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하당慕夏堂 김충선金忠善 장군은 부모 형제 부인 모두 다 버리고 조선에 귀화한 가등청정 우선봉장으로 조선에 쳐들어온 일본인 장수 사야가이다. 오랫동안 조선을 흠모하고 있었지만 얼마나 많은 고뇌와 번민이 있었을까? 자신과 조상의 모든 것을 묻어버리고 자신의 사상과 이념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목숨이 풍전등화 같은 전쟁터에서 왜군 선봉장으로 부산에 상륙하여 전투도 한 번 하지 않고 투항한 것은 자신이 품고 있었던 큰 뜻을 이루기 위함이라 생각되며 그 큰 뜻을 미루어 짐작 할 수 있다. 사야가 장군은 경주 이견대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워서 인조 임금으로부터 김충선金忠善이라는 이름을 하사 받아서 사성賜姓 김해 김씨의 시조가 되어 우록동에 터를 잡고 조선에서의 삶을 시작하였다. 전쟁이 끝나고 북방에 방어가 허술하여 오랑캐들의 침범이 잦아서 백성들의 삶이 흉하다하여 자원잉방하여 9년을 근무하고 우록동에 터를 잡고 진주목사 장춘점의 딸과 혼인하여 5남 1녀를 두었고 18세손까지 자손이 번성하여 전국에 8천500여 명의 후손들이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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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 귀화하여 달성에 뿌리내린 모하당 김충선
모하당 김충선에 대하여 -녹동서원鹿洞書院 모하당 문중慕夏堂 門中을 통해 본 김충선金忠善 -사성 김해 김씨賜姓金海金氏의 시조
김충선의 발자취 -김충선의 일생 -조선 투항의 경위 -주요 업적 -행록을 통해 본 김충선 -행장을 통해 본 김충선
김충선과 관련된 자료 -조선에 귀화와 관련된 글 -삼란공신 김충선과 관련된 글 -전쟁 중 김충선이 공신들과 나눈 편지글 -임진란 사실을 뽑아 기록한 글 -김충선이 남긴 시詩 -모하당에 대한 기문―모하당기慕夏堂記 -녹동에 관한 기록―녹촌지鹿村誌 -가정에 대한 훈계―가훈家訓 -자손들과 동리인에게 대한 조약―내외자손 급동리인조약內外子孫 及同里人條約 -묘지문 -묘갈문 -녹동재 중건 기문 -유적비문遺跡碑文 -모하당 문집에 기록된 전기 -모하당 실기實記 서문 -족보 서문
김충선을 칭송하다 -삼도三道 유림儒林의 상소 -모하당 행록에 대한 발문 -고을 유림들이 관찰사에게 드리는 글 -도내道內의 유림들이 관찰사에게 올리는 글 -임금이 내리는 답서―비답批答 -고을에서 결정한 완의 -병조에서 결의한 글 -어사御史의 결재 -상언장 -교지(사령장) -비문
김충선의 후손과 우록리 -우록리 정착과 가훈 및 향약의 제정 -뿌리내리는 후손들 -녹동서원과 족보
마무리하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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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보 영남과학 산업 대표 한국과학기기공업협동조합 이사, 감사 달성 한일우호관 건립추진위원장 사성김해김씨 종친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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