韵寄示仍次而答之
규원(葵園)이 앞 운자를 중첩하여 지은 시를 보내왔기에 이를 차(次)해서 답함
405 葵園又疊韵示之復次
규원(葵園)이 또다시 첩운(疊韻)하여 지은 시를 보이기에 다시 이를 차(次)함
406 雲養所梅始放花同人夜集共賦賞梅
운양(雲養) 처소에 매화가 비로소 꽃망울을 터트리니 동인(同人)들이 밤에 집결하여 함께 매화를 감상하며 시를 짓다.
407 寒夜枕上
추운 밤에 침상 위에서
408 辛丑之春濟州民亂大作自朝家有移處諸謫客于他島之命故在濟者十餘人分處他所而以風勢不利久未得發船至五月二十八始行船過海雲養在舟中有所作葵園亦次之故仍步和
신축(辛丑, 1901)년 봄, 제주에서 민란(民亂)이 크게 일어나자 조정(朝廷)에서는 여러 적객(謫客)들을 다른 섬으로 옮겨가도록 명(命)하였다. 그런고로 제주에 있던 10여 사람이 장소를 나눠 다른 곳으로 가게 되었는데, 바람의 기세가 오래도록 배 띄우기에 불리해서 발선(發船)하지 못하고 있었다. 5월 28일에 비로소 배가 움직여서 바다를 지나게 되자 운양(雲養)이 배 안에서 시를 지은 바가 있어 규원(葵園)이 또한 그 시를 차(次)해서 지었기로 이에 보조를 맞춰 화답시를 지었다.
409 舟泊所安島諸同人所乘舟次第來到下舟宿于店舍以雨留一日翌日天晴将分向各所臨舟握別情思慘然光景可想矣雲養先示一詩以敘別故次其韻
배가 소안도(所安島)에 정박했는데, 동인(同人) 여럿이서 함께 배를 탔던 바, 차근차근 도착해 이르러 배에서 내려 점사(店舍)에서 묵게 되었다. 비가 내려 하루를 더 묵었는데, 다음날 되어 날이 개면 각 처소로 나뉘어 떠날 참이었다. 배를 타면서 손을 잡고 작별의 정 나눌 생각을 하니 참담(慘憺)한 모습이 가히 예상되기에, 운양(雲養)이 먼저 시 한 한 수를 지어 헤어짐을 펼쳤기에 이에 그 운(韻)을 차(次)해서 짓다.
410 過海第四日始抵薪智隝借棲于金谷之黃氏書堂卽所謂観善亭也里之諸黃先後來見皆故相厖村之裔也有以故紙來示者卽所謂亭之八景詩軸而故阁學尹致亨及沈進士所作也詩頗加喜而黃君中顕要予次之以為書亭之故事故依原韵勉副焉
바다를 건넌지 제 4일째 되던 날, 비로소 신지도(新智島)에 이르러 금곡(金谷)마을의 황씨(黃氏)의 서당(書堂), 곧 관선정(觀善亭)이란 곳에 서식처(棲息處)를 빌렸다. 마을의 황씨 성을 지닌 여러 사람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찾아와 만났던 바, 이들은 모두 그 옛날 정승 방촌(尨村, 곧 黃喜)의 후예들이라고 한다. 옛날 종이에 쓴 글을 가지고 와서 내보인 것은, 곧 이른바 ‘관선정(觀善亭) 팔경(八景)’이란 시(詩) 두루마리였는데, 옛날 각학사(閣學士) 윤치형(尹致亨)과 심(沈) 진사(進士)가 지은 것이었다. 시가 자못 기쁨을 더해주었고, 황중현(黃中顯) 군이 나에게 간곡히 요청하기를 그 시를 차(次)해서 지어주면 정자의 고사를 엮은 글이 되겠다고 하기에 원운(原韻)에 의거해서 어쩔 수 없이 짓게 되었다.
411 玉簪花
옥잠화(玉簪花)
412 戱咏田中草人
장남삼아 밭 가운데의 허수아비를 읊다.
413 秋齋小雨
가을 집에 내리는 작은 비
414 中秋夕
중추절(仲秋節) 저녁
415 黃中顕家見菊花
황중현(黃中顯)의 집에서 국화 핀 것을 보다.
416 秋夜獨坐
가을밤에 홀로 앉아
417 秋日以滿城風雨近重陽為題倣元人詩
가을날 ‘滿城風雨近重陽(만성풍우근중양-성 가득 비바람 속에 중양절 다가오네)’이란 구절을 제재(題材)로 삼아 원(元)나라 사람이 쓴 시를 모방하여 짓다.
418 示黃生
황(黃)군 유생에게 지어 보임
419 又示黃生拈唐詩
당시(唐詩)에서 운을 뽑아 다시 황(黃)군 유생에게 지어 보임
420 齋中有菊甚憔悴晩始開花感而賦二絶
집안의 국화가 매우 초췌했는데, 늦어서야 비로소 꽃이 활짝 피어나니 느낌이 있어 두 수의 절구를 짓다.
421 哭舍侄喜晩
집안의 조카 희만(喜晩)의 죽음에 곡(哭)함
422 曉起
새벽에 일어나서
423 病起
병석에서 일어나서
424 題亭壁
정자의 벽을 제(題)함
425 暮歸
저녁에 돌아옴
426 見月
달이 보임
427 鋤花園
화원(花園)에 호미질을 하고서
428 夜坐風雨大至
밤에 앉아있는데 비바람이 크게 일어 닥쳐옴
429 示黃生
황(黃)군 유생에게 지어 보임
430 野望
들판에서 바라보며
431 山行遇雨而返
산행(山行)을 나갔다가 비를 만나서 돌아옴
432 夕坐
저녁에 앉아서
433 暮意
한해가 저묾[暮]의 뜻
434 遣意
마음 추스르기
435 枕上
베갯머리에서
436 無憀次元人秋柳詩八首
마음이 울적해서 원인(元人)의 ‘추류(秋柳)’ 시를 차(次)하다
437 観新報有感
신보(新報)를 보고서 느낌 있어
438 詠史
영사시(詠史詩)
439 雜詩
잡시(雜詩)
440 塾學諸生臨歲将輟課臘月二十五日夜齊會呼韵令各賦之
서당에서 배우는 여러 생도들이 세밑을 맞아 과업을 그치게 되자 음력 섣달 이십 오일 밤에 일제히 모여 운자(韻字)를 부르고 각자 시를 짓게 하다.
441 張生錫祉來受業迫歲将歸覲送之
장석지(張錫祉) 서생이 와서 수업을 받는데, 세밑 다다르자 장차 근친(覲親)차 귀향하겠다고 해서 그를 전송하다.
442 守歲
수세(守歲)
443 除夜
제야(除夜)
444 元日
새해 첫날[元日]
445 元月初二日記所見
정월 초이틀 날, 본 대로 기록함
446 初三日飮卯酒醉臥傍晩始起
초사흘 날, 묘주(卯酒)를 마셔 취해 누워 자다가 저녁때쯤 되어서야 비로소 일어남
447 聽話夢
들은 이야기 속의 꿈
448 雨水日夜雨
우수(雨水) 날 밤에 비가 내림
449 早春書事
이른 봄의 일을 적음
450 秋晩
가을이 저물어감
451 春寒
봄날의 한파(寒波)
452 寒食吟
한식(寒食)날에 읊음
453 十月十五日吟
시월 보름날에 읊음
454 溪上閒步
시내 위를 한가롭게 거닐며
455 雨後
비가 내린 뒤에
456 首夏書事
초여름 날의 일을 적음
457 花下
꽃 아래에서
458 春寒
봄추위
459 茅屋
띠 집
460 送侄児
조카아이를 떠나보내며
461 偶成
우연히 시가 이루어짐
462 又
또 지음
463 睡起
낮잠 자다가 일어나서
464 春望
봄 경치를 바라봄
465 示塾生
서당 서생에게 지어 보여줌
466 隣家杏花盛開
이웃집 살구꽃이 만개함을 보고
467 偶吟
우연히 읊음
468 雨晴
비가 내리다가 갬
469 上巳後日
상사일(上巳日) 뒷날
470 野望
들에서 바라봄
471 傷春
가는 봄을 상심함
472 春盡
봄이 다함
473 首夏野行
초여름에 들로 나들이 감
474 惜花
꽃을 안타까워함
475 穀雨日雨
곡우(穀雨)에 비가 내림
476 偶吟
우연히 읊음
477 落花
지는 꽃
478 春草
봄풀
479 登上山
상산(上山)에 올라서
480 老松
노송(老松)
481 酒家
주막집
482 錢
돈
483 聽鶯
꾀꼬리 소리를 듣고서
484 柳絮
버들 솜
485 鷺
해오라기
486 秧針
어린 볏모
487 春歸
봄의 귀환(歸還)
488 古硏
오래 된 벼루
489 鏡
거울
490 偶成
우연히 시가 이뤄짐
491 睡起
낮잠 자다 일어나서
492 書齋
서당
493 示塾生
서당 생도에게 지어서 보임
494 春夜
봄밤
495 無事
심심해서 지음
496 次塾生
서당 생도의 시를 차(次)해서
497 初夏
초여름
498 郊行
들나들이
499 雨中
비 내리는 가운데
500 晩起
늦잠에서 깨어
501 喜晴
날씨 갬을 기뻐함
502 門前
대문 앞
503 示塾生
서당 서생에게 시를 지어 보여줌
504 湖上春望
호수 위에서 봄을 바라봄
505 次塾生
서당 서생의 시를 차(次)하여
506 春盡
봄이 다 지나감
507 贈京居鄭姓人
서울 사는 정(鄭) 아무개 씨께 드림
508 偶成
우연히 이루어짐
509 幽居
그윽한 거처(居處)
510 書感
느낌을 적음
511 夏夜獨坐
여름 밤에 홀로 앉아
512 夕眺
저녁에 바라봄
513 初夏甚凉
초여름임에도 몹시 서늘함
514 田家
농가(農家)
515 卽事
즉사(卽事)
516 雨後
비 내린 뒤
517 示塾生
서당 생도에게 지어서 보여줌
518 麥秋
보리 철의 가을
519 示塾生
서당 생도에게 지어서 보여줌
520 村居
시골에 거주함
521 齋中
집에서
522 自遣
스스로 위로함
523 病起
병석에서 일어남
524 東園
동쪽 동산
525 浦上晩眺
포구 위에서의 저녁 조망(眺望)
526 小雨
적게 내린 비
527 有客
손님이 있어
528 入夏以來塾生多歸農來者無幾人
여름철 들어서자 서당의 생도들 농사일로 모두 돌아가서 찾아오는 이 얼마 안 됨
529 望雨
비를 기다림
530 憶人
사람을 떠올림
531 小旱
작은 가뭄
영인본 聽舂漫稿 影印本(필사본 원본)
지은이 이용호李容鎬
이용호李容鎬(1842~1905)는 조선조 태종太宗의 아들 경녕군敬寧君의 14대 후손으로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자가 성관聖寬이며 호는 석촌石村과 아석我石이다. 그의 나이 36세 때인 고종 14년(1877)에 문과에 급제한 이후 홍문관 교리 및 충청어사와 경상순무사를 역임했다. 고종 재위시인 대한제국 시절 유능한 인재로 발탁되어 정사에 두루 집무하다가 갑오정변甲午政變 이후 흥선대원군을 추종하던 모든 세력들이 일시에 몰락하면서 제주로 유배되었다. 이어서 을묘사변乙卯事變의 건으로 운양雲陽 김윤식金允植 등이 종신형을 선고받고 제주로 유배를 오게 되어 이들과 합류하면서 당시 제주에 거주하던 유배인은 무려 10여명에 달할 정도였다. 저자는 제주에서 머문 5년 가까운 세월 동안 귤회橘會라는 시모임을 만들어 동료 유배객들과 교류했는가 하면, 개인 서당을 운영하면서 김석익金錫翼 등 제주의 젊은 인재들을 문하생으로 길러내기도 했다. 한편 그 당시 제주에서 발생한 민란인 방성칠房星七의 난과 이재수李在守의 난 등을 몸소 겪으면서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처지의 삶을 영위하기도 했다. 그런 일련의 사건들과 직간접적으로 연유한 소회와 더불어 일상의 회포를 시문에 담아 표현하면서 2권 1책의 일기체 형식으로 이 책 『청용만고聽舂漫稿』를 엮어냈다.
옮긴이 현행복玄行福
현행복玄行福은 제주 위미리 태생으로 제주대학교 사범대학 음악교육과를 졸업하고 영남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오페라 춘향전春香傳에 관한 연구」로 음악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제주 자연을 배경 삼아 자연예술 체험활동을 음악과 연계해 기획 상품으로 선보이는가 하면, 틈틈이 제주 향토사 관련 자료를 발굴하여 이를 책으로 엮어내기도 했다. 그동안 20여년 가까이 우도의 바다동굴인 고래굴에서 동굴음악회를 개최해왔고, 제주시 용연에서는 용연선상음악회를 기획하여 용연야범龍淵夜泛의 정취를 재현하고, 방선문계곡에선 계곡음악회를 창안해 영구춘화瀛邱春花의 전통을 되살리는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다. 한편 그동안 저술한 책으로 음악과 관련해 『위대한 테너 엔리코 카루소』(음악춘추사, 1996)와 『한국오페라에서 동굴음악까지 악樂․관觀․심深』(민속원, 2003)이란 두 권의 단행본을 펴냈다. 한편 제주 향토사 자료 발굴과 관련해선, 『방선문訪仙門』(도서출판 각, 2004)․『취병담翠屛潭』(도서출판 각, 2006)․『탐라직방설耽羅職方說』(도서출판 각, 2008 초판? 개정증보판)․『우도가牛島歌』(도서출판 각, 2010)․『영해창수록嶺海唱酬錄』(제주시 문화유적지관리사무소, 2011)․『귤록橘錄』(민속원, 2016) 등 6종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 「탐라악耽羅樂으로서의 도라악度羅樂 연구」․「동굴의 자연음향, 그 음악적 활용 가치」․「15세기 말엽 제주 유배인 홍유손洪裕孫에 관한 연구」 등이 있다. 현재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예술진흥원 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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