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한때 연합군에 속한 강대국들은 전후 세계 냉전(冷戰)의 소용돌이에서 서로 다른 이념과 체제를 앞세워 대립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세계 냉전은 신생 독립국가 건설을 준비하던 남북한 모든 이들에게 또 다른 ‘열전(熱戰)’을 강요했다.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전쟁은 남북한 모두에게 돌이킬 수 없는 큰 상처를 안겨주고 말았다. 그런데 6·25전쟁은 어떤 의미에서 ‘두 개의 전쟁’이었다. 첫 번째 전쟁은 1950년 6월부터 1951년 여름까지 진행된 영토를 둘러싼 전쟁이었고, 두 번째 전쟁은 1951년 후반부터 1953년 7월까지 전개된 포로를 둘러싼 전쟁이었다. 1951년 여름 이후 전선이 고착되자 두 진영은 휴전 협상에 돌입했는데, 이 협상은 짧은 시간 안에 마무리되지 못하고 2년 가까이 지속되었다. 전쟁이 빨리 종결되지 못하고 2년 가까이 지연된 것은 바로 ‘전쟁 포로’를 둘러싼 여러 쟁점 때문이었다. 6·25전쟁 후반부의 주인공은 사실상 ‘포로’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6·25전쟁은 1949년 발효된 전쟁 포로의 대우에 대한 ‘제네바 제3협약’이 처음으로 적용된 전쟁이었으며, 포로 처리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참전국들은 모두 제네바 제3협약을 준수하고 적용하겠다고 선언하고 나섰지만, 전쟁의 흐름에 따라 포로 처리문제는 전혀 예상 밖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포로의 성격에 따른 분류와 재분류, 심문과 재심문, 강요된 선택과 교육이 이루어졌고, 수용소 내에서는 잇따라 참혹한 사건들이 발생했다. 정전협정 체결 후 마침내 포로들은 돌아간 자, 돌아가기를 거부한 자와 중립국을 선택한 자로 나뉘어졌지만, 이미 많은 포로들은 극단적인 이념 대결, 폭력과 차별 속에 고통 받은 뒤였다. 이번 전시회는 마지막 남은 냉전의 땅에서 다시 한 번 전쟁 포로들을 생각하면서 진정한 세계 평화를 일궈가는 과정이 아닐까 한다. 다시는 6·25와 같은 불행한 전쟁이 없는 세계, 각국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이용되는 포로가 없는 세상. 이것이 바로 이번 전시가 추구하는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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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사
전시개요
6·25 전쟁 및 포로 연표
1부 누가 포로가 되었나?
2부 포로들은 어디로 갔는가? 수용소 분포 지도 수용소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3-1부 포로들은 어떻게 관리됐는가?
3-2부 포로들은 어떤 교육을 받았나? 전쟁 포로들이 들었던 음악
3-3부 포로 곁에 누가 있었나? 흥남철수 이전과 거제도 피난 이후
4부 수용소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5부 결국, 포로들은 어디로 갔는가? 국군 귀환포로 집결소 용초도
전시를 마치며
전쟁 포로, 생존과 평화의 갈림길
전시자료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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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괄 황보명(자료관리과장) / 정창욱(문화예술과장)
기획 염경화(연구관)
진행 문근실·안주영·김권정·서수민(연구사) / 이정만·옥성계(계장)·류선영(연구사)
지원 황윤희·한수정·황성식(연구원)
자료발굴 정근식(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 전갑생·김민환·정영신·공준환·이선우·김일환(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논고 전갑생
사진촬영 전갑생 / 신유섭·안남현(연구원)
번역·통역 서진영(유네스코 아태무형유산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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