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세 번째 평론집에 담긴 내용을 들여다보니 “한국춤의 정신은 무엇 인가?”와 같은 대담, “우리민요의 지역적 특성” “판소리 다섯마당과 가야 금병창”과 같은 해설도 있다 하지만 중요 글은 공연에 대한 논평이다. 그 내용은 역시 대부분 당시 어려운 상황에 있던 전통공연예술의 안타까운 전승환경을 다루는 것이 많았다. 특히 전승이 단절되어 인멸되어 가는 전통 공연예술을 안타깝게 고발하는 것이 많이 눈에 뜨인다. 어려운 전승환경에서 외롭게 사투하던 마지막 보유자들의 죽음 앞에서 마지막 거장들이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사라져 가는 것을 통곡을 하듯이 고하는 글들이 보인다. 경기도당굿의 선굿소리의 마지막 거장 이용우, 전통 택견을 근대에 심었던 신한승, 창우 줄타기 전통을 이었던 김영철의 죽음에 관한 글들이다. 이것은 단순한 인간의 죽음을 애석해 하는 감상적인 차원이 아니다. 그가 죽으므로 해서 우리 문화에 아주 중요한 특성을 지닌 문화재의 한 대목이 인멸되어 가는데도 사회에서는 무관심한 상황을 고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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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월간 춤
춤은 내드름을 어떻게 굴리는가에 | 1984년 2월 초창기의 벅찬 감동을 기대하며 | 1987년 1월 전통춤의 반주 음악 문제 | 1987년 2월 대학 전통교육의 정통성正統性 재고 | 1987년 3월 민속문화는 그 「현지現地」에서 살려야 | 1987년 4월 판소리의 온전한 전승傳乘을 위한 서곡序曲 | 1987년 5월 맥이 끊어지는 전통문화傳統文化 | 1987년 6월 현행現行 「전주대사습놀이」의 역사적歷史的 근거는 옳은가 | 1987년 7월 잃어버린 전통 무예武藝의 복원 | 1987년 8월 중요무형 문화재重要無形文化財를 정하는 이유 | 1987년 9월 국립국악원國立國樂院, 무엇을 해야 하나 | 1987년 10월 해주검무 海州劍舞의 복원 가치에 무심無心 | 1987년 11월 중요무형 문화재와 창작자創作者와의 관계 | 1987년 12월 체계화體系化돼야 할 전통예술의 영상기록화映像記錄畵 작업 | 1988년 2월 복원復原의 맥脈 끊긴 판줄 | 1988년 3월 자생적自生的 축제의 위기危機 | 1988년 4월 이름뿐인 중요무형 문화재重要無形文化財 발표공연 | 1988년 5월 경기도당굿의 위기危機 | 1988년 6월 창극唱劇은 음악성이 우선해야 | 1988년 7월 아직도 국악國樂 차별대우 남아 있다 | 1988년 8월 잃어버린 인물人物을 위한 추적追跡 | 1988년 9월 축제와 민족문화民族文化 복원 | 1988년 10월 불모인 세계世界 「종족문화種族文化」 국내國內 연구 | 1988년 11월 전승보조금傳承補助金 마련은 바람직 | 1988년 12월 창극唱劇에 대한 「연극평론가」의 평評은 문제있다 | 1989년 1월 교포僑胞사회에서의 우리 전통문화傳統文化 | 1989년 12월 점점 밀려나는 미국美國속의 우리 국악國樂 | 1989년 4월 국립창극단國立唱劇團이 해야 할 일 | 1989년 5월 전통연희傳統演戱의 공연장公演場문제 | 1989년 7월 국악國樂과 대중大衆 | 1989년 8월 창극唱劇을 어떻게 민족극民族劇으로 이끌 것인가 | 1989년 9월 30여년餘年된 전국민속 경연대회全國民俗 競演大會 없애서는 안 된다 | 1989년 10월 전통과 창작創作, 엄격히 구별돼야 | 1989년 12월 국민교육 國民敎育에 있어서의 국악國樂의 불균형성 | 1990년 1월 남북南北 교차 공연公演은 좀 더 의연하게 대해야 | 1990년 2월 국립극장國立劇場 부설 예술학교藝術學校 있어야 | 1990년 3월 전통예술傳統藝術 관련 용어用語 정리부터 필요해 | 1990년 4월 「여성국극女性國劇」은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 1995년 5월 창작創作 국악을 위한 충격적 실험 | 1990년 7월 민족民族 동질성 찾기의 제일순위 | 1990년 8월 초·중·고등학교學校 국악國樂교육의 문제점 | 1990년 9월
객석
전국단오놀이를 둘러보고 “너는 죽어 정피(창포)되고 나는 죽어 약쑥되야” | 1984년 7월 우리민요의 지역적 토리 | 1984년 10월 이봄, 마음문을 열어준 공연 셋 | 1985년 4월 완창 판소리 공연과 시립국악 관현악단 연주와… | 1985년 5월 초여름 더위 식혀준 국악공연 셋 | 1985년 6월 85예술계를 돌아본다 | 1985년 12월 86예술계를 말한다 | 1986년 2월 민요와 농악도 국악에 속하느냐는 새삼스러운 질문 | 1987년 2월 다양한 얼굴이 요구되는 창작연주회 | 1987년 8월 우리음악에 대한 애정과 실천, FM국악무대 | 1987년 9월 풍류문화를 되살리는 ‘우리가락 한마당’ | 1987년 10월 대학국악교육 30년의 결산, ’87서울국악제 | 1987년 11월 여섯 차례나 열린 판소리 전판공연 | 1987년 12월 판소리 다섯 마당과 가야금 병창의 맥 | 1988년 7월 가야금산조 여섯바탕전 | 1989년 7월 국립창극단 정기공연 ‘수궁가’ | 199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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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이보형 1935년에 전라북도 김제의 해안벽지에서 태어나 전통음악을 모국어로 하는 문화에서 자랐다. 뒤에 연세대학교 대학원 음악학과에서 나운영 교수에게 서양음악 작곡법을 배웠지만, 음악적 모국어법과 부조화를 극복하기 위하여 한국국악학회, 국립국악원, 국악예술학교에 드나들며 한국전통음악 이론을 연구하였다.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상근문화재전문위원으로 있으면서 10여 년간 현지조사를 하며 한국전통음악 이론을 연구하였고 지금까지 20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 공로로 조선일보 방일영국악대상(2009), 일본 고이즈미 민족음악학 대상(2012)을 받았다. 현재 한국고음반연구회 회장, 한국통소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다.
| 엮은이 | 오진호 부산대학교 분자생물학과에 입학했으나 전통문화와 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안동대학교 국학부 민속학전공에 입학하여 졸업했다. 이어 부산대학교 대학원 한국음악학과 이론전공 석사를 졸업하고,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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