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공연예술 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는 ꡔ조선미인보감ꡕ. 민속원에서 처음 영인되었을 때 복사된 자료를 사용했기 때문에 연구에 불편함이 있었던 것을 감안하여, 저자는 ꡔ조선미인보감ꡕ년 7월 간행)의 원본을 구해 새롭게 영인하였다. 여기에는 조선 미인들의 사진과 기예, 이력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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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3.1운동 기생 33명 사진 최초 공개
일제 강점기 당시 수원지역에서 3.1운동을 벌인 기생 30여명의 실제모습과 인적사항이 담긴 자료가 7일 수원에서 열린 한 학술회의에서 처음으로 공개됐다.
수원박물관의 이동근 전문위원은 이날 오후 2시 경기도 문화의 전당에서 열린 수원지역 여성과 3.1운동 학술 심포지엄에서 1919년 3월 수원 자혜의원 앞에서 만세운동을 벌이다 징역 6월을 선고받은 김향화 등 수원기생조합 소속 기생 33명의 사진과 인적사항을 공개했다.
공개된 자료는 1918년 7월 발행된 조선미인보감(朝鮮美人寶鑑)에 실린 것들로 서울과 지방의 대표적인 기생조합을 소개하는 이 책자에는 1910년대 수원기생조합 기생들의 출신과 약력, 기예 등이 정리돼 있다.
이 자료는 특히 당시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징역 6월을 선고받은 김향화 외에 자료가 남아있지 않아 인적사항을 알 수 없던 나머지 시위 참가 기생 32명의 신원이 공개됐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 전문위원이 발표한 수원 기생의 존재 양상과 3.1운동에 따르면 1919년 3월1일 발발한 수원지역의 3.1운동은 3월 한달내내 수원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이어졌으며 이 가운데 3월29일 일어난 만세운동은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병원으로 향하던 기생 30명의 주도로 일어났다.
15~23세인 이들은 수원기생조합 기생들로 이들의 만세운동은 즉흥적으로 벌인 일이 아니라 일제의 기생단속령으로 과거 예술인으로 인정받던 이들이 관기로 내몰리면서 내재된 반발심을 사전 계획 하에 표출한 것이라고 이 전문위원은 분석했다.
그는 "당시 만세운동이 벌어진 자혜의원은 화성행궁을 헐어 지은 건물로 수원경찰서가 바로 앞에 있는데도 만세운동을 감행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고 주장했다.
또 이들이 1919년 고종이 승하하자 일절 가무를 중단하고 근신한 사실도 근거로 제시했다.
수원기생들의 만세운동은 당시 일제경찰의 조사 자료에 30여명이 참가한 사실이 기록돼 있으나 주모자로 구속된 김향화 외 나머지 참가 기생들의 인적사항은 그동안 확인이 불가능했다.
이 전문위원은 이에 대해 "당시 수원에 기생조합은 1개 뿐이었고 이들이 건강검진을 위해 정기적으로 함께 병원을 찾아야했다는 점, 조선미인보감이 3.1운동 1년 전인 1918년 7월 발행됐다는 점 등에 미뤄볼 때 책자에 수록된 사진은 나머지 참가자의 것들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는 "조선미인보감은 개인 소장본으로 지난해 민속원측이 원본을 사진으로 복사, 재인쇄하면서 이들의 얼굴과 인적사항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천대받던 여성들이었지만 수원상업강습소가 재정적 위기에 처하자 자선공연을 벌여 수익금을 기부하기도 한 이들을 민족운동의 일원으로 재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처 : 권혜진 기자, 수원 연합뉴스, 2008년 11월 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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