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우는 임진왜란 당시 처음 의병을 일으킴으로써 전국적인 창의의 촉매역할을 했다.
곽재우郭再祐의 자는 계유季綏, 호는 망우당忘憂堂이다. 집안 대대로 달성군 현풍에 살았지만, 무남독녀였던 어머니의 친정인 경남 의령현 세간리에서 태어났다.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외손서이며, 민본사상과 실천주의를 중시한 그의 학문세계를 이어받았다. 곽재우는 나라에 한 푼의 빚도 지지 않은 지방 유생의 신분으로 전국에서 처음 의병을 일으킴으로써 전국적인 창의의 촉매 역할을 했다. 낙동강과 남강의 방어선을 목숨 걸고 지켜냄으로써 곡창지대인 호남을 왜구로부터 막아낸 공적은 당시 어느 누구도 해낼 수 없었던 기적적인 성과였다. 곽재우는 권력 앞에선 추상같이 엄격했지만 속으로는 따뜻한 인성을 가진 인물이었다. 우리민족의 미래를 짊어진 청소년들이 이 책을 읽고 곽재우 장군의 가치관과 국가관을 찬찬히 공부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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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현풍사람으로 태어나다 우리 가문을 크게 빛낼 사람 “왜적 토벌로써 나라에 보답하겠다” 울진에서 패랭이 만들며 식량 조달 벼슬 버리고 귀향했다가 탄핵받고 귀양 “봉분도, 비석도 만들지 말라”
임진년의 봄 조선에서는 무슨 일이 여진족의 녹둔도 약탈사건 삼포왜란과 을미사변 탐관오리로 인해 도적이 된 백성들 백척간두에 선 1591년과 1592년 조선 조정의 모습
이미 예견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침략 왜 침략전쟁을 생각했나 조선 사신에 대한 일본의 홀대 도요토미의 전쟁 준비
정규군의 붕괴와 도망친 임금 정규군의 붕괴 선조의 도피
왜 의병이 주축이 되어야 했는가 의병이 사실상의 정규군 남명학파와 영남의병의 함수관계 의병군 간에는 강한 동지애
낙동강 물길을 방어하라 - 정암진 도하작전, 화왕산성 전투 살신성인의 리더십으로 의병조직 정암진 전투 화왕산성 전투 산성을 중요시한 곽재우의 혜안
왜군을 떨게 한 곽재우의 전략 난중 잡록과 학봉 김성일의 평가 게릴라 지휘관의 모범 조총에 대한 아쉬움
내시와 시종들도 공신이 되었건만 선조가 곽재우 공신책봉 반대 이항복 등 녹훈결정에 반기 류성룡, 정탁은 공신회맹제 불참
경상감사 김수와의 악연 징비록에 기록된 김수의 처신 토적으로 몰린 곽재우 앙금 털어낸 김수와 곽재우
곽재우와 김성일의 애틋한 관계 벼랑 끝에서 구제된 초유사 김성일 김성일을 만나 힘을 얻은 곽재우 눈물로써 맺은 짧은 인연
선조와의 갈등 선조 “의병에게 곡식 주지말라” 벼슬 거부하며 임금에게 거듭 직언 곽재우가 건의한 주승지도主勝之道
전라도 영암 유배와 탄핵 상중喪中에 복직 거부하자 유배 선조 승하 1년 전 사헌부에서 탄핵
곽재우를 늘 곁에 두고 싶어 했던 광해군 광해군이 의복과 함께 내린 벼슬 사양 함경감사직 사직하고 낙향
곽재우가 후세에 남긴 유산 평생을 지켜 온 부국안민富國安民 철학 “아들딸들에게 나눠 줄 재산이 없다네” “중국사신에게 은을 뇌물로 주지 말라”
조선의 왕과 관료, 선비들이 본 곽재우 망우당을 아낀 광해군과 숙종 서애 류성룡이 본 곽재우 관료들이 인정한 천하의 선비이자 충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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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심충택
매일신문 기자 영남일보 편집국장·논설실장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장 대구가톨릭대 산학협력교수 영남대 사회학과 강사 대구문화재단이사 대구지방법원 상근 민사조정위원 경북대치과병원 상임감사(이상 역임) (현)대구경북언론인회 부회장, 대구지방법원 서부지원 민사조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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