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近代 民俗․人類學 資料大系』 일제가 조사 ․ 연구한 한국문화 자료의 집대성
일제강점기에 한국문화는 어떠한 시각에서 조사・발굴되어 어떠한 통치(행정) 목적 혹은 맥락에서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의 민속문화를 고찰하는데 그렇게 ‘생산’된 민속문화 지식들은 어떻게 비판적으로 수용되고 있는가? 도서출판 민속원에서는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조선총독부 촉탁, 경성제국대학 교수 등이 출간한 여러 자료들을 영인 ․ 보급함으로써 한국 근대 문화 연구에서 일정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 도서출판 민속원에서는 최근 한국 근대문화에 대한 관심이 인문・사회과학의 제 분야로 확산되고 있는 학계의 동향에 부응하여 우선적으로 민속학 ․ 인류학 관련 원본(초판본)들을 여러 경로를 통해 입수하였고, 그 자료들을 저본으로 하고, 해제를 붙여 『한국근대 민속・인류학 자료대계』를 발간(영인)하게 되었다. 이번에 기획한 『韓國近代 民俗․人類學 資料大系』 1-20권(총 13종, 20책)에 들어갈 자료는 무라야마 지쥰(村山智順)의 『朝鮮の鬼神』, 『朝鮮の風水』, 『朝鮮の巫覡』, 『朝鮮の占卜と豫言』, 『朝鮮の類似宗敎』, 『部落祭』, 『釋奠․祈雨․安宅』과 젠쇼 에이스케(善生永助)의 『朝鮮の聚落』(前․中․後), 『生活狀態調査』(水原, 濟州, 江陵, 平壤, 慶州)와 아키바 다카시(秋葉 隆)와 아카마츠 지죠(赤松智城)의 『朝鮮巫俗の硏究』(上․下), 이마무라 도모(今村 鞆)의 『朝鮮風俗資料集說―扇․左繩․打毬․匏』와 기타가와(北川左人)의 『朝鮮固有色辭典』, 아키바 다카시(秋葉 隆)의 『朝鮮巫俗の現地硏究』, 『朝鮮民俗誌』이다. 이 『大系』는 앞으로 계속 발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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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서언
제1장 점복습속의 추노 제2장 점복을 행하는 자 제3장 자연관상점 제4장 동물·식물·기타 사물에 의거한 상복 제5장 꿈점 제6장 신비점 제7장 인위점 제8장 작궤점 제9장 관상점 제10장 상지법 제11장 도참과 예언
사진도판 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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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야마 지쥰에 대하여
무라야마 지쥰~1968)은 일본 니이카타(新潟縣) 카리와군(刈羽郡)에서 태어나 일찍이ྪ세 전) 어머니를 잃은 뒤에는 일련종(日蓮宗) 묘광사(妙廣寺)에 들어가 그 사찰 주지 무라야마 지젠(村山智全)의 훈도 하에 성장하였다.그는 소학교에는 들어가지 않고 중학교 2학년에 편입하고 하였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중학교를 졸업한 후 제1고등학교를 거쳐 1916년부터 1919년 7월까지 동경제국대학 문학부 철학과(사회학 전공)에 재학하였다.그의 대학 졸업논문 제목은「일본국민성의 발달」이었다. 대학 졸업 후 조선총독부의 촉탁이 된 무라야마는 경성 황금정(黃金町,현재의 을지로)에 거처하면서 부인과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었다.조선총독부의 촉탁으로 조사활동을 하는 한편 세브란스 전문학교에서 강의를 한 적도 있으며 경성제국대학 교수 아키바 다카시와는 깊은 친분이 있었다. 1941년 무라야마가 조선총독부 촉탁직을 그만둔 배경에는 그의 양부(養父)의 뒤를 잇고자 하는 뜻이 크게 작용했으리라 생각한다.일본으로 돌아가서는 조선장학회의 주사로 근무하였고 1945년 양부 무라야마 지젠이 세상을 뜨자 그 사찰의 주지가 되었다.1958년 다시 동경으로 상경하여 연구 활동을 계속하고자 하였으나 여의치가 않았던 것으로 같다.일본으로 건너간 1940년 이래 그가 1968년 세상을 뜰 때까지 이렇다 할 연구 성과는 보이지 않는 것은 저간의 그의 삶이 순탄치만은 않았던 것을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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