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정모사도감의궤』는 조선 왕조 어진 모사의 마지막 표준 지침서라고 볼 수 있다.
1900년광무 4 10월에 발생한 덕수궁 화재로 인해 진전眞殿인 선원전璿源殿이 소실되자 그 안에 봉안된 7대 영정도 함께 훼손되었다. 고종은 즉시 도감을 설치하여 선원전을 중건하고 영정을 모사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도록 하였다. 영정모사도감에는 40명이 넘는 화원이 동원되었고, 오봉병풍[五峰屛], 해반도병海蟠桃屛, 반차도班次圖 등도 함께 제작되었다. 그리고 소요 기간만 하더라도 9개월이 넘는 유례없는 거대한 국가적 프로젝트였다. 그 결과 1900~1901년에 걸쳐 진행된 영정모사는 역사상 가장 모범적인 형태로 진행되었고, 의궤 역시 방대한 분량을 지닌, 가장 정제된 형태로 작성되었다.
어진의 제작은 왕권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행위이며, 어진 관리는 치도治道를 표방하기 위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이에 조선시대 왕들은 필요시 어진을 제작함으로써 사회 지배 질서나 왕권을 강화하려 하였다. 즉 선대 임금의 어진을 봉안하고 의례를 지내면서, 왕실의 정통성과 군신君臣 간의 위계질서를 재확인하려고 했다. 특히 고종대에 시행된 어진 모사 작업은 태조로부터 이어지는 조선왕조의 정통성을 드러내고, 어진 봉안 행사를 통해 국왕에 대한 충성을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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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정모사도감의궤』 해제
국역 영정모사도감의궤 좌목 시일 사물 조칙【주본, 연설, 서주 첨부】 표제 도설 품목 재용【월은, 장료 첨부】 조회 훈령 통첩 내보 내첩 감결 의주 상전 의궤사목 반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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影幀摹寫都監儀軌 影印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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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감수 김종수 서울대학교 국악과 강사
감수(전문용어) 김삼대자 前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조인수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해제 조광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명예교수
번역 이상식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강사 조윤선 한국고전번역원 책임선임연구원
기획 김연수 前 국립고궁박물관 유물과학과장(국립문화재연구소 미술문화재연구실장) 지병목 국립고궁박물관 유물과학과장
편집·교열 김지연 김정임 이상백 김영욱 윤선영 김한아름
의궤 사진촬영 미디어그룹 사람과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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