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는 굴이 많고, 그 굴들은 신당으로서 제의처가 되는 경우가 많다. 한 예로, 지금도 중문리 본향당은 100여 명이 들어서도 넉넉할 “다람쥐궤”라고 하는 큰 굴이다. 고구려 동맹제의의 “나라 동쪽 큰 굴의 신을 맞아서 10월에 국중대회한다[其國東有大穴名隧穴 十月國中大會迎隧神]”는 기록을 연상시킨다. 이 궤내귀당의 큰 굴은 해안에서 직선거리로 1㎞ 정도의 거리에, 입구가 남향을 하고 있다. 굴의 높이도 사람이 서서 걷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이 굴은 선사시대에 주거지였을 가능성이 많다고 해서,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의 주관으로 1990년대에 발굴조사를 하였다. 발굴 결과는 표토층, 그 아래 중간층과 최하층으로 3분되나, 빗물의 유입 등으로 혼란상태였다. 최하층에서는 장기 거주에 필요한 저장용 토기 항아리 파편이 대량 발굴되었고, 숫돌과 전복 껍질로 만든 화살촉의 미완성품도 출토되어서 생활의 단면들을 보여주었다. 그 시기는 기원 전후에서 기원 500년 중의 어느 일정 기간으로 여겨졌다. 중간층의 중세 이후에는 제사 유적으로서, 동물의 머리 부분 뼈가 91%의 절대 다수로 돗제豚祭의 전승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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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사-장주근 선생의 저작집을 내면서 일러두기
제주도 무속과 서사무가
헌사獻辭 머리말
제1부❙제주도 무속 개관 제1장 제주도의 심방[巫] 제2장 제주도의 당 제3장 제주도의 본풀이
제2부❙서사무가 자료 제1장 일반신본풀이 제2장 당신본풀이
한국신화의 민속학적연구
머리말
I . 단군신화의 민속학적 연구 II. 고주몽신화의 민속학적 연구 III. 김알지신화와 영남지방의 민간신앙 IV. 제주도 당신신화의 구조와 의미 V. 구전신화의 문헌신화화 과정 VI. 삼성신화의 형성과 문헌 정착과정 VII. 처용설화의 고찰 VIII. 제주도 무속신화: 본풀이전승의 현장연구 IX. 화청의 문학사적 연구 X. 한국의 민속종교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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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근 張籌根 Chang, Chu Keun
1925년 평북 용천군 출생 1939년 만주 무순撫順보통학교 졸업. 1944년 무순중학교(5년) 졸업. 1944년부터 해방 전후 3년간 용천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1947년 3월에 월남, 상경. 1949년 서울대 사대부설중등교원양성소(2년) 국문과 졸업. 사대 국문과 2년에 편입하여 1952년에 졸업. 1955년에 제주대학 전임강사로 부임. 이후 제주도무속연구에 주력하여 왔다. 1966년부터 문교부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의 상임문화재전문위원으로 민속박물관 설립·전시 작업을 담당하였고, 한편으로 한국민속종합조사사업(1968~2009)을 기획·추진하고, 이후 10여년 동 조사사업에 참여하였다. 또 한편으로 한국문화인류학회 창립회원(1958), 이사장(1974~76), 제주도 연구회 창립회원(1978), 1·2대 회장(1978~82)을 역임하였다. 1969년 일본 도쿄대학 문화인류학과 객원교수, 1974년 동 대학에서 사회학박사학위. 1975년 민속박물관 완성, 개관 후 교직으로 돌아와서 1990년 경기대학교 교수로 정년 퇴임. 1979년 캐나다 토론토대학 객원교수, 1983년 일본 국립민족학박물관 객원교수, 1985~95년 문화재위원회 4분과(민속, 무형문화재)위원, 동 박물관 분과위원 겸임. 1995년 은관문화훈장, 1992~2001년 국립민속박물관 자문위원.
저술로는 『한국의 신화』(1961), 『韓國の民間信仰 論考篇, 資料篇 2冊』(1973), 『한국민속학개설』(3인 공저, 1974), 『한국의 향토신앙』(1975), 『한국의 세시풍속』(1984), 『한국민속론고』(1986), 『한국신화의 민속학적 연구』(1995), 『풀어쓴 한국의 신화』(1998), 『제주도 무속과 서사무가』(2001) 등이 있고, 그 외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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