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예술무용은 최승희에서 출발했다. 최승희가 한민족의 전통을 신무용에 접목하여 큰 반향을 일으킨 시기는 일본으로 다시 돌아갔던 1933년 5월 20일의 공연부터이다. 한국 전통 무용을 현대화한 최승희의 ‘조선무용’이 공전의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때도 역시 그녀의 춤은 신작무용 혹은 창작무용이라 불리는 ‘신무용’에 해당했다. 그녀에게 있어서 전통은 창작 예술무용의 소재에 불과했다. 창작 활동을 통해 새 작품이 완성되고 공연됨으로써, 곧 새로운 예술 춤이 탄생하게 되었고, 이러한 작품을 신무용이라고 일괄 명명한 것이다. 이는 ‘모던 걸 최승희의 표상’을 예시하고 이어가는 첫걸음이었다. 일본에서 3년여 동안의 도제(徒弟) 학습을 마치고 돌아 온 최승희는 한반도에서 다시 약 3년 동안 5회의 신작무용발표회와 크고 작은 수많은 발표회를 개최하였다. 이 발표회들을 통해 총 73편의 신작 무용 소품을 창작하였다. 이들 작품으로 한반도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신무용의 신세계를 유감없이 펼쳤다. 그러나 일제는 한 젊은이의 패기를 꺾어 다시 일본으로 돌려보냈다. 이시이 문하로 재진입한 최승희는 일본의 창작세계에 자신의 독창적인 ‘조선무용(朝鮮舞踊)’을 소개하면서 일약 스타로 발돋움하였다. 위기를 전회위복으로 극복한 최승희는 오히려 일본 무용계마저 제패하는 경이로운 기록을 갱신하며 승승장구하였다. 한편, 그녀의 명성을 따르는 한반도의 젊은이들이 이곳저곳에서 알게 모르게 새로운 무용가의 꿈을 키우며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 중 한 인물이 김해랑(金海郞, 1915~1969, 본명 김재우)이다. 어쩌면 최승희의 명성 뒤에 가려져 활동하던 조택원(趙澤元, 1907~1976)을 본받았는지도 모른다. 그처럼 김해랑의 무용 관련 사승관계는 분명하지 못한 편이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중요한 업적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정민(鄭珉, 1928~2006, 본명: 정순모)과 최현(崔賢, 1929~2002, 본명: 최윤찬)을 후대의 탄탄한 무용가로 길러낸 일이다.
그리고 한국 신무용은 최현에서 완성되었다. 최현은 1950년대에 주로 영화배우로서의 삶을 10여 년 동안 살았다. 1963년부터 무용계로 돌아온 최현은 2002년 7월 삶을 마감하는 날까지 무용 예술활동과 교육활동에 여생을 바쳤다. 고등학교 때의 담임이었던 이두현李杜鉉(1924~2013) 교수와의 인연으로 연극과 탈춤에 일찍부터 입문했었다. 그에 따라 통영오광대의 장재봉張在奉(1896~1966)과 봉산탈춤의 김진옥金辰玉(1894~1969)에게서 탈춤을 배웠다. 뿐만 아니라 김천흥金千興(1909~2007)과의 인연으로 <처용무處容舞>를 익혔고, 한영숙韓英淑(1920~1989)에게는 <승무>, <태평무>, <살풀이춤>, <학춤>들을 배웠다. 또 우도농악 <소고춤>의 일인자인 황재기黃在基(1922~2003)에게 농악가락과 놀림새를 배웠으며, 부산 농악의 북가락도 익혔다. 진도북춤의 명인 박병천朴秉千(1933~2007)과는 호형호제하는 사이로 박병천의 서울 진입과 무용계에 발판을 마련해 준 이가 곧 최현이었다. 1969년부터 1990년까지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으로도 활동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로, 최현은 1965년부터 1995년 정년에 이르기까지 서울예술고등학교와 예원중학교 무용과 학생들에게 튼실한 춤의 기반을 제공했다. 이 말은 현재 무용한다하는 무용계 인사 중에서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사람이 드물다는 뜻이다. 최현은 전통춤을 현대예술화 한 자신의 춤을 ‘한국창작무용’이라고 부르고 싶어 했었다. 그러나 그는 최승희처럼 한국의 정서와 전통춤의 움직임, 복식과 음악을 애용했지, 해체하는 것은 단연 거부했었다. 뿐만 아니라 최승희나 조택원이 미처 이루지 못했던 전통춤의 진수를 자신의 작품에 녹여서 수용하였고, 게다가 깔끔한 세련미를 더하며 예술작품으로서의 한국춤을 완비시켰다.
|
|
|
책을 펴내며 夕荷 최현 선생님을 기리며
제1장 ‘무용’ 및 ‘신무용’ 용어의 출범과 정착 1. 용어 ‘무용’의 시작과 한반도 수용 2. 예술 양식으로의 ‘신무용’ 용어 변화와 정착
제2장 조선무용의 개척자, 최승희의 신무용 1. 조선 귀국 3년간의 최승희 무용공연과 작품 활동 2. 재도일 후 최승희의 무용공연과 작품 활동 3. 세계 무대에서의 최승희 무용공연과 작품 활동 4. 최승희의 신무용, 조선무용의 특징
제3장 조택원의 조선 극무용을 향한 공연 활동 1. 조선반도에서의 조택원 무용 활동 개시 2. 프랑스에 다녀온 조택원의 무용 양상 3. 조택원의 극무용 안무 특징
제4장 김해랑의 신무용 계승 양상 1. 일본 유학파 김해랑의 무용 환경 2. 김해랑의 귀국 무용 활동 전개 3. 김해랑의 신무용 작품 양상 4. 전쟁 이후 김해랑의 무용 활동기 5. 김해랑의 신무용 발자취
제5장 최현의 현대기 신무용 완성 1. 근대의 도제식 교육 2. 스승 김해랑과 최현의 서울행 3. 최현의 독립과 영화배우 활동 4. 국립무용단과 최현의 춤 5. 창극단(가극단)에서의 최현 안무 6. 최현의 개인적 무용공연활동 7. 최현의 무용 교육자 행로 8. 현대기 최현의 신무용 예술성 구축과 완비
부 록 참고문헌 참고자료 찾아보기
|
이종숙李鍾淑 Lee, Jong Sook
한양대학교 무용학과 졸업 이화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체육교육전공 석사 용인대학교 무용학 박사 한국무용사학회 편집위원장 역임 현 무용역사기록학회 이사 및 편집위원 한양대학교·성균관대학교·한국예술종합학교·순천향대학교 강사 역임 강원대학교·단국대학교 강사 한국전통악무연구소 소장
「『時用舞譜』의 舞節구조 분석과 現行宗廟佾舞의 비교연구」(2002) 『처용무보』(2008) 『종묘제례악 일무의 왜곡과 실제』(2012) 『한국춤통사』(2014, 5인 공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