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謹弔】晩堂 李惠求 先生 別世
글쓴이 관리자 작성일 2010/02/01
조회수 12706 첨부파일
내용 國樂學 선구자 이혜구 선생 별세

국악(國樂)을 학문의 한 분야로 자리매김시켜 한국 음악학의 태두(泰斗)로 꼽히는 만당(晩堂) 이혜구(李惠求) 선생이 지난 30일 서울 세브란스병원에서 101세로 별세했다.

이혜구 선생은 1931년 경성제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경성방송국에 취직한 뒤 국악 프로그램을 맡으면서 국악과 인연을 맺었다.

해방 후 공보부 방송국장으로 있다가 1946년 서울대 음악부 교수로 부임했다. 그는 훗날 "국악 분야가 정말 황무지 같았지만 그때그때 문제를 푸는 식으로 언제나 연구를 했다. 국악을 알아보려고 더욱 분발했다"고 회고했다.

이혜구 선생은 1959년 정규 대학 과정 중에는 최초로 서울대 국악과를 창설하고 초대 과장 겸 교수로 재직했다. 1970년대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위원에 위촉되면서 영문으로 한국 음악 총서를 만드는 등 세계에 국악을 알리는 데도 심혈을 기울였다.

한국음악서설񢈯년) 한국음악논고񢉋년) 같은 저서를 통해 국악 이론의 기틀을 마련했으며, 1998년에는 이혜구학술상을 제정해서 후학 양성에도 애썼다. 유족으로는 부인 정기영 여사와 이창복(안과의사·재미), 영복(사업), 대복(전 창문여중 교장), 영숙, 영혜씨 등 3남2녀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이며 장례는 2월 3일 오전 10시 국립국악원에서 국악인장으로 거행된다. ྡྷ񤻢-6915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 기사출처 : 조선일보 2010년 2월 1일 김성현 기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2/01/2010020100015.html


국악계 거목 이혜구옹, 향년 101세로 별세

[뉴스엔 이미혜 기자]

국악계 거목 이혜구옹이 향년 101세로 별세했다.

국악학자 만당(晩堂) 이혜구옹은 1월 30일 낮 숙환으로 타계했다. 이혜구옹은 서울대 음대 국악과 교수와 음대 학장을 지내며 국악을 학문으로 정립하고, 후진을 양성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또 한국 전통음악을 세계에 알리는 데 앞장섰다. 1970년대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위원으로 한국 전통음악 총서를 영문으로 만들었고, 1981년 국제민속음악학회 한국 대회를 유치했다.

1909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경성제국대 영문학과 재학 시절 조선 왕립 음악기관의 후신인 이왕직아악부에 드나들며 국악과 인연을 맺었다. 1947년 서울대 음대 교수로 임용된 고인은 1959년 서울대 음대에 국악과를 신설했다.

이혜구옹은 74년 정년퇴임 할 때까지 이재숙 서울대 명예교수, 권오성 한양대 명예교수 등 수많은 제자를 양성했다. 90세가 넘은 나이에도 ‘한국음악이론’񢉕) ‘만당 음악편력’񢉗) 등 저서를 내놓으며 연구와 저술 활동을 계속해 왔다.

한국국악학회는 2008년 5월 창립 60주년 행사를 고인의 백수 축하잔치로 치르고 기념 논총을 헌정했다. 국악 발전에 이바지한 공으로 3ㆍ1문화상 학술상, 예술원상, 금관문화훈장 등을 받았고 2001년 방송인 명예의전당에 헌액되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정기영 여사와 3남2녀가 있다. 장례는 국악인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됐다. 발인 3일 오전 8시,영결식 10시 국립국악원. 장지는 충남 천안시 목천읍 도장리 선영이다.

이미혜 macondo@newsen.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newsen@newsen.com
* 기사출처 : 뉴스엔 2010년 1월 31일 이미혜 기자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001312315591010




국악계 거목 이혜구 별세, 향년 101살


국악인 이혜구씨가 1월 31일 향년 101살로 별세했다.


이혜구는 1909년 서울 출생으로 서울대학교(경성제국대)를 졸업, 1947년 서울대 음대 교수로 임용했다.


그 뒤 1959년 국악과를 신설해 초대 학과장과 음대학장을 역임한 바 있다.


특히, 1991년에는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으로 선정되었고, 경성중앙방송국에서 근무하면서 친일 활동을 한 경력으로 인해 2008년 발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언론 / 출판 분야에 포함되었다.


한편, 故 이혜구씨의 빈소는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됐다.


《문화 예술 공연 1위 보도자료수신 ksg3626@artsnews.co.kr》
《ⓒ 예술을 즐겨라! 아츠뉴스 옥영화 기자》
* 기사출처 : 아츠뉴스 2010년 1월 31일 옥영화 기자
http://www.artsnews.co.kr/news/60648


국악계 거목 이혜구 옹 별세, 향년 101세





[투데이코리아=이나영 기자] 국악계 거목 이혜구옹이 30일 향년 101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이혜구 옹은 지난 1909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성제국대 영문학과 재학 시절 이왕직아악부에 드나들며 국악과 인연을 맺었다.

졸업 후 32년 경성방송국 프로듀서로 취직해 국악을 담당하면서 본격적으로 국악 연구에 뛰어들었다.

47년 서울대 음대 교수로 임용된 그는 59년 서울대 음대에 국악과를 신설, 74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이재숙 서울대 명예교수, 권오성 한양대 명예교수 등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유족으로는 부인 정기영 여사와 3남2녀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3일 오전 8시.
* 기사출처 : 투데이 코리아 2010년 1월 31일 이나영 기자
http://www.today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96389


[부고] 국악계 대부 만당 이혜구옹 별세

국악학자 만당(晩堂) 이혜구옹이 30일 낮 12시25분 노환으로 타계했다. 101세.
서울대 음대 국악과 교수와 음대 학장 등을 역임한 고인은 국악을 학문으로 정립하고, 후진을 양성하는 데 평생을 바쳤으며 최근까지 서울대 음대 명예교수,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국악계의 큰 어른 역할을 했다. 1909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경성제국대 영문학과 재학 시절 이왕직아악부에 드나들며 국악과 인연을 맺었고, 대학 졸업 후 1932년 경성방송국 프로듀서로 취직해 국악을 담당하면서 본격적으로 국악 연구에 뛰어들었다.

광복 후 공보부 방송국장을 거쳐 1947년 서울대 음대 교수로 임용된 그는 1959년 서울대 음대에 국악과를 신설, 초대 과장을 지내며 국악의 대학교육 시대를 열었다.

1974년 정년 퇴임할 때까지 이재숙 서울대 명예교수, 권오성 한양대 명예교수, 황준연 서울대 교수, 송방송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등 수천명의 제자를 길러냈으며 1970년대 들어 만들어진 전국 20여개 국악 대학의 교수는 모두 그의 제자여서 국악과 졸업생은 모조리 만당의 제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은퇴 후에도 서울대 명예교수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양대학교 등의 객원 교수로서 활발히 활동했다.

1954년 한국국악학회를 창설해 초대 회장을 역임하고, ‘한국음악연구’񢈥년) ‘국역 악학궤범’񢈼) ‘한국음악서설’񢈯) ‘한국음악논고’񢉋) 등 기념비적 저서를 내놓으면서 국악 이론의 기틀을 마련했다.

고인은 국악발전에 대한 기여로 생전에 대한민국예술원상, 국민훈장, 보관문화훈장, 금관문화훈장 등을 받았고 2001년에는 방송인 명예의전당에 헌액됐다.

유족으로는 부인 정기영 여사와 창복(안과의사, 재미), 영복(사업), 대복(전 창문여중 교장), 영숙, 영혜 등 3남 2녀가 있다.

국악계는 고인의 이런 업적을 기려 장례를 국악인장으로 치른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이며 발인은 3일 오전 8시, 영결식은 오전 10시 서초동 국립국악원 별맞이터에서 열린다. 장지는 천안 목천읍 도장리 선산. ྡྷ񤻢-6915.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기사출처 : 서울신문 2010년 2월 1일 이경원 기자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00201029023


근대적 한국 음악학의 태두 이혜구

(서울=연합뉴스) 현윤경 기자 = "모든 국악학과 졸업생은 이혜구로 통한다."

지난 30일 101세를 일기로 별세한 만당(晩堂) 이혜구는 근대적인 한국 음악학의 태두로 국악 발전에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

학문으로서 국악의 기틀을 마련하고, 수많은 제자를 길러내는 한편 국악을 세계 음악계에 알리는데 앞장선 그가 있었기에 국악은 오늘날과 같은 위상에 도달할 수 있었다.

경성제국대 영문과 재학 시절 서양악기인 비올라를 다뤘던 그는 "아악은 매우 귀중한 것이니 배워보라"는 일본인 교수의 권유로 이왕직아악부에 드나들며 국악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1932년 경성방송국 프로듀서로 취직해 국악을 담당하게 된 그는 국악을 체계화해야겠다는 사명감을 갖고 국악 연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해방 후 공보부 방송국장을 거쳐 1947년 서울대 음대 교수로 임용된 그는 1959년 서울대 음대에 국악과를 신설, 국악의 대학 교육 시대를 열었다.

개설 첫해 입학한 이재숙 서울대 명예교수, 권오성 한양대 명예교수를 시작으로 그의 문하를 직접 거친 제자만 해도 수천 명에 달한다.

1970년대 들어 만들어진 전국 20여개 국악 대학의 교수 자리는 전부 그의 제자들로 채워졌으니 국내 대학의 국악과 졸업생은 모조리 만당의 제자라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만당이 1963년 개설한 서울대 음대 대학원에서 첫 석사 학위를 받은 제자 이재숙 서울대 명예교수는 "선생님은 도외시되던 국악을 논리화, 체계화해 학문으로 정립해 오늘에 이르게 한 분"이라며 "국악계에 선생님의 제자가 아닌 사람이 없을 정도로 큰 족적을 남겼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선생님은 또한 한국 음악을 국제적으로 알리는 데 기여한 최초의 인물이기도 했다"며 "그 시대의 음악을 해야 한다, 새로운 음악을 하라고 항상 당부하며 크로스오버 국악에도 적극적이었던 열린 마음의 소유자이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의 말처럼, 만당은 국제민속음악학회(IFMC, 현 국제전통음악학회) 한국 대회를 유치하고, 아시아태평양민족음악학회(APSE) 회원으로 활동하며 한국 전통음악의 세계화에 앞장섰다.

권오성 교수는 "한국과 중국, 일본 등 동양 3국 음악 가운데 가장 신명에 가득 찬 우리 음악의 예술성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게 선생님의 음악관이었다"며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논문을 기고하고, 집필 작업을 쉬지 않은 것은 국악에 대한 선생님의 열정이 얼마나 큰 지를 보여준다"고 회고했다.

실제로 만당은 지난해 말 국립국악원의 논문집에 논문을 발표했으며 타계 직전까지 국악 역사와 이론을 집대성한 한국음악사를 집필 중이었다.

샘터사 단행본팀장을 역임한 국악학자 김세중 씨는 "제자들이 힘을 모아 선생님의 유고 한국음악사를 출판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전했다.

국악계는 고인의 이런 업적을 고려해 장례를 국악인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장례위원장을 맡은 권오성 교수는 "3일 오전 10시 국립국악원 별맞이터에서 영결식을 치를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삼성서울병원에는 이재숙, 권오성 등 제자를 비롯해 한명희 전 국립국악원장, 윤미용 국악방송 이사장, 정태봉 서울대 음대 학장, 안형일 전 국립오페라단장 등 음악계 인사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또, 이명박 대통령,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박일훈 국립국악원장 등도 화환을 보내 고인을 추모했다.

ykhyun14@yna.co.kr
* 기사출처 : 연합뉴스 2010년 1월 31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3099202



[삶과 추억] 101세 국악학자 이혜구 선생 별세 [중앙일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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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 이론 체계화·세계화 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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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국악학자 만당(晩堂) 이혜구 (사진)선생이 30일 낮 12시 노환으로 별세했다. 101세. 만당은 국악을 학문으로 연구한 선구자로 꼽힌다. 1954년 한국국악학회를 창설해 초대회장을 지냈고, 63년 서울대 음대에 최초로 국악과를 개설했다.

고인은 원래 서양음악에 심취했다. 어려서부터 바이올린을 즐겨 연주했고, 대학(경성제대 영문과) 시절 ‘경성 오케스트라’를 만들었을 정도였다. 그 뒤 대학을 졸업하고, 23세에 경성방송국 프로듀서로 일하면서 국악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국악 프로그램을 만들며 찾았던 자료들이 주로 한국에 다녀간 선교사 등 외국인의 시선으로 정리됐다는 점을 안타까워하며 관련 연구에 직접 나섰다.

고인은 55년 첫 국악논문인 ‘양금신보 사조’를 발표했다. 57년 첫 논문집 『한국음악연구』를 내놨다. 서울대 국악과의 1기 졸업생인 이재숙࿥·서울대 명예교수)씨는 “지금까지도 만당 선생이 만들어놓은 체계로 국악 이론이 전수되고 있다”고 평했다.

고인은 유창한 영어실력으로 외국 음악 학자들에게 국악을 널리 알렸다. 국제민속음악학회를 81년 서울에 유치했고 아시아태평양민족음악학회 회원으로 활동했다.

만당은 구순이 넘어서도 저술에 힘을 쏟았다. 2005년 『한국음악이론』 개정판을 냈고, 2007년 수필 형식의 『만당음악편력』도 발표했다.. 건강이 악화한 최근까지도『한국음악사』개정 작업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그는 생전의 한 인터뷰에서 “시계가 움직이면 살았다, 정지하면 죽었다고 한다. 사람도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 팔순이 넘어서도 공부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정기영씨와 아들 창복씨 등 3남 2녀가 있다. 발인은 2일 오전 8시. 10시에는 서울 국립국악원에서 국악인장으로 영결식이 치러진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02-3410-6915. 

김호정 기자
* 기사출처 : 중앙일보 2010년 2월 1일 김호정 기자
http://news.joins.com/article/aid/2010/02/01/3613804.html?cloc=olink|article|default



국악학계 태두 이혜구 박사 별세

오미환기자 mhoh@hk.co.kr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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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국악학의 태두인 만당(晩堂) 이혜구 박사가 지난달 30일 낮 12시 25분 서울 세브란스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101세.

고인은 평생을 한국 전통음악의 이론과 역사 연구에 바쳐 국악학의 틀을 세우고 많은 제자를 길러낸 국악계의 최고 어른이었다.

1909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경성제대 영문학과 재학 시절 취미로 비올라를 연주하다 ‘조선 아악은 귀중한 것이니 배워보라’는 일본인 교수의 권유로 조선 왕립 음악기관의 후신인 이왕직아악부에 드나들면서 국악과 인연을 맺었다. 본격적으로 국악 연구에 뛰어든 것은 대학 졸업 후 경성방송국 프로듀서로 취직해 국악을 담당하면서부터다.

해방 후 공보부 방송국장을 거쳐 1947년 서울대 음대 교수로 임용됐고 1959년 국악과를 신설해 초대 과장을 지냈다. 음대 학장을 거쳐 1974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이재숙(서울대 명예교수), 권오성(한양대 명예교수), 황준연(서울대 교수), 송방송(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씨 등 뛰어난 학자들을 길러냈다. 퇴임 후에도 서울대 한양대 정신문화연구원 등에서 강의했으며 예술원 회원으로 활동했다.


고인은 1948년 한국음악의 음학학적인 연구를 목적으로 성경린, 장사훈과 함께 국악연구회(현 한국국악학회)를 창설했다. 그의 학문적 업적은 <한국음악연구>񢈥) <국역 악학궤범>񢈼) <한국음악논고>񢉋) 등의 기념비적 저서로 남아 있다. 90세를 넘기고도 <한국음악이론>񢉕) <만당 음악편력>񢉗) 등의 저서를 내놓았다. 지난해 말에도 국립국악원 논문집에 논문을 발표했고, 타계 직전까지 국악 역사와 이론을 집대성한 <한국음악사> 집필에 매달렸다. 국악학계는 고인의 유작이 된 이 책을 제자들이 힘을 모아 출판할 계획이다.

한국 전통음악을 세계에 알리는 데도 힘썼다. 1970년대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위원으로 한국 전통음악 총서를 영문으로 만드는 데 앞장섰고, 1981년 국제민속음악학회 한국 대회를 유치했으며, 아시아태평양민족음악학회 회원으로도 활동하며 국악 세계화에 이바지했다.

고인은 소탈하면서 고결한 선비 같은 풍모로도 존경 받았다. 한국국악학회는 2008년 5월 창립 60주년 행사를 고인의 백수 축하잔치로 치르고 기념 논총을 헌정했다. 국악 발전에 이바지한 공으로 3ㆍ1문화상 학술상, 예술원상, 금관문화훈장 등을 받았으며 한국 방송 초창기의 산 증인으로서 2001년 방송인 명예의전당에 헌액되기도 했다.

유족은 부인 정기영씨와 영숙, 창복(재미 안과의사), 영복(사업), 대복(전 창문여중 교장), 영혜씨 등 3남 2녀가 있다.

장례는 국악인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됐다. 발인 3일 오전 8시,영결식 10시 국립국악원. 장지는 충남 천안시 목천읍 도장리 선영. ྡྷ񤻢-6915
* 기사출처 : 한국일보 2010년 1월 31일 오미환 기자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1001/h201001312151048633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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