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악문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농악은 예능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삶과 밀접하게 관련된 물질적·정신적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농악을 전승하는 주체와 그들을 아우르는 공동체, 농악이 연행되는 현장으로서 의례와 노동, 놀이 등이 버무려져 농악문화를 형성해왔기 때문이다. 마을농악이라고 해서 전문적인 농악예능과 완전히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곡성 죽동농악의 기창수 상쇠는 마을의 상쇠이면서 당대 전라좌도권역에서 최고의 상쇠로 손꼽혔다. 거기에 더해 죽동농악에 서는 청소년들을 교육하여 포장걸립을 다닐 정도였으니, 죽동농악에는 한국의 농악문화가 화석처럼 켜켜이 스며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죽동농악은 마을의 농악문화를 꽃피워 온 마을이라는 점에서‘ 마을농악의 살아있는 화석’과 같은 존재다. 죽동 주민들은“ 마을회관에서 농악을 5분만 치고 있으면, 마을사람 모두가 찾아든다.”라고 말할 정도로 농악에 애정이 깊다. 그래서 정초가 되면 부잣집이나 아이를 낳은 집에서는 자녀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면서 색띠나 악기를 기증했고, 정월 보름마다 당산제와 달집태우기·마당밟이·판굿을 하면서 스스로 농악축제를 벌였으며, 주민들의 힘으로 농악의 전승력을 확보하는데 힘써왔다. 또 해마다 홍수로 떠내려가는 다리를 보수하기 위해 걸궁을 하였고, 농악인들을 후원하는 동시에 마을 청소년들의 농악교육을 실시해왔다. 죽동마을은 농악의 다양성을 고루 갖추고 있다. 기창수 상쇠를 이어서 좌도농악의 빼어난 예능을 잇고 있고, 동시에 마을농악의 공동체성을 지속하고 있다. 1982년부터는 농악의 전승과 체계적인 활동을 위해‘ 농악계’를 만들어서 활동하였고, 1990년에는 사단법인 곡성민속마을보존회를 설립하여 대외적인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었다. 이후 2002년에는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35호로 지정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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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악총서를 발간하며 머리말
제1장 죽동의 유래와 곡성의 역사 1. ‘죽동竹洞’의 첫 표기는 1789년 ‘방축동리防築洞里’ 2. ‘외비량지外比良池’라는 방죽이 있는 큰동네, ‘죽동’ 3. 민간기록과 구전을 통해 본 ‘죽동’ 4. 곡성읍, 산은 동악에서 솟고 강은 순강을 둘렀다 5. 전라좌도의 본터, 곡성과 옥과 6. ‘곡성 죽동농악’과 함께한 현장과 공간, 사람들
제2장 죽동농악의 전승기반과 농악문화 1. 명절축제로 전승되어 온 농악 2. 여름 농사철 일굿으로 전승된 농악 3. 공공기금과 농악연행을 위한 기부문화
제3장 죽동농악의 전승맥락과 예인들의 생애 1. 전라좌도농악의 전승맥락과 곡성죽동농악 2. 마을 안팎의 걸립 활동과 소년농악단의 육성 3. 곡성죽동농악의 전승계보와 역대 상쇠들의 생애 4. 곡성죽동농악 연희자들의 사사관계와 전승계보
제4장 죽동농악의 편성과 복색 1. 농악대의 편성과 특징 2. 복색의 외양과 변화 3. 치배별 악기와 도구
제5장 죽동농악의 연행양상과 가락구성 1. 죽동농악 판굿의 연행양상과 가락구성 2. 죽동농악 마당밟이의 연행양상과 가락구성
제6장 죽동농악 보존회의 운영과 전승활동 1. 농악계 결성 2. 보존회 설립과 전승활동
제7장 죽동농악의 특징과 위상 1. 전라좌도농악의 예맥, 곡성죽동농악의 정체성 2. 죽동농악의 음악적 특징과 위상 3. 도둑잽이굿의 전승과 연행의 의미 4. 농악문화의 가치 재인식과 지속을 위한 제언
부록 죽동농악 구술채록자료 1. 1979년 죽동농악 기창수 상쇠 면담자료 2. 1979년 죽동농악 강순동 상쇠 면담자료 3. 2015년 죽동농악 박대업 상쇠 면담자료 4. 2015년 곡성 죽동 박행록 면담자료 5. 2015년 곡성 죽동 신성호, 김정웅, 김중식 면담자료 6. 2015년 곡성민속마을보존회 신성호, 김정기 면담자료 7. 2015년 남원농악 류명철 상쇠 면담자료 8. 2015년 순천 황전면 용림마을 허웅 면담자료
참고문헌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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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태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 HK교수 김현숙 전 국립국악원 학예연구사, 전 진도군립민속예술단원 박혜영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 연구교수 김희태 전라남도 문화재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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