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례 연구의 선두에 있는 회재 이언적의 『봉선잡의』를 풀어내다. 가례 연구의 선두에 있는 회재 이언적의 『봉선잡의』는 우리 풍속을 중심에 놓고 서술하고 있어서 주체적인 정신이 돋보이는 저술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의 예전인 『국조오례의』를 고려했고, 무엇보다도 조선의 시속례時俗禮와 생활수준을 고려하여 가감할 수 있게 대체적인 틀만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제례에서 형식보다도 더 중요하게 여겨야할 본래의 뜻을 되새기라는 의미에서 『예기』, 『논어』 등에서 채록한 글로 『봉선잡의』하편을 만들어 제례의 본의本意를 재삼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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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언적 李彦迪(1491∼1553)
이언적은 경주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양동마을 양좌촌良佐村에 있는 외할아버지 손소孫昭의 서재 서백당書百堂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여주驪州이고, 초명은 적迪이었으나 1521년 중종이 거듭 불러 나아갈 때에 중종의 명으로 언彦자를 더하였다. 자는 복고復古, 호는 회재晦齋와 자계옹紫溪翁을 썼다. 회재라는 호는 회암晦菴(주희의 호)의 학문을 따른다는 뜻이고, 자계옹은 냑향하여 자옥산紫玉山에 독락당獨樂堂을 짓고 살면서 사용한 것이다. 조고는 훈련원 참군參軍 이수회李壽會이고, 조비는 경주 김씨이며, 아버지는 생원 이번 李蕃, 어머니는 경주 손씨이다. 배위는 함양 박씨이다. 열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외삼촌인 손중돈孫仲暾의 손에 양육되었고, 김종직의 문인이었던 외삼촌에게 성리학을 수학하였다. 이후 이언적은 조선시대 성리학 정립에 선구적인 인물로서, 주희朱熹의 주리론적 입장을 정통으로 확립하여 이황李滉에게 전해준다. 1514년(중종 9) 24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정랑·사헌부장령·밀양부사를 거쳐 1530년 사간원 사간司諫이 되었다. 이때 김안로金安老의 등용을 반대하다가 관직에서 쫓겨나 독락당에 들어가서 성리학 연구에 전념하였다. 1537년 김안로 일당이 몰락하자 종부시첨정宗簿寺僉正으로 불려나와 홍문관교리·응교·직제학이 되었고, 전주부윤에 나가 선정을 베풀어 송덕비가 세워졌다. 이조·예조·형조의 판서를 거쳐 1545년(명종 즉위년) 좌찬성이 되었다. 이때 윤원형尹元衡 등이 을사사화를 일으키자 선비들을 심문하는 추관推官에 임명되었으나, 재판 당시 사림파들에 대한 관대한 판결을 내렸다. 윤원형과 이기李芑 등이 이것을 문제 삼았고 그도 관직에서 물러났다. 1547년(명종 2) 윤원형 세력이 반대파 인물들을 숙청하기 위해 조작한 양재역벽서사건良才驛壁書事件에 -‘위로는 여주女主(문정왕후를 가리킴), 아래에는 간신 이기가 있어 권력을 휘두르니 나라가 곧 망할 것이다’는 내용의 벽서- 무고하게 연루되어 평안도 강계江界로 유배되었고, 그곳에서 많은 저술을 남긴 후 63세로 세상을 떠났는데, 『봉선잡의』가 그 중의 하나이다. 그가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남긴 저술은 『구인록求仁錄』(1550)·『대학장구보유大學章句補遺』(1549)·『중용구경연의中庸九經衍義』(1553)·『봉선잡의奉先雜儀』(1550) 등이다. 이언적은 안타깝게도 유배지에서 어머니와 아우 이언괄李彦适의 부음을 들어야만 했다.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지방관으로 나가기 원할 만큼 효심이 깊었던 그로서는 직접 빈소에서 송종送終의 예를 다하지 못하는 뼈아픈 회한 을 가지고 있었는데, 장남이 할 모든 일을 맡고 있던 아우마저 세상을 버리니 마음 둘 곳을 잃어버린 듯 통곡으로 제문을 써내려간다. 아우가 세상을 버린 1553년 그 해에 이언적도 시름시름 앓다 세상을 버리게 된다. 그는 사화가 거듭되는 사림의 시련기에 살았던 선비로서, 을사사화 때는 좌찬성·판의금부사의 중요한 직책으로 사림과 권력층 간신 사이에서 억울한 사림의 희생을 막으려고 노력하다가 결국 사화의 희생물이 되고 말았다. 1610년(광해군 2) 문묘에 종사되었고, 경주의 옥산서원玉山書院 등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원文元이다.
역자
김순미 金純美, Kim Soon Mi
옮긴이는 2005년 불교의례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한국예학총서』(경성대학교 한국학연구소)를 만드는 일에 참여하면서 유가례, 시속례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다. 그래서 불교의례집인 『(국역)천지명양수륙재 의범음산보집』(양사재)을 번역하였고, 조선조 가례학의 대체적인 체계와 중요한 학설을 개관하는 데 도움을 주는 『(국역)가례증해』(민속원) 번역 작업에 참여하였으며, 이와 관련된 「佛家의 喪禮와 僧喪服圖」, 「『석문가례초』의 五服圖 연구」, 「晦齋 李彦迪의 『奉先雜儀』 연구」 등의 논문이 있다. 현재는 경성대학교에서 초빙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 예속과 관련된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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