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20년 10월 4일 대왕대비에게, 10월 7일 왕에게 올린 연향을 기록하다
연향을 위해 한 달 남짓 동안 준비를 했다. 상탁(床卓)과 기명(器皿) 및 꽃 장식은 물론 악가무차비(樂歌舞差備)의 관복 등을 새로 만들거나 보수했으며, 악가무 연습을 하고, 음식준비를 했다. 시위차비와 군병들에게까지 내려줄 술과 안주까지도 수량을 헤아려 마련하고, 혼란을 방지하고자 식권의 일종인 체문(帖文)을 미리 지급하는 등, 궁중의 위엄에 걸맞는 훌륭한 잔치를 치루기 위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잔치를 마친 뒤에는, 각종 물품을 만드느라 빌려서 썼던 각종 도구들을 원소장처로 반납하고, 소모품인 재료들에 대해서는 물품을 만드느라 들어간 수량과 남은 수량을 정확히 기재하여, 남은 것은 도로 반납하였다. 이 모든 과정을 훗날의 잔치에 참고가 되도록 하기 위해, 의궤 3부를 제작하여 강화부사고·예조·장악원에 각각 나누어 보관하였다.
1744년(영조 20)에 영조는 51세로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는데, 이는 조선 개국 이래 태조(재위 1392~1398)와 숙종(재위 1674~1720)에 이어 세 번째로 있는 경사였다. 이후로 기로소에 들어간 임금으로는 고종(재위 1863~1907)이 있을 뿐이다. 기로소는 정2품 이상 전직·현직 문관으로 나이 70세 이상인 사람이 들어가는 문신들의 친목 및 예우 기구로, 조선시대 관리들은 기로소에 들어가는 것을 더할 수 없는 영예로 여겼으며, 조선시대에 통틀어 7백여 명이 들어갔다. 『갑자진연의궤』는 영조가 기로소에 들어간 것을 기념하여 1744년 10월에 베푼 연향 에 대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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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용어해설 일러두기 해제
건륭乾隆 9년 갑자 9월 일 진연청의궤
도청소장都廳所掌 계사질啓辭秩 상격賞格 의궤儀軌 이문질移文秩 내관질來關秩 감결질甘結秩
건륭乾隆 9년 갑자 9월 일 일방의궤
품목질稟目秩
건륭乾隆 9년 갑자 9월 일 이방의궤
본방소장本房所掌 품목질稟目秩 감결질甘結秩
부록
그림자료 영인본
참고문헌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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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수 金鍾洙 Kim, Jong-su
서울대 독문학과를 1979년에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 한국음악학과에서 1999년에 「조선 前·後期 여악의 비교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2년에서 2012년까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서 책임연구원으로 일했으며, 현재 서울대 국악과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조선시대 궁중연향과 여악연구』가 있으며, 역서로 『譯註 增補文獻備考-樂考』, 『譯註 樂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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