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에서 제도적으로 차를 생산·조달하였던 역사적 사실을 추적하다
『조선왕조실록』과 의궤(儀軌)·등록(謄錄)류 등 고문헌의 기록에는 외교와 국가·왕실의 제·의례에 항상 다례가 거행되었고, 왕의 사여 품목에도 많은 차가 사용되었다. 매년 백포 또는 일천포나 되는 천지차와 작설차가 긴 세월(1627~1645) 진헌 품목에 포함되기도 하였다. 국가운영에 소용된 수많은 차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호남과 경상도 45개 지역의 차산지에서는 이른 봄 차 싹이 돋아나면. 관아 담당자와 향리의 백성들이 채공다 요역에 동원되어 차를 따고, 만들고 포장하여, 배당된 중앙 아문으로 직접 운반 납공하였다. 이른 봄 2월에 딴 해 차는 천신(薦新) 제사용으로 제일 먼저 종묘에 올려 보내고, 왕실과 아문에 소용되는 것은 각 시기에 맞추어 납공하였다. 조선조 『경국대전』속 호전(戶典)에는 ‘채공다(採貢茶)’라는 요역은 어느 누구도 면제(복호)받을 수 없는 중요한 역종으로 명기하고 있다. 조선시대 국가에 소용된 많은 차는 차산지에서 조세품목에 포함되어 지방 수령의 책임으로 ‘채공다’라는 요역徭役을 동원하여 관비생산(官備生産)하는 조세제도의 일환으로 생산 조달되었다.
朝鮮時代 茶産地와 貢納茶에 관한 硏究 조선시대 국가운영에 소용된 수많은 차는 어디에서 왔을까? 이른 봄 차 싹이 돋아나면 차산지 관아에서는 향리의 주민을 ‘채공다(採貢茶)’ 요역에 동원하여, 차를 따고, 만들고, 포장하여 한양의 왕실·중앙 아문에 직접 운반 납공하는 관비생산(官備生産) 체제로 조달되었다. 조선조 『경국대전』속 호전(戶典)에는 ‘채공다’라는 요역은 어느 누구도 면제(복호)받을 수 없는 중요한 역종으로 명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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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서 론 1. 문제 제기 및 연구 목적 2. 선행 연구의 검토 3. 연구의 방법 및 범위
제2장 지리지 차산지의 검토 1. 차산지와 편재 항목 2. 차산지 변화의 비교 분석
제3장 공납제도의 변화와 차의 공납 1. 조세제도의 변천 2. 대동법과 공납제 3. 공물과 진상
제4장 공납차의 생산과 운송 1. 공납차 생산의 원칙 2. 요역徭役과 채공다採貢茶 3. 다소茶所에 대한 재검토 4. 상납과 운송체제
제5장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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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학교 대학원 한국문화학과 졸업 예다학전공 문학박사 원광대학교 대학원 외래교수 同 대학교 동양대학원 외래교수 동국대학교(경주) 불교대학원 외래교수 포항대학교 외래교수 역임 한국차학회 이사 한국예다학연구소 수석연구원
<주요 연구> 「한·중·일 다도정신 비교」, 「차문화와 불교의 관련성 고찰」, 「화개지역 다소 명칭 오류에 관한 고찰」,「조선후기 차문화 공간 연구」, 「조선시대 공납차 생산과 요역 연구」, 「고려시대 차산지와 공납차 생산에 관한 연구」,「밀양지역 차문화 사적 연구」, 「이규보와 김종직의 차 공납 관점에 대한 재해석」 외 다수 『다도와 예절』, 『한국 차문화사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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