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는 당시의 예치론자들이 예가 지배하는 사회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부단한 실험의 역사였다. 그리고 그 거대 담론은 수백 년간을 지배해왔다. 그 과정에서 왕을 정점으로 하는 지배층들은 교화와 전통 계승이라는 미명하에 예를 해석하고 정리했다. 그러나 예의 이성과 견고함은 도전과 창조의 정신을 억압하고 새로운 사회질서의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 실험은 결국 실패하고, 그 패권은 법치주의자들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변화하는 사회의 안정과 질서를 위해 다양한 시도가 계속되는 오늘날, 과거의 예의 정신과 철학은 완전히 쇠락한 것인가? 수천 년간 계속되어 온 윤리와 정치 철학논쟁은 근현대의 수준을 초월하는 지극히 고상한 유산이다. 예의 정신 또한 조직과 사회의 일탈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친연성과 아름다움이 있다. 이를 보여주고자 필자는 소위 국가문화의 다양한 편린들을 이야기로 엮는 작업이나마 꾸준히 해 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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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면서
I. 예치의 정치 ․ 사회적 이해의 방향과 성격
조선초기 禮治社會를 향한 수도 한성의 건설계획 1. 머리말 2. 도성건설계획의 예제적 성격 3. 한성의 궁궐구조에 반영된 예제禮制 4. 맺음말
朱子家禮를 통해 본 朝鮮의 禮治 1. 머리말 2. 종자宗子․종부宗婦의 지위와 권한 3. 가족관계의 수직적 질서와 예치 4. 예치의 법치화法治化와 현재성 5. 맺음말
II. 예제질서 속에서의 왕명과 신분개념
敎書의 작성 및 성격 1. 머리말 2. 왕명王命의 종류와 양식 및 변천 3. 교서의 내용과 성격 4. 교서의 작성과 반봉의식頒奉儀式 5. 맺음말
조선초기 良人階層의 신분개념 시론 -庶人을 중심으로- 1. 머리말 2. 선초 유교의례儒敎儀禮의 인식과 신분질서 3. 양인계층良人階層의 호칭呼稱 4. 서인庶人의 신분개념 5. 서인의 신분적 지위 6. 맺음말
III. 국왕의 묘호와 예제
廟號의 禮制原理와 朝鮮의 受容 1. 머리말 2. 묘호의 예제원리로서의 조祖․종宗과 왕호王號 3. 왕호王號의 연원과 변천과정 4. 묘호와 시법諡法 5. 조선朝鮮의 묘호 예제원리의 수용 6. 맺음말
조선시대 종법제하의 祖 ․ 宗과 廟號 論議 1. 머리말 2. 묘호와 왕의 정통성 3. 묘호의 결정과정 및 시자諡字와 종호宗號 논쟁 4. 조종祖宗의 개상改上과 정치적 이해 5. 맺음말
조선시대의 廟號와 事大意識 1. 머리말 2. 조선 이전(삼국․고려)의 묘호와 사대의식 3. 조선 전기의 묘호추상과 예제적禮制的 사대의식事大意識 4. 임란 당시 묘호참칭廟號僭稱에 의한 외교분쟁과 그 영향 5. 맺음말
高․純宗의 號稱에 관한 異論과 왕권의 정통성 -廟號 ․ 尊號 ․ 諡號를 중심으로- 1. 머리말 2. 고종의 왕권과 추숭의례 3. 고․순종실록 편찬 당시의 호칭 시비와 그 이론異論 4. 한일합병 이후 대한제국황실의 지위 변화와 왕권의 정통성 5. 맺음말
참고문헌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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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민혁 任敏赫
문학박사. 한성대 졸업. 한국학대학원 석사, 박사과정 졸업.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 저서로는 『조선시대 음관 연구』(한성대출판부, 2002), 『왕의 이름, 묘호』(문학동네, 2010), 『영조어제 해제 2』(한국학중앙연구원, 2011), 『조선의 왕으로 살아가기』(공저, 돌베개, 2011), 『조선 왕실의 가례 1』(공저, 한국학중앙연구원, 2008), 『조선 왕실의 가례 2』(공저, 2010), 『대한제국』(공저, 국립고궁박물관, 2010), 『정부혁신과제 발굴을 위한 옛제도 연구』(공저, 한국학술정보, 2007) 등 다수가 있으며, 역주서로는 『주자가례』(예문서원, 1999), 『추봉책봉의궤』(서울역사박물관, 2007) 등이 있고, 그 외 많은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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