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천위제례
영남지역을 중심으로
2012년 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저자
김길령
판형|쪽
신국판 양장 | 264쪽
발행일
2011년 8월 20일
ISBN
978-89-285-0150-2
가격
22,000원
불천위제례라는 것은 국가에 큰 공을 세웠거나 덕이 높은 신위를 영구히 사당에 모실 것을 나라에서 허락한 조상의 기제사를 일컫는다. 본래 4대조 이상이 되는 조상은 묘제의 대상이 되는데 반해 불천위에 해당하는 조상과 그 배우자에 대해서는 영구히 매년 기일에 제사를 지내게 된다. 불천위제례의 대상은 유교사에 있어 성인의 반열에 선 현자나 영웅들이다.
이 책은 불천위제의 개념과 내용을 담고 있는 영남지역 문헌 가운데 류장원의 『상변통고』[1783], 허전의 『사의』[1870], 송준필의 『육례수략』[1918]을 통하여 불천위제례의 특징을 규명하고, 현재까지 불천위제례가 이어지고 있는 영남지역 종가인 고령 일선 김씨 문충공(文忠公) 김종직(金宗直:1431~1492)종가, 경주 월성 손씨 양민공(蘘敏公) 손소(孫昭:1433~1484)종가, 함양 하동 정씨 문헌공(文獻公) 정여창(鄭汝昌:1450~1504)종가, 현풍 서흥 김씨 문경공(文敬公) 김굉필(金宏弼:1454~1504)종가, 안동 영천 이씨 효절공(孝節公) 이현보(李賢輔:1467~1555)종가, 경주 여강 이씨 문원공(文元公) 이언적(李彦迪:1491~1553)종가, 안동 진성 이씨 문순공(文純公) 이황(李滉:1501~1570)종가, 성주 청주 정씨 문목공(文穆公) 정구(鄭逑:1543~1620)종가인 8종가를 대상으로 불천위제례(不遷位祭禮)의 행례절차를 살펴보았다.
불천위제의 시대적 가치는 충성과 효경의 실증적 귀감이 되며 수백 년간 제례문화의 상징성으로 그 지역의 민속을 유지하고 있는 점에 있다. 오늘날에도 불천위제례는 자기 존재의 의미를 깨닫고 뿌리의식을 고취시켜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는 매개체의 역할을 한다.
이 책에서 필자는 현대사회에 적합한 제례문화를 재정립하여 새로운 변화가 모색되기를 뜻하게 되었다. 현대생활에 적합한 합리적이고 간소한 제례의식을 새롭게 조명하여 일반인들이 제례의 상식을 갖고 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알기 쉬운 제례의 내용을 담고자 하였다.
머리말
제1장 서론
1. 연구목적
2. 연구방법 및 범위
제2장 영남사림의 예학사상과 불천위제례
1. 영남사림의 성립과 전개
2. 영남사림의 예학과 제례
3. 영남지역의 불천위제례
제3장 영남지역 불천위제례의 문헌과 내용
1. 영남지역 불천위제례 문헌의 저자 및 성립구조
2. 영남지역 불천위제례의 내용과 구성
3. 문헌에 나타난 불천위제례의 특징
제4장 영남지역 종가 불천위제례의 실제
1. 영남지역 종가의 가력
2. 영남지역 종가 불천위제례의 행례
3. 영남지역 종가 불천위제례의 특징
제5장 영남지역 불천위제례의 문화사적 의의
1. 불천위제례의 사상적 특징
2. 불천위제례의 생활문화적 의의
제6장 결론
부록: 영남지역 종가의 불천위제례 사례조사표
참고문헌
김길령
문학박사
대구세계차문화축제 위원회 사무총장
㈔ 국제차문화교류협력재단 대구·경북·울산 차인연합회 사무총장
국제차문화학회 상임이사
원광대학교 동양학대학원 예문화와 다도학과 외래교수
원광디지털대학교 차문화경영학과 외래교수
한국차문화포럼 정책위원
<주요논저>
「조선시대 반가의 정조차례에 관한 연구」[2004], 「정조차례고찰」[2005],「 경북지역 종가의 배례에 관한 사례연구」[2005],「 경북지역 정조차례 제수연구」[2006],「 성재 허전의『사의』를 통해본 제례연구」[2006],「 영남지역 불천위제례연구」[2009],「 동암 류장원의 상변 통고를 통해본 불천위제례연구」[2009], 「대구세계 차문화축제 발전 방안연구」[2011], 『청소년 예절교육』[새로운 사람들, 2006]
[대구·경북] "不遷位 祭禮의 모든 것 담았습니다"박원수 기자 wspark@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입력 : 2011.09.26 01:52
[이 사람] 김길령 대구세계차문화축제위원회 사무총장
박사 논문 보강해 책 출간, 영남 불천위 제례 조명… 8종가 방문 등으로 연구
한국의 일부 명문가에는 이른바 불천위(不遷位)라는 것이 있다.
나라에 큰 공을 세웠거나 도덕성, 학문적 성과가 아주 높은 분들에 한해 오대봉사가 지난 뒤에도 신주를 땅에 묻지 않고 사당에 영구히 모시면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 허락된 신위(神位)를 말한다. 또 불천위를 두고 지내는 제사를 불천위 제사라 한다. 왕이나 왕자, 부마는 물론 이름난 학자들이 불천위 대상들이다.
이런 불천위 제사, 또는 제례(祭禮)에 대한 연구가 거의 미흡한 마당에 불천위 제례를 연구해 책으로 낸 사람이 있다.
그 주인공은 김길령 대구세계차문화축제위원회 사무총장. 그는 최근 불천위 제례-영남지역을 중심으로(민속원)라는 책을 펴냈다.
김길령 사무총장은 지난 2009년 2월 원광대에서 이를 주제로 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바 있다. 이 책은 논문을 크게 보강한 것이다.
이 책에는 불천위 제례의 특징, 영남지역 불천위제례의 문헌과 내용, 영남지역 종가 불천위 제례의 실제, 문화사적 의의 등을 싣고 있다. 불천위 제례에 대한 종합적인 보고서인 셈이다.
김 사무총장이 여기에 관심을 보인 것은 불천위 제례에 대한 국내의 연구기록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2년간 영남지역에 산재한 여러 불천위 종가 중 8종가를 방문해 사례를 조사했지요."
그가 방문한 곳은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 종가를 비롯해서 한강(寒岡) 정구(鄭逑), 송재(松齋) 손소(孫昭),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선생 등 8종가. 사림에 은거한 선비집안이었다.
"권력을 휘두른 집안보다는 사화(士禍)로 인해 향리에 은거한 선비 집안의 불천위 제사가 더욱 품위가 있지 않았을까 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이 손쉽게 이루어질리는 만무했다. 제사는 보통 자정에 지내기 때문에 저녁에 방문해야 했다. 또 종가를 방문하더라도 제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은 기본 중 기본이었다.
▲ 불천위 제례에 관한 책을 펴낸 김길령 사무총장. /박원수 기자
집안마다 반응도 달랐다. 어떤 곳은 "이런 연구를 하니 얼마나 고생이 많으냐"며 반기거나 "눈이라도 붙여라"며 배려해 주었다. 심지어는 나중에 다시 찾아가자 의관을 제대로 갖추고 제사 시범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반면 어떤 곳은 "니 왔나" 하면서 별 관심을 두지 않기도 했다. 물론 이들 종가에서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은 "연구하러 온 사람들이 그때뿐이고, 끝난 뒤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더라"는 이유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 용감한 여성은 부지런히 찾아 넉살 좋게 연구에 매진했다. 한 종가를 평균 너댓 번은 방문했다. 이렇게 어렵사리 연구한 내용은 고스란히 귀중한 자료로 남았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우선 나라에서 불천위를 내린 국불천위(國不遷位), 유림에서 발의해 정한 향불천위(鄕不遷位), 문중에서 정한 사불천위(私不遷位) 등을 합해 국내에는 80위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초창기 연구 당시에만 해도 70위 정도였다. 그동안 불천위로 정한 곳이 늘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불천위 제사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일부 문중에서 불천위를 올리는 사례가 늘었지 않았나 추리해 봅니다."
이러한 영남지역의 불천위 현황은 책에 자료로 정리돼 실렸다. 그가 내린 결론은 "종가를 지키고 있는 종손(宗孫)과 종부(宗婦)의 삶은 일반인들과는 다르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봉제사(奉祭祀) 접빈객(接賓客)이라는 지난(至難)한 일을 조상들의 얼을 잇는다는 생각으로 기꺼이 받아들인 사람들입니다."
또 종가마다 음식이나 복장은 조금씩 달랐지만 전통을 계승하고 이를 후세에 남긴다는 정신은 한결같았다는 점이다.
김길령 사무총장은 "불천위 제례를 연구하면서 느낀 점이라면 제사를 엄숙하게 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이제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함께 즐기는 축제로 승화시키는 일이 중요한 일"이라고 말한다.
김길령 사무총장은 올해로 6번째를 맞은 대구세계차문화축제위원회 사무총장, 국제차문화교류협력재단 대구·경북·울산 차인연합회 사무총장, 국제차문화학회 상임이사 등으로 있으면서 차문화를 보급하는 일에 매달리고 있다. 또 원광대 동양학대학원 예문화와 다도학과의 생활예절, 전통의례 과목 등을 강의하면서 후진을 양성하고 있기도 하다.
기사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9/26/2011092600219.html
조선일보. 박원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