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흙이 되어도 좋다” 타카하시는 무모하였던 일제의 식민농정을 비판하고 “조선의 흙이 되어도 좋다”고 할 만큼 조선을 위해 몸바쳐 살며 조선을 사랑하였다. 그의 끝없는 노력의 결과[遺稿]는 농촌진흥청에 기증되었고 농업과학관에는 「타카하시 노보루 코너」가 설치되어 마치 당시의 CCTV를 검색하듯이 우리의 실상과 진상을 보여주며 우리의 미래를 밝혀 비추고 있다.
타카하시 노보루는 우리나라 전국 방방곡곡을 일일이 답사하면서 전래하는 농법과 농기계, 농촌생활문화를 탐문기록하고 사진과 스케치로 남겨 당시의 전무후무한 우리나라 기록 문화유산을 남겼다. 특히 이들 모든 자료는 조선총독부의 지시가 아닌 그의 개인적 비용과 의지 및 시간과 신념으로 이루어진 것임에 더욱 머리가 숙여진다.
타카하시 노보루는 일제강점기의 일본인 농학자들과 달리 1919년 이래 26년을 권업모범장 농사시험장에 근무하며 조선 재래농업의 「작부방식」이 서양의 윤작법보다 훨씬 진화되었음을 깨닫고 이를 실증하고자 전국 팔도를 샅샅이 뛰어다니며 실태조사를 하였다. 또한 농민들에게서 직접 배우며 『조선반도의 농법과 농민』이라는 유고를 남겼고, 『수도휴립재배법의 이론과 실제』를 체계화하여 한국 최선의 생산성 있는 농법으로 제시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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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역자 머리말 원저자 타카하시 노보루가 찍은 사진
그때 이 사람, 타카하시 노보루高橋昇 01 서언 02 집안家系 그리고 성장 배경 03 농학자의 길 04 서선지장장의 직무와 연구:오치아이 히데오의 회고록 05 수도휴립재배법의 이론과 실제 06 농업실태조사 07 조선반도의 농법과 농민 08 마무리 글
참고문헌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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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카하시 노보루 高橋 昇 1892년 12월 23일 카케 이와지로의 차남으로 야매시 코즈마 출생 1906년 후쿠오카 현립 쿠루메 중학교 명선당 입학 1912년 카고시마 제7고등학교 조사관 입학 1915년~1918년 코마바 농학교(현 동경대 농학부) 재학 1918년 일본 농림성 농사시험장 맹류시험장 입사 1919년 수원농림학교 겸임교수 겸 조선총독부 권업모범장 기수 발령 1924년 황해도 사리원 서선지장 겸무 1926년 미국 견문 유학 1928년 유럽 견문 유학 1929년 조선 총독부 농사시험장 서선지장장(기사) 1935년 2월 8일 토쿄대학 농학박사 학위 1946년 5월 일본 귀국 1946년 7월 20일 향년 55세로 사망
주요 저서 『朝鮮主要農作物の品種名について』(1933년),『 朝鮮農具考』(1937년), 이외 미발표 유고로, 「犂�に關する硏究」,「稻作の歷史的發展過程(Ⅰ·Ⅱ·Ⅲ)」,「耒耟�考」,「勞力調査」, 「勞力(主として揷秧)調査」 등이 있다.
구자옥具滋玉 대전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및 대학원, 덴마크 왕립농과대학교, 농학박사 현) 전남대학교 명예교수, 한국잡초학회 고문, 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 한국농업사학회 이사장 겸 (전임)회장, 전남대학교 교무처장, 농학대장, 농학개발대학원장
강수정姜秀晶 수원 영복여자 고등학교 , 경희대학교 일어일문학과 및 동 대학교 졸업,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일어교육 전공 및 동 대학원 졸업, 경희대학교 일반대학원 일어일문 박사 수료 서일대학교,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경희사이버대학교 등에서 일본어 강의 현) 경희대학교 일본어학과 강사
한상찬韓相贊 중동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농생물학과 및 서울대학교 대학원 농생물학과 농학사 및 농학석사, 북해도대학 농학부 농학박사, 농촌진흥청 농업기술연구소 연구사 및 연구관, 안동대 학교 자연과학대학 교수, 한국응용곤충학회 부회장, 한국 토양동물학회 회장
김장규金章圭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필리핀대학교 대학원(식물병리학석사), 일본동경농업대학 대학원(농학박 사), 농촌진흥청 농업과학기술원 식물병리과, 농촌진흥청 농업과학기술원 해외병해충과장, 옥조근정훈장, 녹조근정훈장 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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