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에 살았던 선비 곽주와 그의 가족들이 주고받았던 편지를 읽노라면, 그들의 한세상 살이가 오늘날 우리의 한세상 살이와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된다.
국사 책에서 혹은 텔레비전 드라마를 통해 만났던 조선 선비는 시종 근엄하고 집안일에 태무심했다. 일상의 편지를 통해 만난 곽주는 그렇지 않았다. 또 당시 아녀자들은 남편에게 무조건 복종하며 고개를 조아렸을 성싶지만, 진주 하씨 무덤에서 나온 편지로 유추할 때 당시 양반가 부인들은 남편과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불과 20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아버지들은 자식에 대한 사랑을 좀처럼 표현하지 않았다. 그런 무덤덤한 모습을 우리는 ‘전통적인 아버지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조선선비 곽주는 자식을 끔찍하게 사랑했고, 사랑을 표현하는 데도 주저함이 없었다. 오직 곽주만 그랬을 리는 없다. 조선선비들은 오직 글공부에만 신경을 쏟았을 것처럼 생각했지만, 꼭 그렇지도 않았다. 곽주는 재산의 들고 남, 가산의 증대와 감소에 관심이 많았다. 또한 이웃에 진 빚을 어떻게, 얼마나 갚아야 하는지, 소작료를 얼마나 지불할 것인지 세심하게 계산하고 따져 실행했다. 진주 하씨 무덤에서 발견된 여러 장의 편지는 조선왕조실록 중심, 또는 이름난 벼슬아치 중심의 역사공부에서는 우리가 발견할 수 없었던 조선시대 양반가의 일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뜻 깊다. 요즘 우리가 건강과 질병에 큰 관심을 갖고 있듯이, 조선시대 사람들도 질병을 크게 두려워했다. 과학기술의 차이로 현대인의 눈에 조선시대 사람들의 ‘미신에 대한 의존’은 무지로 보일 수밖에 없지만, 그 역시 현대인이 자화상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암 예방에 어떤 음식이 좋다고 하면 불티나게 팔리는가하면, 고지방 식품은 멀리해야 한다고 철석같이 믿던 현대인이 다이어트에 지방이 최고라는 말에, 지방만 골라 먹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어쩌면 이런 현대인의 모습도 미래에 올 사람들에게는 ‘미신’처럼 보일지도 모를 일이다. 곽주가 살던 시대에서 400년이 가파르게 흘렀다. 그 속도가 워낙 빨라 모든 게 변한 줄 알았다. 그러나 곽주의 편지는 우리가 여전히 조선시대 사람들과 같은 방식으로 살고 있음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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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글
조선선비 곽주의 부부싸움 삼년은 눈을 감고 귀를 재우고 견디소 먼 발 굴러서 생각하지 마소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쳐 주십시오 과거시험 한양 가는 길, 물물교환 화령 땅은 경상도 속 충청도 강원도 잠자리 불편하여 잠을 설치다 문경새재를 넘다 정녜와 정녈이 밖에 나가 못 놀게 하소 아무쪼록 아이들 편히 데리고 계시오 과거를 못 보더라도 상소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한양 시전에 구름처럼 모인 사람들 나랏일을 맡아서 처리하는 육조거리 과거시험을 앞둔 곽주의 각오 과거에 급제한 꿈 이야기, 둘 중에 하나라도 되면 얼마나 좋을꼬 난장판 과거장 풍경 과거를 보고 한양을 둘러보다 무슨 일로 집안이 하루도 조용한 때가 없는고? 기어이 따로 나가겠다 한다 아버님이 논공으로 가려 하시네 정냥의 머리에 약을 발라 빨리 낫게 하소 쇠고기는 장모께 드려 잡숫게 하소 정냥이는 심을 말았는가 딸을 낳아도 마음에 서운히 여기지 마소 아마도 달을 잘못 헤아렸는가 싶으이 대임이는 한결같이 젖을 잘 넘기는가 대임이는 어제 생일에 무엇을 잡던고 면화 자루가 봉한 둥 만 둥 헐려져 있으니 동래 온천에서 병을 고친 이는 없다고 합니다 봄이 깊어 포목이 만발하니 차라리 도망쳐 나갔던들 내일 새벽에 한훤당 제사에 참여할 것이니 내 핫중치막을 년쉬를 시켜 보내소 농사를 아무리 지어도 가산은 줄기만 하고 재테크하는 선비 곽주 삼치를 보내니 면화로 바꾸어 주십시오 차담상을 가장 좋게 차리게 하소 제사에 쓸 백미, 찹쌀, 녹두, 팥을 보내네 아내에게 제사와 손님을 맡겼더니 정녕 이 사람과 함께 살 수 없는가 혼인은 언제 어디로 하실 생각이십니까 내일 성복한 뒤에 치전을 할 것이니 이창이가 초가례 때 입을 붉은 옷 둘을 보내소 개똥물과 모시 뿌리 물을 먹이라 해라 타작 끝내고 열흘 뒤에 갈까 싶다 친구 안양을 떠나보내며
[부록] 4백년 전 편지로 보는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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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두진 1967년 생 매일신문사 문화부장 2001년 근로자문화예술제 단편소설 ‘게임’ 대통령상 2005년 한겨레 문학상 장편소설 ‘도모유키’ 2007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도서 ‘마라토너의 흡연’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도서 ‘몽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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