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온공주가례등록(德溫公主嘉禮謄錄)은 덕온공주(1822~1844년)와 부마 윤의선(尹宜善, 미상~1887년)의 혼례 과정을 기록한 등록이다.
덕온공주는 1822년(순조 22)에 순조와 순원왕후(純元王后 김씨, 1789~1857년) 사이에서 셋째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8세가 되는 1829년(순조 29)에 ‘덕온’이란 공주의 작호를 받았다. 1834년(순조 34) 공주가 13살 때에 아버지 순조가 승하하자, 1837년(헌종 3)에 마침내 덕온공주는 남녕위(南寧尉) 윤의선에게 하가(下嫁)하였는데 이때 공주의 나이가 16세였다. 덕온공주의 가례는 1837년 5월 10일 왕대비의 전교에 의해 본격적으로 준비되었다. 같은 달 26일에 초간택(初揀擇)을 시작으로 6월 4일 재간택, 6월 25일 삼간택이 있었다. 그리고 7월 1일 부마 윤의선의 관례(冠禮), 7월 4일 납채(納采), 7월 16일 납폐(納幣), 8월 7일 명복내출(命服來出), 8월 13일에 친영(親迎)과 동뢰연(同牢宴)을 통해 혼례가 성사되었다. 그 과정을 이 등록을 통해 볼 수 있다. 1837년(헌종 3) 8월 13일에 혼례를 치른 덕온공주는 저동(苧洞, 현재 서울 중구)에서 살았다. 그러나 7년 후인 1844년(헌종 10)에 23세의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해 5월 24일에 헌종의 둘째 부인을 뽑는 행사에 참석하였다가 점심으로 먹은 비빔밥이 체하여 같은 날 저녁 사망하였다. 당시 공주는 임신 중이었으며 죽기 직전 아이를 낳았으나 아이도 바로 죽었다. 이후 부마인 남녕위 윤의선은 윤용구(尹用求, 1853~1939년)를 양자로 들여 후사로 삼았다. 비록 짧은 생애였지만 덕온공주는 조선왕실의 혼례 모습을 전해준다. 더욱이 덕온공주의 혼례 자료는 덕온공주가례등록 외에도 여러 형태로 전해져 그 의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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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온공주가례등록』 해제
국역 덕온공주가례등록 목록目錄 부마 고르기揀擇 사목事目 좌목座目 전교傳敎 부마 관례의駙馬冠禮儀 납채納采 납폐納幣 명복을 대내에서 내감命服內出 친영親迎 공주가 부마방에 나아감公主詣駙馬房 동뢰연同牢宴 상전賞典 이문질移文秩 내관질來關秩 감결질甘結秩 각 관사에서 소장한 물목들各司所掌物目秩 덕온공주 가례 및 출합할 때 별공작德溫公主嘉禮及出閤時, 別工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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德溫公主嘉禮謄錄 影印本
揀擇 事目 座目 傳敎 駙馬冠禮儀 納采 納幣 命服內出笏記 親迎 公主詣駙馬房 同牢宴 賞典 移文秩 來關秩 甘結秩 各司所掌物目秩 德溫公主嘉禮及出閤時, 別工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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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박경이 고전번역가
감수 양경희 한국고전번역원 번역위원
해제 이 욱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원
기획 김인규 국립고궁박물관 유물과학과장
편집․교열 김경미․양웅열․윤선영․이혜경
자료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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