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우룡은 감문현감으로 6년간 있으면서 선정을 베풀었는데, 이임을 하게 되자 고을의 모든 사람들이 애석해 하며 돌에 새겨 유애비遺愛碑를 세웠으며, 시를 지어 이별을 애석해하였다. 이것은 마음에 새긴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인 것인 셈인데, 필사본인 채로 그대로 남아 있다가 홍회장께서 발굴하였기 때문에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조선후기 지방관이 이임할 때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36세에 첫 지방관으로 감문현감을 지냈던 홍우룡은 이후에도 주로 지방관으로 활동을 하여 17고을의 지방관을 지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벼슬살이 하는 동안에 지은 시문이 많았겠으나, 현재 전하는 것은 시 몇 수와 산문 몇 편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간 수습된 바 없는 홍우룡의 시문도 이 기회에 엮어서 『감문별사』와 함께 묶어 하나의 책으로 간행해 내고자 시도하였다. 책은 제일 앞에 해제를 겸하여 『감문별사』에 대한 글 한 편을 수록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홍우룡의 시문유집으로 꾸몄고, 다음에 『감문별사』를 넣었으며, 마지막에는 홍우룡 관련 부록으로 꾸몄다. 시문유집에는 그의 시 몇 27수와 3편의 산문이 들어갔다. 『감문별사』는 본래 한 사람의 작자 아래에 네 수의 시를 수록하는 체재였지만 간혹 한 곳에 모아져 있지 않고, 작자와 작품이 흩어져 있는 경우도 많았다. 이에 번역본에서는 이를 다시 정리하여 작자와 작품을 모두 한 곳에 모아 놓았다. 다만 원문을 확인하고자 하는 필요가 있는 경우를 위하여 원문을 뒤에 영인하여 부록으로 붙여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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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보 역자 간행사
|해 제| 홍우룡의 생애와 『감문별사』 洪祐龍 生涯 甘文別詞
|제1편| 호산시문유집 湖山詩文遺集 1. 호산시집 湖山詩集 2. 호산문집 湖山文集
|제2편| 감문현에서의 이별 노래 甘文別詞 1. 『감문별사』 원운 甘文別詞 原韻 2. 『감문별사』 차운 甘文別詞 次韻
|부 록| 홍우룡 관련 시문 洪祐龍 關聯 詩文 1. 서간 書柬 2. 기문 記文
감문별사 영인본 甘文別詞 影印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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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홍우룡 洪祐龍 해제 참조
역주 윤호진 尹浩鎭 1957년 경기도 남양주 출생 국민대학교 한문학과 졸업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석사과정 졸업(문학석사)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한문학과 박사과정 졸업(문학박사) 경상대학교 한문학과 전임강사, 조교수, 부교수, 교수(1990~현)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학교 방문학자(2009.9~2010.2) 영국 셰필드대학 방문교수(2001.3~2002.2) 중국 무한대학 방문학자(1996.3~1997.8) 논문 「서정 한시의 의미표출양상에 관한 연구」(박사학위논문) 외 50여 편 역서 『총계당시집』 외 30여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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