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조선 사람들의 생생한 생활 모습과 생각을 엿보다 『묵재일기』는 이문건(李文楗, 1494~1567)이 그의 나이 41세에 시작하여 73세에 사망하기 몇 개월 전까지 총 17년 8개월의 일기로 모두 10책으로 되어 있다. 이 일기에는 당시 양반들의 교유관계, 관직생활, 유배생활 등 다양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적혀있다. 예를 들면, 이문건이 귀양살이 중에 가계 단절의 위기의식을 느낀 나머지 손자 얻기를 강렬하게 염원하였는데, 쌀·옷·종이·초·솜·기름·향 등의 물건을 절에 보내 승려로 하여금 초제를 지내 아이를 얻게 해달라고 빈 얘기, 태아 감별과 출생 시기를 점쳐 본 얘기도 나온다. 이 외에도 당시의 식생활, 농업, 제사 등 다양한 내용들이 실려있다. 『묵재일기』의 가장 큰 덕목은 매일의 일상을 매우 세밀하고 꾸밈없이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현재 남아있는 16세기 일기이면서 보물로 지정된『 미암일기』와『 쇄미록』과 비교가 된다. 두 일기도 분량이나 내용 면에서 당대의 생활을 충실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묵재일기』와 유사하나, 상세하면서도 솔직하게 기록했다는 점에서 『묵재일기』가 두드러진다. 특히 이문건이 성주에서 귀향 생활을 할 때의 일기 내용은 당시 성주의 상황이 눈에 잡힐 듯이 그리고 있어 이를 통하여 우리는 실록 등 정사(正史)에서는 알 수 없는 당시 사회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문건이 성주로 귀양을 간 것은 개인으로는 극히 불행한 일이었으나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기록을 남겼다는 점에서 후대 사람들로서는 다행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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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일러두기
신유년辛酉年 가정 40|명종 16|1561년
임술년壬戌年 가정 41|명종 17|1562년
계해년癸亥年 가정 42|명종 18|1563년
계해년癸亥年 가정 42|명종 18|1563년
갑자년甲子年 가정 43|명종 19|1564년
을축년乙丑年 가정 44|명종 20|1565년
병인년丙寅年 가정 45|명종 21|1566년
정묘년丁卯年 가정 46|명종 22|1567년
참고문헌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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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이문건 李文楗, 1495-1567 이문건의 호는 묵재默齋이며, 승문원 정자 윤탁允濯의 아들이다. 일찍이 중형 충건忠楗과 더불어 조광조趙光祖의 문하에서 배웠으며, 1513년(중종 8) 중형과 함께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1528년에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정원 주서·승문원 박사·정언·이조 좌랑·승정원 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1546년 명종이 즉위하면서 윤원형尹元衡 등에 의하여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족친族親 이휘李輝가 화를 입었고, 이에 연루되어 성주에 유배되었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괴산의 화암서원花巖書院에 제향되었다.
옮긴이 김인규 金仁圭, Kim In-Kyu 1964년 서울에서 태어남. 1982년 서강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하여 동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학위 논문 「: 16세기 경북 성주 지역의 장인 연구」) 1992년 국립민속박물관에 들어가 전시, 조사, 교육 업무 등을 하였으며, 1999년에 문화재청으로 옮겨 무형문화재, 동산문화재, 근대문화재 관련 업무를 하였고 현재는 국립고궁박물관 유물과학과에서 근무. 공저인 『옹기를 만드는 사람들』(2009)을 비롯하여 주로 장인匠人과 관련한 글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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