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당慕堂 홍이상洪履祥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서 널리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그가 어머니를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던 일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 귀한 자료로 세상에 소개된 바가 있다. 그리고 혜경궁 홍씨와 홍봉한 등 조선 후기 풍산 홍씨에 대해 관심을 가지려고 하면 우선적으로 알아야 하는 사람이 바로 홍이상이다. 그는 재세했던 시절보다 돌아간 뒤에 더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특히 조선 후기의 정치와 풍산 홍씨 문중을 이해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이다. 따라서 그는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와 그에 대한 연구 및 이해의 필요성 때문에 세상에 이미 널리 알려졌다. 이 책은 한국고전번역원의 『모당집』 영인이 나오기 전인 2005년에 기획이 되어 번역에 착수하였다. 처음에는 대제각본을 저본으로 하여 번역을 시작하였으나, 이런 저런 일로 번역이 지연되었고, 또한 대제각본만 달랑 번역하여 놓기에는 홍이상이 남긴 자료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이 많아 이것을 주워 모으느라 또 시간이 늦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작년 가을 번역 초고를 겨우 완성하여 놓고 보니, 연세대 소장본이 문집총간속집의 하나로 영인이 되었고 여기에는 대제각본에 없는 많은 자료가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에 이것을 포함하여 『모당집』 완정본을 만들고자 또 시간을 지체하여 이제야 겨우 이 책을 세상에 내어 놓게 되었다. 이 책은 홍이상이 지은 글 전부와 홍이상과 관련된 자료들을 모두 망라하려고 애를 썼다. 그래서 두 종 문집 이외의 여러 문인들의 문집과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자료들에 실려 있는 것을 모두 모아 놓았다. 이것을 편집하다 보니 『모당집』 상·하 두 책으로 만들었고, 상책에는 홍이상의 시와 문, 그리고 유작습유遺作拾遺를 실었다. 그리고 하책에는 홍이상에 관한 생애자료 및 홍이상에 관련된 자료를 모아 부록으로 엮었다. 여기에 수록된 글에는 모두 원문을 새로 입력하여 넣었고, 혹시 원문을 확인하고자 하는 요구에 부응하고자 원문을 뒤에 붙이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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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당집』 번역을 마치며 고양팔현 모당 선생 시문집을 발행하면서 범례
생애자료 연보年譜 행장行狀 신도비명神道碑銘 묘지명墓誌銘 묘표의 음기墓表陰記 언행록言行錄 행록行錄
기타 생애자료 만장輓章 제문祭文 교서敎書 『조선왕조실록』 발췌문朝鮮王朝實錄 拔萃文 문집 및 문헌 발췌문文集文獻拔萃文 상량문上樑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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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당慕堂 홍이상洪履祥[1549~1615] 조선시대 중기의 문신으로 명종 4년[1549]에 출생하였고 처음 이름은 인상麟祥이며 자는 원례元禮, 또는 군서君瑞로, 호號는 모당慕堂이고 행촌杏村 민순閔純의 문인門人이다. 본관은 안동 풍산이고, 시조가 홍지경으로 고려조 고종 29년[1242]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벼슬이 국학직학國學直學이다. 이때부터 대대로 문맥이 이어졌으며, 구세조九世祖 증贈 좌찬성左贊成 수脩의 아들이다. 고양팔현高陽八賢의 한 사람으로 선조 6년[1573] 정시에 장원으로 급제하고 선조 12년[1579] 전시에도 장원급제하였다. 정언正言, 수찬修撰, 이조좌랑吏曹佐郞을 역임하고, 독서당讀書堂에서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였으며, 교리校理, 집의執義, 응교應敎, 사간司諫, 사인舍人, 직제학直提學에서 동부승지同副承旨가 되었고, 독서당에서 사가독서하는 것을 겸하고, 특별히 이조참의吏曹叅議가 되었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예조참의로서 임금을 호종扈從 하였음으로 병조참의가 되었다. 선조 27년[1594] 성절사聖節使로 명明나라에 다녀온 뒤 선조 28년[1595]까지 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로서 왜구倭寇와 싸웠으며 선조 29년[1596]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선조 30년[1597] 경기도관찰사京畿道觀察使로 임무를 마치고 전란戰亂 후 부제학副提學, 대사간大司諫이 되었다가 특별히 가선대부嘉善大夫가 되었고 대사성大司成, 대사헌大司憲을 거쳐 앞 뒤로 지낸 벼슬이 세 번 혹은 네 번이었다. 광해군光海君 즉위년[1609]에 시사時事가 그릇됨을 보고 힘써 외직外職을 구하여, 개성유수開城留守가 되었다. 광해군 6년[1614] 임기任期를 마치고 송도松都에서 곧바로 선영先塋과 옛집이 있는 한성漢城 서쪽의 백암포白巖浦(지금의 고양시 대화 2리)로 돌아와 물가에 조그만 정자亭子를 지어 『낙양樂洋』이라고 편액遍額을 달았다. 광해군 7년[1615] 4월부터 신환身患이 깊어져서 동년 9월 19일에 춘추 67세로 서거逝去하였다. 후後에 영의정領議政에 추증追贈되었고, 시호諡號가 문경文敬이고 문집文集으로 『모당유고慕堂遺稿』가 있다. 고양시高陽市의 문봉서원文峰書院에 배향配享되었으며 충주시忠州市 금가면金加面 하담리河潭里에는 정조 10년[1786]에 창건한 모당선생 만을 배향配享하는 하강서원荷江書院이 있다. 고양시 성석동城石洞 고봉산高峯山 기슭 정강正岡에 이준李埈이 찬撰한 묘비墓碑와 인조 9년[1631]에 이정구가 찬撰한 신도비 등이 있고 모당선생과 증贈 정경부인貞敬夫人 안동김씨安東金氏와 합폄合窆으로 된 묘역墓域이 있다.
역주譯註 윤호진尹浩鎭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한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문학박사. 경상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역저서로는 『한시와 사계의 화목』, 『대동운부군옥』(역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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