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천년 음악의 완성, 균화鈞和-2쇄
2011년 문광부 우수학술도서
저자
윤병천
판형|쪽
신국판 | 332쪽
발행일
2010년 7월 30일
ISBN
978-89-5638-850-2
가격
19,000원
오천년 역사 동안 우리 한국인은 한민족의 고유한 문화와 민족성을 이루어왔다. 그 중에서도 음악에는 한국인의 정서가 잘 담겨 있다. 우리 한민족은 유난히도 음악과 춤을 좋아해 예로부터 이러한 풍류는 우리 민족의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다.『삼국지三國志』권 30卷三十 「위서魏書」 삼십三十 동이전東夷傳 한조韓條에 의하면, “한인들은 언제나 오월의 모내기가 끝나면 귀신께 제사지내고, 밤낮없이 함께 모여 술 마시고, 노래하면서 춤을 추었다.” 陳壽, ꡔ三國志ꡕ 卷 三十 「魏書」三十 東夷傳 韓條, 常以五月下種訖, 祭鬼神, 群聚歌舞, 飮酒晝夜無休, 其舞, 數十人俱起相隨, 踏地低昻, 手足相應, 節奏有似鐸舞. 十月農功畢, 亦復如之.는 기록이 있다. 단군이 처음 우리나라를 열 때 음악으로 하였다고 전해지고, 太古적부터 연중행사로서 일정한 시기를 가리어 노래와 춤으로써 하늘을 섬기는 풍습도 있었다. 이렇듯 우리 민족은 삶의 모습을 풍류에 담아내어 즐길 줄 알았다. 따라서 음악을 통해서 한국인의 얼과 정신을 찾아내는 일은 어쩌면 너무도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음악을 40여 년 동안 전공해오고, 또한 유학 사상을 공부해오면서 이 두 분야가 서로 뗄 수 없는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밖으로 드러나는 소리는 그 이면의 사상과 철학이 없이는 이루어 질 수 없는 것이다.
한국 전통음악의 바탕에는 음악은 마음의 표현이고, 또한 우리 마음은 음악을 통해서 본래의 선한 본성을 자연스럽게 다스려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임금은 백성을 다스리는 순화의 수단으로, 하늘을 섬기는 도구로 음악을 최상으로 삼았다. 이것은 바로 바른 음악이 세상에 퍼지게 되면 백성의 마음도 자연 순수해지고, ‘너와 내가 하나 되는 하늘마음이 되어 이상세계가 된다.’는 사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머리에
제1장 서론
1. 문제제기와 연구목적
2. 연구방법과 범위
제2장 ‘균화’의 연원과 정의
1. 악명의 기원과 육대지악六大之樂
2. 송조의 음악정신
3. 고려조의 송악 수용
4. 조선조 음악의 대통합과 조화미
제3장 ‘균화’의 철학적 배경
1. 예악의 정교적政敎的 기능
2. 천인무간天人無間의 철학사상
3. 정음正音의 철학적 구조
제4장 ‘균화’의 형성과 이상세계
1. ‘균화鈞和’의 형성원리形成原理
2. ‘균화鈞和’ 제작자의 역할과 정신
3. ‘균화鈞和’가 지향하는 이상세계理想世界
제5장 ‘균화’의 내용과 철학적 성격
1. ‘균화鈞和’와 아악雅樂
2. ‘균화鈞和’와 향악鄕樂과 신악新樂
3. ‘균화鈞和’의 철학적哲學的 성격性格
제6장 ‘균화’의 선포와 역사적 의의
1. ‘균화鈞和’의 선포宣布
2. ‘균화鈞和’의 역사적 의의
제7장 결론
참고문헌
찾아보기
관산冠山윤병천尹炳千
- 중요무형문화재 제15호 북청사자놀음 예능보유자 윤영춘尹迎春의 3남
- 경기 남양 출생
- 국립국악중·고등학교 졸업
-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 및 동대학원 졸업
-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유학과(예악학 전공) 철학박사
1973.3~2010.2 국립국악원 단원, 수석, 악장, 지도위원
1973.3~ 2011. 개인독주회 6회, 협연 및 독주 다수, 국립국악원 CD제작
참여 다수, 개인 독주CD 및 가곡, 가사, 시조 반주 다수.
2010.7.30 『오천음악의 완성“균화鈞和”』, 민속원
2011.2.23 「윤병천의 대금정악 가곡歌曲」CD독주집
1973.3~ 2010 해외공연 30회, 연주 및 독주 700여 회년 프랑스 파
리 상제리제극장 18회 연주 및 유럽 4개월간 연주, 이란
시라즈연주, 멕시코시티연주, 아비뇽국제음악페스티벌
13회 연주, 이탈리아 밀라노 국제음악 페스티벌, 영국 런
던, 에덴버러페스티벌참가, 일본 전국 순회 및 센다이국
제극장 독주, 중국북경: 중산공원극장 독주, 러시아볼쇼
이극장: 한·러수교10주년연주, 핀란드: 피란디아홀 독
주, 2000년 대금역사축제 대금독주, 2003년 인도, 방글라
데시수교 30주년 연주, 2010 미국샌프란시스코, LA한인
문화원독주)
1990.3~2010. 2 영남대, 경북대, 수원대, 중앙대, 한양대강사(겸임교수)
1993.7.31 중요무형문화재 제20호 대금정악 이수
2004.3~2010.4 한양대금앙상블 회장
2010.3~ 현재 경북대학교 전임강사
[주말을 여는 책]조선시대 천상의 음악을 듣다
오천년 음악의 완성, 균화
윤병천 지음. 민속원. 1만9천원
모든 백성들의 음악 균화로 통하다
낯선 세계에는 독특한 유혹이 있다. 낯선 낱말, 낯선 제목도 그렇다. 세종실록의 한 구석에서 수백 년 동안 잠자던 균화(鈞和)라는 낱말의 낯설음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 용어가 책 제목으로 등장한 이유는 어쩌면 간단하다. 이 책의 근본이 박사학위 논문이기 때문이다.
품위 있지만 따뜻하게 단장된 표지, 정장 차림 같지만 배타적은 아닌 제목만 보고 책을 집어든 사람이라면 대뜸 문제제기와 연구목적 연구방법과 범위로 시작되는 차례를 보고 미련 없이 책을 내려놓을 것 같다. 더욱이 나처럼 국악에 대한 문외한이라면 그게 당연하리라.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책 표지에 깨알 같이 작게 써 놓은 소개 글 때문이었다. "한국 전통음악의 바탕에는 음악은 마음의 표현이고, 또한 우리 마음은 음악을 통해서 본래의 선한 본성을 자연스럽게 다스려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또 이런 대목. "이것은 바로 바른 음악이 세상에 퍼지게 되면 백성의 마음도 자연 순수해지고, 너와 내가 하나 되는 하늘마음이 되어 이상세계가 된다는 사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달쯤 뒤 나는 이 책을 만났던 서점의 국악 코너로 되돌아가 있었다.
우리는 단절의 시대를 살고 있다. 공간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그렇다. 너와 나의 경쟁이 삶의 일상적인 현실일 뿐 아니라 최고의 도덕률이라도 되는 듯 당연시되는 세상이다. 유구한 세월을 통해 우리 속에 깊은 물로 흘렀던 전통적 정서와 가치는 창백한 기억으로 매말러 버렸다. 우리는 시간의 고도(孤島)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바른 음악이니 너와 내가 하나 되는 하늘마음이니 하는 표현들을 대하면 망각되었던 무엇에 대한 어떤 미안함, 어떤 향수가 야기되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모처럼의 반성을 불러일으키는 순간이 되는 것이다. 그 때 낱말들은 닫힌 문을 여는 주술적 힘을 얻고 잃어버린 지평선을 찾아가는 나침반이 된다.
지은이 윤병천 교수는 이런 사연을 들려준다.
그는 세종임금에 관심을 갖고 막연히 세종실록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가운데 우연히 눈에 들어온 균화라는 단어 하나가 지금의 논문에까지 이르렀다." 그는 이 악명 안에 어떤 철학정신이 내재되어 있는가를 치열하게 고민했다고 말한다.
그러면 우선 균화라는 개념이 탄생하게 된 역사적 맥락부터 살펴보자. 예로부터 제왕이 공업(功業)을 이루면 음악을 마련해 대대로 그 명칭이 있었다. 예컨대 송나라의 대성(大晟)같은 악명이 그것이다.
그런데 세종 임금 때 이 땅의 음악은 황금기를 맞는다. "우리 오천 년 음악 역사를 아우르고 종합하는 예악 체계"가 마련되었다.
한 나라의 고유한 예악 체계를 갖추기 위해 필요한 바탕을 이루는 철학과 사상, 그 사상을 예술로 승화시킨 음악적 내용, 그것을 표현하기 알맞은 악기와 악보 등 모든 것이 갖춰졌다. 독립된 악명을 선포할 여건이 성숙한 것이다.
윤 교수는 균화의 자전적 의미는 천상의 음악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거기에 함축된 뜻은 하늘이 만물에 베풂과 같이 만민을 교화시키고, 천지와 더불어 화합하게 한다는 것이라고 본다.
"하늘의 입장에서 왕과 백성은 너와 내가 둘이 아닌 만물일체로서 조화된 관계이다. 세종은 왕도를 실천하고자 백성의 뜻을 헤아려 살폈고, 음악을 즐김에 있어서도 백성과 함께 즐김으로써 이상세계를 실현하고자 했다." 그는 "순정한 마음으로 백성과 하나 되기 위해 백성과 함께 즐긴다는 뜻의 여민락(與民樂)이란 음악을 작곡하기도 했다." 새삼 오늘의 정치 현실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퇴계의 가르침이 생각나 성학십도를 다시 펼쳐 보았다. 이광호 교수가 옮긴 책에서 이런 설명이 눈에 뜨였다. "천지를 하나의 집안으로 생각하고, 나라 안 전체를 자기 자신으로 생각하게 하여, 가렵고 아픈 것이 내 몸에 참으로 절실하여 인(仁)의 도를 얻게 한다."
유교 음악관의 요체인 예악사상은 "인은 악에 가깝고 의는 예에 가깝다"고 이른다. 그렇게 본다면 아픔을 공유하는 인, 이를 지향하는 정악(正樂)의 세계가 백성의 음악, 그러니까 민속악의 세계와 유리되어 있었던 건 분명 아닐 것이다.
윤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균화는 단순히 궁중음악이 아니라, 조선시대 모든 백성의 음악을 하나로 조화시켜 총체적으로 일컫는 악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설명에 이어 그는 나 같은 문외한의 예상을 깨는 또 하나의 주장을 내세운다. 균화를 유가 경전에서 인거한 것이 아니라, 장자에서 취했다는 것이다. 균 자와 화 자가 한 묶음으로 된 문구는 다른 곳에서는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여기에서 당시의 유학자 관료들의 철학적 사고는 유학의 틀 안에 갇혀 있던 것이 아니었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균화는 세종 28년)에 명명된 이후에 사용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지만 윤 교수는 그 악명은 잊혔지만 음악 내용면에서는 그 맥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균화의 발굴은 폐광처럼 사장된 우리 전통 음악의 거대한 금맥을 상기시킨다. 그렇지만 "이 곡조 알리 없으니 깊게 놓아 두어라." 지음(知音)이 드문 세상에서 청아한 옛 소리를 가야금 집에 다시 묻는 고산 윤선도의 한숨소리가 들린다. 유감이다.
박순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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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출처> 내일신문, 2010년 12월 17일, 박순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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