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모당선생 시문집_추보편
저자
모당 홍이상 저 / 윤호진 역주
판형|쪽
신국판 양장 | 368쪽
발행일
2014년 9월 30일
ISBN
978-89-285-0657-6
가격
23,000원
어버이와 조상을 영모永慕 한 홍이상洪履祥의 시문집
모당慕堂 홍이상洪履祥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서 널리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그가 어머니를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던 일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 귀한 자료로 세상에 소개된 바가 있다. 그리고 혜경궁 홍씨와 홍봉한 등 조선 후기 풍산 홍씨에 대해 관심을 가지려고 하면 우선적으로 알아야 하는 사람이 바로 홍이상이다. 그는 재세했던 시절보다 돌아간 뒤에 더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특히 조선 후기의 정치와 풍산 홍씨 문중을 이해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이다. 따라서 그는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와 그에 대한 연구 및이해의 필요성 때문에 세상에 이미 널리 알려졌다.
2012년『 역주 모당선생시문집譯註 慕堂先生詩文集』(상, 하)이 민속원에서 완간이 되었다. 비록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중요한 자료들은 거의 수집이 되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경기도 고양시高陽市의 씨족협회氏族協會에서 올해의 고양을 대표하는 인물로 모당을 선정하면서 학술대회를 준비하게 되었고, 여기에 풍산 홍씨 문중에서도 거들고 열상고전연구회에서도 참여하게 되어, 당초 계획했던 것보다 학술대회의 규모가 커지게 되었다.
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모당의 장자인 지계芝溪 홍방洪霶의 사파종손私派宗孫으로 모당의 14대손인 홍기홍洪起弘 님이 소장하고 있던『 만사·제문輓詞·祭文』이란 책에 모당에 대한 만사가 71제 83수가 수록되었고, 제문이 13편 수록되었음을 알았다. 여기에는 이뿐만 아니라, 모당의 모부인인 문경聞慶 백씨白氏에 대한 만사와 모당의 부인인 안동安東 김씨金氏에 대한 만사도 함께 수록되어 있었다.
『역주 모당선생시문집』에는 모당의 만사가 불과 대여섯 편 밖에 수록하지 못하였는데, 여기에 엄청나게 많은 만사가 남아 전하였던 것이다. 여기에 수록된 제문은 거의 대부분 수록이 되었지만, 만사는 문집에 수록된 것과 중복되는 경우도 있으나 이는 아주 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 문집에 수록되지 않은 것이며, 작자의 문집에도 수록되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 만사·제문』에 실린 모당의 만사는 홍기홍 님의 증조부인 운초雲樵 홍승경洪承敬 선생이 엮은 『풍산세승豊山世乘』이라는 책에도 고스란히 실려 있었고, 이에 더하여 모당의 유작 가운데 문집에서 빠진 것이 또한 실려 있었다.『 풍산세승』은 모두 11책으로 되어 있는데, 풍산 홍씨의 시조인 고려 후기의 문신 홍지경洪之慶 조선 후기 호은湖隱 홍낙질洪樂質에 이르기까지 수록이 되어있다.
이에 따라 기존의『 역주 모당선생시문집』(상, 하)에 이어 그 추보편追補編을 간행할 필요성이 절실하여졌는데, 이번 학술대회를 계기로『 풍산세승』의 것을 바탕으로 여기에 없는 몇몇 작품을 더하여『 역주 모당 선생시문집』 추보편을 내기로 결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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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사
추보편에 부쳐
추보편이 탄생되기까지
범례
추보 시문집
漢詩編
文章編
『豐山世乘』 所收 慕堂輓詞
『豐山世乘』 所收 諸賢文集摭錄
찾아보기
원전 영인
모당慕堂 홍이상洪履祥(1549~1615)
조선시대 중기의 문신으로 명종 4년(1549)에 출생하였고 처음 이름은 인상麟祥이며 자는 원례元禮, 또는 군서君瑞로, 호號는 모당慕堂이고 행촌杏村 민순閔純의 문인門人이다. 본관은 안동 풍산이고, 시조가 홍지경으로 고려조 고종 29년(1242)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벼슬이 국학직학國學直學이다. 이때부터 대대로 문맥이 이어졌으며, 구세조九世祖 증贈 좌찬성左贊成 수脩의 아 들이다. 고양팔현高陽八賢의 한 사람으로 선조 6년(1573) 정시에 장원으로 급제하고 선조 12년(1579) 전시에도 장원급제하였다.
정언正言, 수찬修撰, 이조좌랑吏曹佐郞을 역임하고, 독서당讀書堂에서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였으며, 교리校理, 집의執義, 응교應敎, 사간司諫, 사인舍人, 직제학直提學에서 동부승지同副承旨가 되었고, 독서당에서 사가독서하는 것을 겸하고, 특별히 이조참 의吏曹叅議가 되었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예조참의로서 임금을 호종扈從 하였음으로 병조참의가 되었다. 선조 27년(1594) 성절사聖節使로 명明나라에 다녀온 뒤 선조 28년(1595)까지 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로서 왜구倭寇와 싸웠으며 선조 29년(1596) 첨지중추부사 僉知中樞府事, 선조 30년(1597) 경기도관찰사京畿道觀察使로 임무를 마치고 전란戰亂 후 부제학副提學, 대사간大司諫이 되었다가 특별히 가선대부嘉善大夫가 되었고 대사성大司成, 대사헌大司憲을 거쳐 앞 뒤로 지낸 벼슬이 세 번 혹은 네 번이었다.
광해군光海君 즉위년(1609)에 시사時事가 그릇됨을 보고 힘써 외직外職을 구하여, 개성유수開城留守가 되었다. 광해군 6년 (1614) 임기任期를 마치고 송도松都에서 곧바로 선영先塋과 옛집이 있는 한성漢城 서쪽의 백암포白巖浦(지금의 고양시 대화 2리)로 돌아와 물가에 조그만 정자亭子를 지어 『낙양樂洋』이라고 편액 遍額을 달았다. 광해군 7년(1615) 4월부터 신환身患이 깊어져서 동년 9월 19일에 춘추 67세로 서거逝去하였다. 후後에 영의정領議政에 추증追贈되었고, 시호諡號가 문경文敬이고 문집文集으로 『모당유고慕堂遺稿』가 있다.
고양시高陽市의 문봉서원文峰書院에 배향配享되었으며 충주시 忠州市 금가면金加面 하담리河潭里에는 정조 10년(1786)에 창건한 모당선생만을 배향配享하는 하강서원荷江書院이 있다.
고양시 성석동城石洞 고봉산高峯山 기슭 정강正岡에 이준李埈이 찬撰한 묘비墓碑와 인조 9년(1631)에 이정구가 찬撰한 신도비 등이 있고 모당선생과 증贈 정경부인貞敬夫人 안동김씨安東金氏와 합폄合窆으로 된 묘역墓域이 있다.
역주譯註 윤호진尹浩鎭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한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문학박사.
경상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역저서로는 『한시와 사계의 화목』, 『대동운부군옥』(역주) 등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