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효종 시기 우의정 이후원은 왕에게 사육신 사건의 의미를 붙여 자신의 생각을 조심스레 밝힌다. 이례적이다. 조정이 사육신 사건을 평가하는 것은 그때까지 금기나 다름없었다. 『효종실록』은 세조가 일찍이 “박팽년 등은 당대의 난신亂臣(나라를 어지럽히는 신하)이요, 후세의 충신忠臣”이라고 했다며, “세조가 이런 은미한 말로 후세를 깨우친 뜻이 지극하다”는 우의정의 의견을 기록으로 남겼다. 가해자 세조는 당시 정치 상황으로 불가피하게 사육신을 반역으로 처단했지만 후세엔 이들이 충신으로 인정돼야 할 것으로 생각했음을 상기시킨 것이다. 박팽년은 조선 초기 집현전 출신의 엘리트 관료로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에 항거해 단종복위 운동을 일으켰다가 반역으로 몰려 죽임을 당한 사육신의 한 사람이다. 그의 맑은 기상과 곧은 절의節義는 이후 조선 선비정신의 상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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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에 피어난 붉은 꽃 사육신 박팽년
사육신…절의節義, 달성에 닿다 세종, 왕위 계승 새로운 원칙을 정하다 흔들리는 왕권 수양대군 실권을 잡다 협박 속 단종의 퇴위 병자년 조선에서 무슨 일이 화란 속 꺾이지 않은 충절 사육신 박팽년이 걸어간 길 박팽년의 시문 박팽년의 글씨 후손이 끊긴 사육신 상왕 단종의 최후 사육신 박팽년의 유적 대구 묘골에서 떠올린‘충절의 표상’ 사육신 박팽년 멸문을 딛고 일어난 박팽년 후손마을 묘골 묘골의 유적과 인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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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의호 중앙일보 기자 중앙일보·JTBC 대구총국장 언론학박사 현) 나라얼연구소 이사 현) 대구한의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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