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후 8년은 군정기(1945~1948), 정부수립기(1948~1950), 한국전쟁기(1950~1953)의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이들 시기의 기사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해방 후 8년이 남북 간에 그 어느 때보다 갈등과 분열이 컸던 때이지만 식민주의와 봉건주의와의 고리를 끊고 근대적 민족문화를 설립하려는 열망이 강한 시기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또한 남북한에 주둔한 미군과 소련군을 통해 들어온 외국문화에 놀라면서도 호기심과 선망어린 시선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해 볼 수 있다.
해방 후 8년은 식민과 탈식민, 한국전쟁과 분단이라는 현재까지 남북한의 역사적 갈등이 응축된 시기이다. 이 기간 동안 한반도는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되어 ‘근대민족국가’를 건설하려는 이상을 공동의 목표로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남북으로 나뉘어 미국과 소련에 의한 군정통치를 경험하고 이데올로기 싸움이 결국 전쟁으로 폭발해 분단되었다. 그 결과 60년 이상의 남북 간의 대결과 냉전이 지속되었으며 탈냉전이라는 전 세계의 조류에도 불구하고 한반도는 냉전을 극복하지 못하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반세기가 넘게 계속된 남북의 갈등을 풀기 위해서는 문화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남북의 정치적 대치가 고조될수록 전쟁과 냉전이 남긴 상처와 이산의 고통, 남북갈등 못지않게 내재하고 있는 각각의 체제 내부의 갈등 등을 정치적 이해관계를 넘어 보듬어줄 역할을 문화가 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현재 한반도의 갈등의 해답을 해방 후 8년의 역사적·문화적 경험에서 찾으려는 노력에서 당시 남북한에서 발행된 신문과 잡지의 영화·연극·방송 관련 기사와 광고를 싣고 있다.
이 책은 해방 후 8년의 사회문화적 갈등과 문제, 대중의 욕망과 열망 등이 문화를 통해 비춰질 수 있다고 판단해 그 시기에 발행된 남북한의 신문, 잡지의 영화·연극·방송 관련 기사와 영화 광고를 실었다. 남한의 경향, 동아, 서울, 조선 등 4대신문과 자료가 남아 있는 북한의 모든 신문을 대상으로 했다. 단, 남한의 기사는 이미 출판된 한국영상자료원의 『신문기사로 본 한국영화 1945~1957』와 이명자의 『미군정기의 외국영화』와 겹치지 않는 기사를 선별해 실었으며 한국전쟁시기 동안은 피난지인 대구와 부산이 문화의 중심지였던 만큼 경향신문 기사대신 부산일보와 영남일보의 기사를 실었다. 전쟁의 영향으로 1950년 6월 29일부터 동년 10월 22일까지 조선일보가 발행되지 않는 등 서울의 신문이 단속적으로 발행되는 일이 많았던데 비해 피난민이 몰려든 부산과 대구는 새로운 문화중심지로 활발한 문화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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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일러두기
1부 남·북한 신문기사
남한신문 북한신문
2부 남·북한 잡지기사
남한잡지 북한잡지
3부 남한의 광고
서울신문광고 부산일보광고
기사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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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자 李明子 부산대학교 영화연구소 연구원이다. 동국대학교 대학원 연극영화과에서 「김정일통치시기 가족멜로드라마 연구-북한 근대성과 그 변화」(2005)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남북한 비교영화사 연구 및 트랜스로컬 시네마 관련 연구와 저술활동을 한다. 문화연구와 결합한 로컬 시네마 연구로 관심을 넓혀가고 있으며 특히 탈북문제를 포함해 코리안 디아스포라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미군정기 외국영화』(커뮤니케이션북스, 2011), 『북한영화사』(커뮤니케이션북스, 2007), 『북한영화와 근대성』(역락, 2005) 등이 있다. 논문으로 「양영희 영화에 재현된 분단의 경계인으로서 재일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정체성」(2013), 「한국전쟁 전후 시기, 남북한의 냉전이데올로기 영화에 재현된 근대화담론의 비교」(2012)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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