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문화사에서 유리창의 의미는 단순하지가 않다. 유리창은 18세기 이후 조선 지식인들이 중국의 학술 문화계 동향을 파악하는 전초기지였고, 중국인들과 문화 교류를 나누는 현장이었다 이곳을 통해 중국의 최신간 서적들이 조선으로 유입되었으며 골동기완骨董器玩 및 각종 사치성 소비재들이 조선으로 흘러들어왔다. 유리창은 조선 지식인들에게 중화 문명의 상징이자 사고전서 편찬의 중심부이며, 최신 학술 정보의 진원지였다. 각종 소비문화의 산실이며, 선진 문물에 대한 안목을 틔워주는 선생의 구실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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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서설-18,9세기 북경 유리창과 조선 지식인-∥정민
제1부 유리창의 공간 의미 북경 유리창과 조선의 문화 변화∥이홍식 홍대용의 눈에 비친 북경 유리창∥박성순 북경 유리창 그림과 한국 고문헌∥박현규
제2부 유리창의 서점가 연행 기록을 통해본 18~19세기 북경 유리창 서점가∥정민 조선 연행사신과 18세기 북경 유리창∥왕쩐중 조선의 중국 서적 유입 양상과 그 의미∥박수밀 -서반序班과 유리창의 존재를 중심으로
제3부 유리창의 교류활동과 공연문화 북경 유리창과 지식인 교류의 세 층위∥박수밀 박제가 삶의 마음속 출로出路, 연경燕京의 우정∥이승수 북경 유리창과 공연 문화∥이홍식 시로 형상화된 청대 북경의 마술 공연∥임준철 -김진수의 「환희연」 이십팔수
미주 그림 및 사진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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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순 동국대학교 강사. 『산해관 잠긴 문을 한 손으로 밀치도다』(돌베개, 2001), 『연행의 사회사』(경기문화재단, 2005) 외 다수
박수밀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연구교수. 『18세기 지식인의 생각과 글쓰기 전략』(태학사, 2007), 『박지원의 미의식과 문예이론』(태학사, 2005) 외 다수
박현규 순천향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19세기 중국에서 본 한국자료』(아세아문화사, 1999), 『중국 명말 청조 조선시선집 연구』(태학사, 1998) 외 다수
왕쩐중王振忠 중국 복단대학교 역사지리연구소 연구원. 『鄕土中國·徽州』(生活讀書新知三聯書店, 2000), 『近600年來自然災害與福州社會』(福建人民出版社, 1996) 외 다수
이승수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부교수. 『문학이 태어나는 자리』(산처럼, 2009), 『거문고줄 꽂아놓고』(돌베개, 2006), 『조선의 지식인들과 함께 문명의 연행길을 가다』(푸른역사, 2005) 외 다수
이홍식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연구교수. 『한시로 읽는 경기』(경기문화재단, 2011), 『홍길주의 꿈, 상상, 그리고 문학』(태학사, 2009) 외 다수
임준철 조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조교수. 『조선중기 漢詩 意象 연구』(일지사, 2010), 『趙榮福의 燕行日錄』(경기도박물관, 1998) 외 다수
정민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18세기 조선지식인의 발견』(휴머니스트, 2009), 『새로 쓰는 조선의 차 문화』(김영사, 2011), 『다산선생 지식경영법』(김영사, 2006), 『다산의 재발견』(휴머니스트, 2011) 외 다수
(가나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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