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옛 길을 걸으며
저자
이종철
판형|쪽
크라운변형 | 592쪽
발행일
2009년 8월 24일
ISBN
978-89-5638-805-2
가격
35,000원
조상이 살아온 고유한 풍습과 전통을 촌스럽고 미개하며 야만스럽다고 학대한 우리는 누구의 자손이고 누구의 가르침과 독트린doctrine에 훈도되고 오도된 문화의 미아란 말인가. 이제 우리의 아름다운 민족의 역사를 가꾸기 위하여 국립민속박물관이 세계화 속에 한국 문화의 심장을 지키는 문화 콘텐츠의 보고가 되기를 기대한다. 그동안 민속이라는 신의 거처가 누추하고 습기 차고 음습한 상여집처럼 저평가 된 상황이었다.
인생이라 불리는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상행선과 하행선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민족의 대이동이 이루어지는 설 전날 귀성길에서 하행선을 달려야 될 때 내가 탄 자동차가 전후좌우로 꼼짝 못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인내와 기다림과 차 속에서 할 수 있는 새로운 일을 구상하고 두뇌 실천을 해 보는 일뿐이 더 있겠는가? 협궤철도를 달려야 되는 공직이라는 기차를 타고 처음도 끝도 없는 공직에 매달려 허무한 기다림 속에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기 위하여 나는 시간과 돈, 열정을 태워 보았다. 뒤엉킨 실타래처럼 풀리지 않는 정책 모순들을 가슴에 껴안고 기차의 운행표도 보지 않고 목적지도 모른 채 전통문화와 민속이라는 화두에 매달려 귀착지 없는 화차에 석탄을 태우고 있다.
머리말 문화의 길섶에 자란 들풀처럼
1부 살며 생각하며
2부 아름다운 투자
3부 문화와 민족의 미래
4부 아니면 말고
5부 어느 학부형의 편지
6부 낯설지도 서럽지도 않은 시작
7부 아! 문화여 희망이여
경력
李鐘哲
全北益山, 全州高, 서울대 문리대 고고인류학과, 영남대 대학원 문화인류학과(민속학, 사회인류학) 석사, 박사
미국스미스소니안 인스티튜션, 덴마크 민족학 박물관, 박물관학 연수, 일본동경대 문화인류학 교실 연수
문화재청 한국민속박물관 학예사, 문화재연구소 연구관, 국립광주박물관 연구실장, 국립전주박물관장, 국립민속박물관장, 국립한국전통문화학교 2, 3대 총장
목포대, 한양대, 서울대(한국민속학, 박물관학, 문화인류학, 문화변동론) 강사
민속문화재 전문위원 무형분과위원, 국제교류재단 문화자문위원
유네스코 문화자문위원, 국립중앙박물관 건립자문위원
저서
장승(열화당), 서낭당(빛깔), 한국의 성문화연구(민속원) 등 다수
41년 공직 마감하는 한국전통문화학교 이종철 총장
“공부도, 일도 많이 시킨 저는 악덕 총장”
그만큼 지독한 공무원을 찾기도 어려울 게다. 기록도 많이 세우고 전후좌우 돈독한 선후배 인맥이 그물코같다.
퇴임을 앞둔 한국전통문화학교 이종철 총장은 “저술 틈틈이 사교춤이나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미국 워싱턴 스미소니언연구소에서 연수하던 시절 춤을 못 춰 애먹은 경험이 있어서다. [김성룡 기자]
31일 41년에 걸친 공직 생활을 마감하는 이종철) 한국전통문화학교 총장(차관급)이 주인공이다. 1968년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로 시작해 국립광주박물관 학예실장, 국립전주박물관장, 국립민속박물관장을 거쳐 한국전통문화학교 총장직을 마지막으로 은퇴한다. 40여 년 연구 성과를 담은 책 『문화의 옛길을 걸으며』 『한국 민속신앙의 탐구』 『인간의 달력, 신의 축제』(민속원) 등 3권을 내고 25일 퇴임 인사를 겸한 출판기념회를 친정이라 할 서울 삼청동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었다. 그는 『장승』『서낭당』 『한국의 성문화 연구』 등을 낸 대표적 민속학자이지만 공무원으로서 더 이름을 날렸다. 국립민속박물관장을 두 차례에 걸쳐 총 13년간 지내면서 연간 관람객 300만 명을 돌파하는 저력을 보였다.◆한국전통문화학교의 미완의 과제 가슴에 묻고=25일 오전 본사 회의실에서 만난 이 총장은 그러나 “급한 건 학교”라며 한국전통문화학교에서 미완으로 남겨둔 과제를 차례차례 꺼내 들었다. ▶‘대학’이란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고 대학원도 설치하지 못하는 법령 개정 ▶문화재 관련 기술직 공무원 신설 ▶학교 부지 30만 평 확보 ▶구 서울과학관 부지에 학교 부설 박물관·미술관 건립 등이다.“일본 동경예술대학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중국 칭화대와 자매 결연을 맺었어요. 한·중·일 동북아 문화를 아우르는 국제교류대학원을 만들고자 했죠. 그러려면 선결되어야 할 과제가 많아요.” 곧 물러날 사람 같지 않았다. “총장 직무야 끝났지만 인간적 측면에선 끝낼 수 없잖아요. 앞으로 5년~10년간 제가 키운 아이들이 나올 텐데, 제 책임이 있는 거니까요.”그는 ‘악덕 총장’이라 불렸다. 학생들에겐 토익점수, 한자급수, 각종 자격증 등을 요구했고 교수들에겐 기러기 아빠 노릇은 끝내고 가족을 학교가 있는 충남 부여로 데리고 오라고 압박했다. 문화재 분야에선 답사와 실습이 중요한 만큼 교수들이 주말까지 털어 학생들을 이끌고 다니길 바랐던 것이다.◆고객감동으로 박물관에 대한 편견 깨고=“박물관 후배들은 혹사당하면서도 제 뜻을 알고 이해해줬지만, 학교에선 힘들더군요.” 국립민속박물관장으로 있는 동안 6800만 원이던 연간 예산을 120억 원으로 끌어올렸던 그다. 기획예산처 담당 과장에게 삼겹살을 사 먹이며 설득했다. 그래서 ‘로비의 귀재’란 말을 듣기도 했다. “삼겹살로 로비가 되겠습니까? 자료를 잘 만들어 과학적으로 설득해야 해요. 투자한 만큼 효과를 보여주는 고객감동도 있어야죠. 예산을 따는 건 열정으로, 예산 쓰는 건 진실과 예술로써 해야죠.”국립민속박물관이 꾸렸던 관객 참여형 전시는 늘 화제거리였다. 박물관은 고리타분하고 답답한 곳이라는 편견을 완전히 깨버렸다.“다니는 데마다 1등, 아니 특등을 만들었지만 학교는 제 마음에 안 차요. 그래도 최선을 다했으니까…. 이제 건강도 챙기고, 지금껏 못 쓴 글들도 마저 쓰고, 일하며 맺은 업연(業緣)들과 옛 이야기도 하며 지내려고 합니다.” [중앙일보] 이경희 기자 , 사진=김성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