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육사가 본명인 이원록 대신 일제가 지어준 이름을 사용한 까닭은?
자신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이름이다. 육사는 조부 이중직이 지어준 원록 대신 일제가 붙여준 수인 번호를 자신의 이름으로 삼았다. 그것은 일제에 단호히 맞서는 것만이 우리 민족에게 희망을 주는 일임을 깨달은 까닭이다. 또한 육사는 스스로‘ 활活’이란 이름을 지어서 사용하기도 했는데, 조선인으로서 일제에 끝까지 맞서 싸우다 죽음을 맞는다고 할지라도 진정으로 사는 것이 이 길임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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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 연보(1904~1944)
왕모산 정기 받은 원촌 조부의 가르침은 인성교육 보문의숙의 신학문과 시회詩會 일본어를 배웠던 이유 대구생활과 백학학원 일본 유학과 관동대지진 민족사상의 본거지 대구 조양회관 중국 유학에서 접하게 된 루쉰 문학과 혁명 장진홍의거 사건과 수인번호 二六四 다시 구금된 대구격문사건 석정 윤세주와 운명적인 만남 조선혁명정치군사간부학교와 의열단 중국의 대문호 루쉰과의 상봉 요주의 사찰 대상자로 구금된 서대문 형무소 시사평론과 시 창작 활동 절창의 시들을 발표 무기 반입 지령을 받고 북경으로 간 육사 베이징 일본 총영사관 감옥에서 순국 육필 시 ‘편복蝙蝠’과 ‘바다의 마음’ 죽어서 고향에 돌아온 육사 첫 시집 출간과 유고 시 4편
작가 후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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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위발 李渭發 1959년 경북 영양 출생.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학예술학과 졸업. 1993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어느 모노드라마의 꿈』『, 바람이 머물지 않는 집』 과 산문집『 된장 담그는 시인』 출간. 논문「 이육사 시의 한자 시어 연구」로 석사학위 받음. 현재 이육사문학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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