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뿌리깊은나무』의 이보형 선생님 평론과 일부 다른 월간지의 글 을 모은 것이다. 『뿌리깊은나무』는 한국브리태니커회사의 창업자인 한창기가 만든 잡지로 1976년 3월에 창간되어, 1980년 8월을 마지막(전 53권)으로 신군부에 의해 폐간되었다.
사실 그동안 이보형 선생님이 논문을 쓰는 학술적인 활동에만 전념하신 줄 알았다. 그런데 우연찮게도 국악·무용·민속 등 다방면에 많은 평론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것들이 잊히고 있다는 생각에 글들을 모아 책으로 발간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첫 결과물이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까지 이어오는 이 글들은 당시 국악, 무용, 민속, 창극에 대한 소중한 기록이자 전통문화의 자화상이다. 사실 이때 선생님께서 이야기하셨던 것들이 현재의 국악계와 무용계를 비추는데도 유용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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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알려진 보물|박봉술의 판소리 「춘향가」 : 1977년 5월
민중예술 판소리 : 1977년 8월
이 땅의 이 사람들 임방울과 김연수 : 1977년 11월
서양 풍악만 울리는 음악 교실 : 1978년 5월
무르익은 소리|김명환 판소리고법 발표회 : 1978년 7월
금요일마다 남몰래 들인 공|일백 고개 넘은 뿌리깊은 나무 판소리 : 1978년 10월
저 쓸 만한 노릇바치|김소희와 공옥진의 공연 : 1979년 4월
허규가 애써 닦은 창극의 길|국립 창극단의 「광대가」 : 1979년 5월
이 땅의 이 사람들 신재효와 진채선 1979년 6월
마당놀이가 얻은 큰 병|중요무형문화재 발표공연 : 1979년 7월
우리편을 왜 깔봐?|시립국악관현악단의 연주회 : 1979년 8월
착한 김응수와 김원경|극단 거론의 발탈공연 : 1979년 9월
국극이란 것이 뭐 이래?|극단 금호의 「통곡 소리」 : 1979년 10월
허규가 그답게 짠 놀이판|국립창극단의 「가로지기」 : 1979년 11월
시켜서 될 일의 한계|20회 민속경연대회 : 1980년 1월
학습을 잘 닦은 김금화와 황해도 철몰이굿 : 1980년 2월
재산이라면 이렇게 간직하자|중요무형문화재의 보호 : 1980년 3월
모처럼 나온 꼭두놀음|꼭두놀음패 어릿광대의 「양주산대」 : 1980년 4월
북녘의 ‘소리’를 어디서 또 들을까?|지관용과 양소운과 장용수의 서도소리 : 1980년 5월
고마운 선생과 똑똑한 제자|정농악회의 여섯 번째 연주 : 1980년 6·7월(합병호)
국립국악원이 칭찬받을 경우|전통무용발표회 : 1980년 8월
민속음악에 나타난 미의식美意識|판소리와 산조를 중심으로 : 음악세계(1981년 1월)
아무데나 박수치고 추임새를 넣다니 : 학원(198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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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이보형 1935년에 전라북도 김제의 해안벽지에서 태어나 전통음악을 모국어로 하는 문화에서 자랐다. 뒤에 연세대학교 대학원 음악학과에서 나운영 교수에게 서양음악 작곡법을 배웠지만, 음악적 모국어법과 부조화를 극복하기 위하여 한국국악학회, 국립국악원, 국악예술학교에 드나들며 한국전통음악 이론을 연구하였다.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상근문화재전문위원으로 있으면서 10여 년간 현지조사를 하며 한국전통음악 이론을 연구하였고 지금까지 20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 공로로 조선일보 방일영국악대상(2009), 일본 고이즈미 민족음악학 대상(2012)을 받았다. 현재 한국고음반연구회 회장, 한국통소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다.
| 엮은이 | 오진호 부산대학교 분자생물학과에 입학했으나 전통문화와 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안동대학교 국학부 민속학전공에 입학하여 졸업했다. 이어 부산대학교 대학원 한국음악학과 이론전공 석사를 졸업하고,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현재 부산대학교 한국음악학과 강사, 부산대학교 예술영재교육원 전임연구원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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