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주의는 시간이 흐르면서 신식민지주의neo-colonialism로 발전되었고, 탈식민화de-colonization는 이전 식민지의 제도적이고 문화적인 폭력의 숨겨진 부분을 해체하는 과정이다.
일본의 조선 지배를 뒷받침하는 데 인류학이 그 선봉에 있었다. 동경제국대학 이학부의 인류학교실은 일제의 식민지경영에 발맞추어 일본의 정치권력의 보호 하에 조사를 수행하여 그 성과들을 내놓았다. 대한제국이 일제의‘외지(外地)’가 된 상황 하에서 일본 군부(주로 육군)세력과 일본 정당세력들 사이에 식민지에 대한 주도권을 위한 정치적인 계산이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군부세력이 헤게모니를 쟁취한 이후에는 통치방식을 둘러싸고는 격론이 벌어졌는데 그 결론은 무엇이었는가 하는 것이 첫 번째 관심이었다. 그 이유는 조선총독부가 1920년 이후 조선의 민속조사에 많은 인력과 예산을 기울인 까닭은 무엇이며 그 조사방침과 방법은 무엇이었는가. 그 민속조사는 식민지 통치 기조의 변화에 따라서 어떻게 달라졌으며 그 과정에서 생산된‘조선인론’은 무엇인가. 그것이 식민지통치와 실제적으로 어떠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었는가를 고찰하기 위해 검토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였다. 일제의 근대사에서 일본민족과 그 주변 민족의 발견, 그리고 그들 민족 간의 관계들을 고찰할 때 근대 학문의 미분화 상황 하에서 오늘날과 같이 고고학, 민속학, 인류학 등 관련 학과들이 세분화되어 있지 않았다. 일본에서 1894년에 동경인류학회가 발족되었고 그 다음 해에는 고고학회가 발족되었지만 엄격한 의미에서 양자가 구분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크게 보아 동아시아에서 일본의 패권이 점차로 확대되어 가는 과정에서 민족, 인종에 대한 조사와 연구는 현실적으로 큰 명분을 가지고 있었다. 학문의 구분보다는 그러한 큰 명분을 전제로 학제 간 조사와 연구 활동이 방향이었다. 일본은 1895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대만을 차지하게 되었고 1910년에는 대한제국을 통치하게 되어 대만과 조선은 일본의 외지(外地)로 자리 매김이 되었다. 일본의 근대 학문들은 이와 같은 정치적 변화 상황에 종사하게 되었는데 민속학적 조사와 함께 일본 동경제국대학, 경도제국대학 등 출신의 인류학 및 고고학 전공자들이 요동반도, 만주, 몽골뿐만 아니라 대만과 조선에서도 인류·고고학적 조사를 수행하게 되었다. 식민지 지배 상황 속에서 이른바‘동아시아 인류학과 고고학’이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그들 외지 가운데 조선에서 전개된 조선총독부의 고적발굴조사의 목표가 무엇이었으며 당시 고적발굴조사를 수행한 사람들의 의식과 조사방법은 무엇이었는가. 고적 발굴 성과에 대한 해석을 둘러싸고 그들 간에 이견 또는 갈등은 무엇이었는가. 또 고적발굴조사 사업이 식민지박물관으로서 조선총독부박물관과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는가. 이 질문들은 오늘날 특히나 일제 식민지 시기의 고고학사 연구가 충분하지 않은 이유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 것이고 한국 고고학계에서 연구의 출발점을 어디에 설정해야 할 것인가, 또 현재 한국 국립중앙박물관과 지방의 국립박물관을 조선총독부박물관과 지방분관의 계승 또는‘재편’이라고 해석하든 한국박물관의 현재 과제에 대한 전반적인 수정의 필요성은 없는가 라는 현실적인 문제해결과 관련이 있다. 그 수정작업은 식민지문화의 해부이며 식민지 상황에서 벗어나 ‘새로 우리의 손으로 쓰는 역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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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는 말
제1편 일본의 대만과 조선에 대한 통치방식
1장 일제의 ‘외지外地’에 대한 통치방식 : 대만과 조선 1. ‘외지’라는 용어는 언제부터 어떻게 사용되었는가 2. 일본 군부에 의한 ‘외지’통치 3. 일본의 대만 통치방식을 둘러싼 ‘육삼六三문제’ 4. 조선총독의 성격 5. 맺는 말
2장 식민정책학자들의 ‘식민지경영론’과 일제의 동화同化정책에 대한 비판 1. 식민지정책학의 기원 2. 식민정책학자들의 ‘식민지경영론’ 3. 맺는 말
제2편 조선총독부의 조선 문화 조사활동
3장 동경제국대학 ‘인류학교실’과 조선 문화조사 1. 시작하는 말 2. 동경제국대학 인류학교실의 창립 3. 인류학교실의 인적 구성과 운영 4. 맺는 말
4장 조선총독부에 의한 조선 ‘구관舊慣’ 조사 1. 통감부 시기의 구관조사 2. 조선총독부에 의한 구관조사
5장 곤와지로今和次郎의 조선민가 조사 1. 시작하는 말 2. 곤와지로의 학문적 배경과 조선 민가조사의 계기 3. 곤와지로의 조선민가에 대한 시선 4. 곤와지로의 조선민가 조사방법 5. 곤와지로의 조선민가에 대한 인식 6. 맺는말
6장 1920년대~30년대 조선총독부 촉탁들에 의한 조사 1. 무라야마 지쥰村山智順의 조선 민간신앙 조사 2. 무라야마 지쥰의 조선 무격巫覡 조사 3. 젠쇼 에이스케善生永助의 조선문화 조사
7장 1930년대 아키바 다카시秋葉隆의 조선 무속 조사 1. 시작하는 말 2. 『조선무속의 현지연구』 읽기 3. 『조선민속지朝鮮民俗誌』 4. 연구사적 의의
8장 1910년대 일제의 조선인 신체측정과 1930년대의 혈액조사 1. 시작하는 말 2. 조선인 체격 및 혈액 측정을 통한 ‘조선인체론’ 3. 맺는 말
9장 일제의 조선고적조사 및 발굴 사업 : 1910년대~1940년대 1. 시작하는 말 2. 일본 고고학의 출현과 성격 3. 조선총독부와 고적조사의 전개 4. 맺는 말
10장 ‘역사적 내러티브’의 국가적 창출 : “문록文祿의 역役”과 이순신의 ‘창출’ 1. 서론 : 관점(viewpoint)과 목적 2. “문록경장文祿慶長의 역役” 유적에 대한 식민지적 재해석과 이순신 3. 1910년 이후 “문록경장文祿慶長의 역役” 유적에 대한 재해석과 현창사업, 그리고 이순신 유적 보존운동 4. 맺는 말
제3편 일본의 식민지정책 : 식민지포교․내선결혼
11장 ‘교파신도敎派神道’의 창출과 식민지포교 1. 창출과정 2. 교파신도의 조선포교 3. 맺는 말
12장 ‘내선결혼內鮮結婚’ 장려책의 후유증, ‘일본인처’ 1. 시작하는 말 : 문제의식 2. 기존연구의 검토 및 문제설정 3. 조선에 ‘국적법’을 적용시키지 않은 이유 4. 내선결혼의 장려 5. 내선결혼을 둘러싼 현실적인 문제 6. 맺는 말
제4편 일제의 지배담론 생산과 그것을 둘러싼 갈등
13장 일본신화의 ‘본향本鄕’에 관한 담론 : 소시모리曾尸茂梨 = 우두牛頭 1. 시작하는 말 2. 논쟁의 텍스트:『일본서기日本書紀』의 소시모리曾尸茂梨 3. 논쟁의 전개:경주설 → 가야설 → 춘천설 4. 맺는 말
14장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을 둘러싼 갈등 1. 시작하는 말 2. 일제의 조선 강점 전후 ‘일선동조론’의 역사적 전개 3. ‘일선동조론’을 둘러싼 갈등 4. 맺는 말
이 책을 맺으면서
참고문헌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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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영崔錫榮, CHOE Seok-yeong, csy116@korea.kr
충남 청양 출생으로 공주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 1981년 )와 공주사범대학 역사교육과( 1985년 )를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대학원 석사 수료 후 일본 중부대학 대학원( 석사, 1993년 )을 거쳐 일본 히로시마대학 대학원(사회과학연구과)에서 학술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1999년~2006년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연구 조교수( 2009년~2010년 5월 )를 거쳐 2010년 6월부터 국립극장 공연예술박물관장(학예연구관)으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일제의 동화이데올로기의 창출』, 『일제 하 무속론과 식민지권력』, 『문화관광과 박물관』, 『한국박물관역사 100년 : 진단과 대안』이 있고 역서에는『전통의 날조와 창조』, 『인류학자와 일본의 식민지통치』,『인류학의 과거·현재·미래』, 『일본근대 국립박물관 탄생의 드라마』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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