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눌小訥 노상직盧相稷의 「신해기행辛亥紀行」은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지식인이 신해년(1911)에 어쩔 수 없이 서간도로 망명가는 도중에 지은 한시집이다.
우리는 올해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일제의 강압에 저항해서 나라를 되찾고자 헌신했던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되살리고자 이 책을 기획하였다. 이 책에는 일제강점기에 처한 지식인의 내면은 물론 당시의 철도역과 생활상을 보여주는 희귀 자료가 다수 수록되어 있어, 근대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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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신해기행 여정辛亥紀行 旅程
1부 남한 지역
1 노산을 떠나며 發蘆山 2 밀양역에서 密陽 3 유천역에서 楡川 4 청도역에서 淸道 5 경산역에서 慶山 6 대구역에서 大邱 7 신동역에서 新洞 8 왜관역에서 倭館(仁同) 9 약목역에서 若木(仁同) 10 금오산역에서 金烏山(開寧) 11 추풍령역에서 秋風嶺(黃澗) 12 심천역에서 深川(永同) 13 이원역에서 伊院(沃川) 14 증약역에서 增若 15 태전역에서 太田(懷德) 16 부강역에서 芙江(文義) 17 전의역에서 全義 18 천안역에서 天安 19 병점역에서 餠店(水原) 20 수원역에서 水原 21 군포장역에서 軍浦場(果川) 22 안양역에서 安養(始興) 23 시흥역에서 始興 24 영등포역에서 永登浦 25 노량진역에서 鷺梁津 26 용산역에서 龍山 27 남대문역에서 南大門 28 임진강역에서 臨津江(坡州)
2부 북한 지역
29 장단역에서 長湍 30 개성역에서 開城 31 토성역에서 土城 32 계정역에서 雞井(金川) 33 한포역에서 汗浦(平山) 34 물개역에서 物開 35 신막역에서 新幕(瑞興) 36 서흥역에서 瑞興 37 흥수역에서 興水(鳳山) 38 마동역에서 馬洞 39 사리원역에서 沙里院 40 침촌역에서 沈邨(黃州) 41 황주역에서 黃州 42 흑교역에서 黑橋 43 중화역에서 中和 44 역포역에서 力浦(平壤) 45 평양역에서 平壤 46 서포역에서 西浦(平城) 47 순안역에서 順安 48 어파역에서 漁波 49 숙천역에서 肅川 50 만성역에서 萬城(安州) 51 신안주역에서 新安州 52 영미역에서 嶺美(嘉山) 53 고읍역에서 古邑(定州) 54 정주역에서 定州 55 곽산역에서 郭山 56 노하역에서 路下(宣川) 57 선천역에서 宣川 58 동림역에서 東林 59 차련관역에서 車輦館(鐵山) 60 남시역에서 南市(龍川) 61 양책역에서 良策 62 백마역에서 白馬(義州) 63 석하역에서 石下 64 신의주역에서 新義州 65 안동현역에서 安東縣 66 흥륭가 셋집에서 興隆街 67 성신태에서 誠信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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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노상직
자는 치팔致八이고, 호는 소눌·눌인訥人·자암병수紫巖病叟이다. 1855년 11월 21일 김해金海 금곡金谷에서 생부 노필연盧佖淵과 생모 창녕성씨昌寧成氏 사이에서 태어나 노호연盧滈淵에게 입적되었다. 그는 생부의 상喪과 스승의 상을 당한 이후 과거공부를 접고 오로지 독서와 강학에 전념했다. 그리고 임오군란壬午軍亂과 갑신정변甲申政變 등을 거치면서 외세의 영향으로 정국이 극도로 어지러워지자, 1894년 거주지를 밀양으로 옮겼다. 그 후 1895년에는 밀양의 금곡에 금산서당錦山書堂을 건립하여 후학양성에 힘썼다. 1896년에는 밀양의 노곡에 자암초려紫巖草廬를 짓고 강학을 확대하였으나,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를 당한 후 일제에 의해 중단되었다. 소눌은 그의 형 대눌大訥 노상익盧相益이 망명을 떠난 지 한 달 뒤에 온가족을 모두 데리고 압록강을 건너 서간도 안동현으로 갔다. 그곳에서 소눌은 형에게 입적시켰던 아들 노식용盧寔容을 병으로 잃었다. 이후 소눌은 고향으로 돌아가 후학 양성에 힘쓰라는 형의 강한 권고를 받아들여, 1913년 1월에 사판을 모시고 환국했다. 그 후에도 그는 형을 만나러 여섯 차례나 철로를 따라 서간도에 다녀오기도 했다. 망명지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소눌은 이듬해인 1914년부터 자암서당紫巖書堂을 건립하고 강학을 재개하여 후학 양성에 힘썼다. 그러던 중 1919년 독립만세운동 때 전국 유림에서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을 중심으로 회당晦堂 장석영張錫英,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 등이 파리강화회의巴里講和會議에 독립을 청원하기 위한 파리장서巴里長書를 작성했다. 이때 소눌은 김해 대표로 제자들과 함께 서명했다가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이후 자암서당을 중수하여 강학에 더욱 힘쓰다가, 1931년 1월 22일 73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광복이 되고 대한민국정부가 들어선 뒤, 소눌은 국가유공자로 지정되어 건국포장에 서훈되었으며, 2009년 6월 23일 김해 한림면 금곡리에서 국립대전현충원 애지제4-51 묘역으로 이장 안치되었다.
역저자
이은영 성균관대학교 문학박사 현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
이채경 성균관대학교 문학박사 현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 고려대 강사, 동국대 강사
정은주 성균관대학교 문학박사 현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
배종석 성균관대학교 문학박사 현 중국해양대학교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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