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경궁 홍씨는 1735년 영조 11년 6월 18일 오시에 반송방 평동 지금의 종로구 평동에서 홍봉한의 2녀로 태어나 1744년 영조 20년 정월에 왕세자빈이 되었고, 1815년 을해乙亥 순조 15년 12월 15일 창경궁 경춘전에서 춘추 81세로 훙서하셨다.
1795년 정조正祖 을묘乙卯 19년에서 순조純祖 병인丙寅 6년까지 12년에 걸쳐 네 편의 <읍혈록泣血錄>을 지으신지 203년만에 비로소 <혜경궁의 읍혈록>이 처음으로 전체적인 기록이 한 자리에 원래의 참모습으로 완성되어 등장하였다. 61세 때 쓴 <친가편親家篇 읍혈록泣血錄>, 68세 때 쓴 <순조편純祖篇 읍혈록泣血錄>, 71세 때 쓴 <사도세자편思悼世子篇 읍혈록泣血錄>, 72세 때 쓴 <속순조편續純祖篇 읍혈록泣血錄 병인추록丙寅追錄> 등 네 번에 걸쳐서 쓴 기록記錄이 혜경궁惠慶宮의 <읍혈록泣血錄>이다.
그리고 한중만록閒中謾錄은 혜경궁이 지으신 것이 아니다. 61세 때 친가에서 지은 <한중만록閒中謾錄>은 “몰래 한閒, 가운데 중中, 속일 만謾, 기록할 록錄”으로 “(혜경궁)모르는 가운데 (혜경궁)속여서 쓴 기록이란 뜻의 제명題名은 친정에서 붙였다. 68세 때 순조편 한즁만록과 71세 때 사도세자편 한중만록(사도세자편은 세초되어 없어야 할 기록이나 한중만록에서 몰래 필사하였기 때문에 보전되어 그 파란만장한 모습이 명확하게 오늘날까지 전하여 지고 있는 것이다)은 <읍혈록泣血錄>의 필사본筆寫本으로 필사하면서 친정에서 붙인 명칭인 한중만록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72세 때 속순조편은 한중만록에는 없고 <혜경궁의 읍혈록>에만 있다.
또한 한중록恨中錄은 1899년 고종 36년에 사도세자思悼世子를 장조대왕莊祖大王으로 추존追尊할 때 영조英祖의 칠녀 화협옹주和協翁主의 남편 영성위永城尉 신광수申光綏의 집에 있던 국문본國文本 한중만록閒中謾錄을 곤동대방壼洞大房에서 상궁尙宮이 필사筆寫하면서 처음부터 친가에서 붙여놓은 제목인 <한중만록閒中謾錄>과는 상관없이 혜경궁의 지원극통至冤極痛한 지한至恨을 염두에 두고 제목에 대한 진의眞意도 모르고 이를 가탁假託하여 <한중록恨中錄, 원통할 한恨 가운데 중中 기록할 록錄>으로 <한중만록閒中謾錄>과는 상관없이 붙인 명칭으로 추정되는 것이 한중록恨中錄이다.
|
서문 사진자료 일러두기 <읍혈록> 해제解題 <읍혈록泣血錄>과 <한중만록閒中謾錄>의 논증論證과 원전原典 고찰考察
혜경궁 읍혈록惠慶宮 泣血錄 친가편親家篇 육십일세 순조편純祖篇 육십팔세 사도세자편思悼世子篇 칠십일세 속순조편續純祖篇 칠십이세
|
·1932년 경북 상주(尙州) 태생(胎生) ·호 : 벽천(壁泉) 수하당(須何堂) ·동양의학대학(東洋醫學大學) ·동화통신사 기자(同和通信社 記者) ·궁정고전연구소(宮廷古典硏究所) 소장 ·성균관 서울시운영위원회 운영위원 ·도서출판 민속원(民俗苑) 회장(會長) ·풍산홍씨(豐山洪氏) 대종회(大宗會) 회장(會長) ·도서출판 문예원(文藝苑) 회장(會長) ·풍산홍씨(豐山洪氏) 대종회(大宗會) 원로회의(元老會議) 의장(議長) ·1992년 한국출판문화상:한국일보 ·1997년 한국비교민속학회 감사패 ·2000년 KBS국악대상 출판부문:한국방송공사 ·2000년 한국문학비건립동호회 감사패 ·2004년 국립국악원 감사패 ·2005년 시인(詩人), 문단에 등단 ·2006년 중화민국 중앙민족대학 조선어 어문학부 감사패
·저서:인목대비(仁穆大妃)의 서궁일기(西宮日記)혜경궁(惠慶宮)의 읍혈록(泣血錄)유성기음반가사집(留聲機音盤歌詞集) Ⅰ, Ⅱ 공편육신록(六臣錄) 외 다수 ·시집:숨은 소리도 세월 따라 흐르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