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재 홍여하가 춘추필법에 입각하여『고려사』를 다시 가려 뽑아 정리한 역사서『휘찬여사』의 완역본. 17세기 조선시대의 글로벌리즘이라고 할 수 있는 존화주의에 입각한 고려시대 역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평이한 번역. 국사편찬위원회의 연구자들이 공동 번역.
휘찬여사 [ 彙纂麗史 ]
조선 후기의 학자 홍여하(洪汝河)가 지은 고려(高麗)의 사서(史書)이다. 『목재가숙 휘찬여사(木齋家塾 彙纂麗史)』(전47권)라고도 한다.
내용 권1∼6은 세가(世家)로서, 고려 태조에서 공양왕까지 32명의 역대 왕들의 행적을 적고 있다. 우왕과 창왕에 관한 것을 세가에서 제외하고 있는 것은 『고려사』와 같다. 하지만 이 내용을 『고려사』에서는 반역전(叛逆傳)에 수록하고 있는 데 반해, 이 책에서는 신서인전(辛庶人傳)을 따로 설정·수록하고 있다.
권7∼19는 지(志)로, 천문지(天文志)·오행지(五行志)·지리지(地理志)·예지(禮志)·악지(樂志)·여복지(輿服志)·선거지(選擧志)·백관지(百官志)·식화지(食貨志)·병지(兵志)·형법지(刑法志) 등 11개 분야로 되어 있다.
권20∼46은 열전(列傳)으로, 왕후(王后)·제원비전(諸院妃傳)·종실전(宗室傳)·신서인전·명신전(名臣傳)·의열전(義烈傳)·유학전(儒學傳)·탁행전(卓行傳)·행인전(行人傳)·양리전(良吏傳)·문원전(文苑傳)·방기전(方技傳)·환자전(宦者傳)·혹리전(酷吏傳)·폐행전(嬖幸傳)·간신전(姦臣傳)·반역전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지막 권47은 외이부록(外夷附錄)으로, 거란전(契丹傳)·여진전(女眞傳)·일본전(日本傳)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구성을 통해 이 책은 기전체(紀傳體)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자기의 안목으로 『고려사』를 간략하게 줄여서 이 책을 편찬하였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당시 대부분의 학자들은 『고려사』를 비판했는데, 그 주된 이유는 양이 너무 많아 곧 싫증을 느끼며, 또한 체계적인 내용파악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유계(兪棨)도 『여사제강(麗史提綱)』 범례에서 이 점을 크게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이 『고려사』를 그대로 줄여놓은 것은 아니었다. 『고려사』를 대본으로 하되 부분적으로 그 내용을 재구성하고자 하였다. 열전편찬에서 신서인전을 비롯해, 의열전·유학전·탁행전·행인전·문원전 등을 따로 설정하고 있는 예가 그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고려사』에서는 외국열전을 두지 않은 데 비해, 이 책에서는 외이부록을 두고 있는 점이 특히 주목된다. 저자가 이 책의 범례에서 역대의 사서에는 모두 외이부록이 있으므로 그것에 의거해 거란전·일본전 등을 지었다고 하였다.
하지만 이 책 이전에 나온 우리나라의 역대 사서에는 외이부록이 수록된 적이 없었다. 따라서 저자가 말한 역대 사서는 중국의 사서를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 저자가 고려사를 휘찬하면서, 세계의 중심임을 자처하던 중국의 역사 서술방법을 적용해 외이부록을 따로 구성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의의와 평가 저자는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로 철저한 유교사관에 입각해 이 책을 쓰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역사의 주체성을 의식하고 이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한편 이 책에서는 새로운 사료적 가치를 찾을 수 없다. 단, 과거 우리나라 학자들이 각 시대의 역사를 어떻게 이해하고 인식했는지를 살피는 데 좋은 참고 자료가 된다.
특히 이 책 이후 조선 후기의 학자들이 강목체(綱目體)로 역사를 서술하기 시작했으며, 이것이 안정복(安鼎福)의 『동사강목』으로 대성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책은 기전체에 의거해 역사를 서술하고 있어 조선 후기의 역사 서술 경향을 이해하는 데도 참고가 된다.
홍여하(洪汝河)
1621(광해군 13)∼1678(숙종 4).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부계(缶溪). 자는 백원(百源), 호는 목재(木齋)·산택재(山澤齋). 경삼(景參)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덕록(德祿)이고, 아버지는 대사간 호(鎬)이며, 어머니는 고종후(高從厚)의 딸이다.
1654년(효종 5) 진사로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예문관에 들어가 검열이 되고 이어 대교·봉교 등을 역임하고, 정언에 이르러 효종에게 시사(時事)를 논하는 소를 올려 왕의 가납을 받았으나 반대파의 배척을 받아 고산찰방으로 좌천되었다가 1년 만에 사퇴하였다.
1658년 다시 나아가 경성판관이 되었으며, 왕의 하문에 의하여 소를 올렸으나 그 소문에 이후원(李厚源)을 논박한 구절로 말미암아 이조판서 송시열(宋時烈)이 사직하는 등의 문제를 일으켜 황간(黃澗)에 유배되었다.
이듬해에 풀려났으나 벼슬을 단념하고 고향에 돌아가 오직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1674년(숙종 즉위년) 제2차 복상문제(服喪問題)로 송시열이 추방되는 등 서인이 실각하고 남인이 정권을 잡자 다시 등용되어 병조좌랑이 되었으며, 이어 사간에 이르렀다.
특히, 주자학에 밝아 당시 사림의 종사(宗師)로 일컬어졌다. 1689년 부제학에 추증되고, 상주의 근암서원(近巖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목재집』이 있고, 편서로는 『주역구결(周易口訣)』·『의례고증(儀禮考證)』·『사서발범구결(四書發凡口訣)』·『휘찬여사(彙纂麗史)』·『동사제강(東史提綱)』·『해동성원(海東姓苑)』·『경서해의(經書解義)』 등이 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2010,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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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역휘찬여사 1 세가 휘찬여사 서 휘찬여사 범례
【권 1】세가 1 태조 혜종 정종 광종 경종 【권 2】세가 2 성종 목종 현종 덕종 정종 문종 순종 선종 헌종 숙종 【권 3】세가 3 예종 인종 의종 【권 4】세가 4 명종 신종 희종 강종 고종 원종 【권 5】세가 5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 충혜왕 충목왕 충정왕 【권 6】세가 6 공민왕 공양왕 【권21】신서인전 우 창
국역휘찬여사 2 지1 【권 7】천문지 【권 8】오행지 【권 9】지리지 1 【권10】지리지 2 【권11】예지 【권12】악지 【권13】여복지
국역휘찬여사 3 지2 【권14】선거지 【권15】백관지 【권16】식화지 【권17】병지 【권18】형법지 1 【권19】형법지 2
국역휘찬여사 4 열전1 【권20】왕후 제원비전 종실 【권22】명신 1 【권23】명신 2 【권24】명신 3 【권25】명신 4 【권26】명신 5 【권27】명신 6 【권28】명신 7 【권29】명신 8
국역휘찬여사 5 열전2 【권30】명신 9 【권31】명신 10 【권32】명신 11 【권33】명신 12 【권34】명신 13 【권35】명신 14 【권36】명신 15 【권37】명신 16 【권38】의열전 유학전 탁행전 행인전 양리전
국역휘찬여사 6 열전3 【권39】문원전 【권40】방기전 환자전 혹리전 폐행전 1 【권41】폐행전 2 【권42】간신전 【권43】반역 1 【권44】반역 2 【권45】반역 3 【권46】반역 4 【권47】외이 부록 거란전 【권48】외이 부록 일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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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목재木齋 홍여하洪汝河
번역 김현영 | 서울대학교 문학박사, 조선시대사 전공 박한남 | 성균관대학교 문학박사, 고려시대사 전공 이재희 | 서울대학교 문학석사, 조선시대사 전공 류주희 | 중앙대학교 문학박사, 고려시대사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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